지난 10일 잠실 두산-SK전에서 SK 중견수 김강민이 임재철의 끝내기 타구를 잡지 못했던 것은, 수비 위치가 당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SK 이만수 감독은 “무승부는 싫다”고 했고 동점을 막기 위한 전진 수비를 지시했다. 그나마 김강민이었기 때문에 따라갈 수 있었고, 덕분에 마지막 순간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전진 수비를 하던 오른손잡이 중견수가 왼손에 글러브를 낀 채 오른쪽으로 뛰면서 왼손을 내밀어 우중간 타구를 펜스앞까지 따라가 공을 건드렸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야구는 공간과의 싸움이다. 13일 잠실 LG-삼성전 7회말 김일경의 타구가 더블 아웃이 된 것도 배영섭의 수비 위치 때문이다. 밀어치는 김일경에 대비해 배영섭은 우중간으로 옮겨 있었고, 좌중간 짧은 타구는 안타 확률이 높았다. 1루주자 정의윤은 이미 2루를 돌고 있었다. 그 공을 잡아냈다. 정의윤의 판단도 옳았다. 외야수의 수비 위치를 미리 파악해 둔 주자에게 잘못을 물기 어렵다.
공간을 선점하고 파악해야 하는 것은 외야수, 주자 뿐만이 아니다. 심판은 정확한 판정을 위해 ‘공과 주자를 모두 잘 볼 수 있는 위치’를 선점해야 한다.
11일 한화-롯데전. 7회말 이른바 ‘에어 진행’ 판정 장면도 ‘위치’가 틀렸다. 주심은 최진행이 홈 대시를 하는 가운데 강민호의 뒤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글러브에 담긴)공과 주자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백스톱 쪽으로 움직여서 자리를 잡았어야 했다. 최진행의 ‘점프’와 홈플레이트 착지는 볼 수 있었지만 최진행의 뒤쪽에서 태그하는 강민호의 글러브를 보지 못했다. 동시에 보지 못하고, 한쪽만 보는 ‘위치’가 결국 오심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9일 롯데-삼성전에서도 3회 무사 1·2루에서 최형우의 호수비에 이은 2루 송구 때 2루심의 위치도 주자와 2루수를 동시에 볼 수 있도록 1루쪽으로 조금 더 옮겼어야 했다. 10일 경기 5회초 김상수의 2루 땅볼 때도 1루심의 위치는 선상에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타자주자와 1루수 사이를 볼 수 있는 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임채섭 심판위원은 “심판에게 필요한 것은 기계적 중립이 아니라 주자와 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쪽으로 재빨리 옮기는 움직임과 판단”이라고 했다. 가만히 자기 자리에 선 채 기계적인 콜을 하는 것은 올바른 심판의 역할이 아니다.
자신의 자리가 오히려 ‘가장 안 보이는 자리’일 수 있다. 기계적 중립이 ‘공정’하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공정한 판단’이란 적극적으로 위치를 옮겨서 들여다 보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을 오히려 ‘편파적’이라고 억압하며 길거리로 내몬지 100일이 넘었다. 이들이 야구를 조금 더 배웠으면. 12일 SK-넥센전 마지막 콜을 번복한 주심의 용기있는 판단을 배웠으면. 야구는 때로 ‘공놀이’를 넘는다. 용기와 공정이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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