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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오로지 팀성적…대기록엔 관심없는 야구계

베이스볼라운지

by 야구멘터리 2012. 6. 18.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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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만화를 그리는 최훈 작가가 물었다. “요즘 이상하지 않아? 너무 잠잠해”. 삼성 이승엽 얘기다. 한일 통산이라고는 하지만 혼자 때린 홈런 500개가 눈앞이다. 최 작가는 “500개면 벌써 들썩거리고도 남았을텐데”라고 했다. 2003년 한국프로야구는 이승엽으로 시작해서 이승엽으로 끝났다. 시즌 중반 300홈런을 때렸을 때, 그 공의 가격은 1억원이나 했다. 56홈런을 앞두고는 구장마다 잠자리채가 넘실 거렸다. 아무리 두 리그를 합했다 하더라도, ‘500’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감은 만만치 않다. 최 작가는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9년 전, 이승엽의 모든 홈런은 이야기를 가졌다. 그해 개막전에서 이승엽은 박명환을 상대로 홈런 2개를 때렸다. 300호 홈런을 때린 날은 SK 조웅천으로부터 끝내기 만루홈런으로 301호를 만들었다. 53호를 때린 뒤 10일 동안 홈런이 없을 때 아내 이송정씨는 “오빠 밀어쳐”라고 했다. 이승엽은 54호째를 정말로 밀어쳐서 넘겼다. 상대는 LG 김광수였다. 56호째는 아내가 ‘호랑이 꿈’을 꿨다고 했다. 이승엽은 홈런을 때린 뒤 “기분이 찢어지게 좋다”고 했다. 


 리그 전체가 끓어올랐다. 모든 관심은 이승엽에게 쏠렸다. 그리고 지금 지나치게 조용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승엽의 한 시즌 홈런 신기록을 앞두고 취재 열기가 한창 뜨거웠을 때다. 삼성 김응용 감독은 어느 날 취재진의 더그아웃 출입을 금지했다. 테이프로 줄을 그어 더그아웃 앞을 막고 취재를 제한했다. 팀 분위기가 흔들리고 있다는 걸, 노회한 코끼리 감독은 잘 알고 있었다. 전년도 우승팀 삼성은 준플레이오프에서 SK에 연패해 탈락했다. 



 이승엽은 요즘 모든 인터뷰를 사양하고 있다. 구단도 이승엽의 500홈런과 관련해 침묵하고 있다. “기록을 달성하면 시상식을 한다”는 게 전부다. 삼성 관계자는 “이승엽이 자신에게 관심이 몰리는 것을 극도로 부담스러워한다”고 전했다. 현재 팀 성적이 주춤거리는 것도 이유다. 이승엽은 9년전 일을 기억하고 있다. 개인의 영광 보다 팀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뜻은 이승엽답다.


 그러다 보니 오승환의 통산 세이브 최다 기록도 조용히 지나가고 있다. 마리아노 리베라가 트레버 호프먼의 기록을 바꿨을 때 메이저리그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삼성은 보도자료 한 장 내지 않았다. 팀 성적도 좋지만 팬들에게는 ‘역사’를 즐길 권리도 있다. 한 시즌의 기록도 중요하지만 ‘누적 기록’은 더 큰 의미를 갖는다. 하나 하나가 모여서 쌓인 기록은 결과 보다 과정이 중요함을 드러낸다. 야구는 꾸준히 걷는 한 걸음의 중요성을 그 어떤 교과서보다 잘 알려준다. 


 그래서 더 아쉽다. 500개의 홈런, 227개의 세이브가 팀 성적 때문에 조용히 넘어가고 있다. 야구도 성적 지상 주의에 갇혔다. 리그는 온통 ‘순위 싸움’ 뿐이다. 야구는 현실을 반영한다.


 여담 하나. 9년 전 이승엽은 56호 홈런 신기록을 세운 뒤 대구구장에서 마이크를 들고 “한국 프로야구 열기가 살아날 수 있도록 많은 성원 바란다”고 했다. 그 해 시즌 관중 수는 272만2801명이었다. 강산이 바뀐다더니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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