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뉴욕 양키스가 9년만에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을 때다. ‘코어 4(핵심 4인방)’는 양키스의 붙박이 스타 4명을 묶어 부르는 별명. 마리아노 리베라, 앤디 페티트, 호르헤 포사다, 그리고 데릭 지터를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가 인터뷰했다. 기자가 물었다. “4명이 함께 하는 지난 세월, 모든 경기, 원정경기를 위한 여행, 이런 것들이 모두 즐거워 보인다”
지터가 답했다. “물론이다. 즐겁지 않으면, 경기에 뛸 수 없다”고 단호하게. 곁에 있던 리베라가 웃는다. “지터는, 마흔이 다 되도록 결혼을 안해서, 가족이 없어서 잘 모른다”고 했다. 리베라는 “가족이 있으면, 야구는 달라진다”고 했다. “원정 경기를 떠날 때마다 가족 생각이 얼마나 나는지 아나”라고 지터를 보며 웃었다. 리베라가 “매 시즌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뛰는 것”은 자신을 지켜주는 가족 때문이다.
프로야구 한화는 지난달 15일 잠실 두산전에서 뼈아픈 역전패를 당했다. 6-0으로 앞서던 경기를 8-11로 역전패 했다. 결정적일 때 실책 4개가 나왔다. 팬들은 그날 경기를 ‘이대수, 이여상의 난’이라고 꼬집었다.
한대화 감독은 그날 밤 3루수 이여상을 2군에 내려보냈다. 이여상은 밤 12시가 넘어 ‘심야 우등’을 타고 대전으로 내려갔다. 다음 날 2군 경기에 출전하라는 지시였다. 이대수는 1군에 남았다. 이대수는 자책감에 뜬 눈으로 밤을 샜다. “여상이와 통화했다. 잠이 하나도 안 오더라”고 했다. 다음 날 숙소에서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식당에서 한 감독과 마주쳤다. 이대수의 표정을 살핀 한 감독이 다가와 말했다. “내려가서 쉬다 오는 게 낫겠다. 푹 쉬어라”라고 했다. 이대수는 ‘휴가’를 받았다. 모처럼 가족과 함께 지냈다. “대전 근교로 가족과 소풍을 다녀오기도 했다”고 했다.
야구가 지나치게 무거웠다. 이대수는 지난 시즌 유격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받았다. 시상식장에서 눈물을 흘렸다. 야구를 하겠다고, 꼭 성공하겠다고 고향 섬에서 배를 타고 나오던 때가 떠올랐다고 했다.
그게 짐이 됐다. 시즌 초반 방망이가 잘 안맞았을 때 주변의 시선이 따가웠다. ‘잘 해야 된다’는 부담감은 수비에도 영향을 미쳤다. 수비율이 0.934밖에 되지 않았다.
한 감독의 배려로 5일 동안 야구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야구를 다시 찾은 건, ‘아빠’를 자각했을 때다. 아직 돌이 채 안 된 딸을 품에 안고 우윳병을 물릴 때 야구의 목표가 바뀌었다. 이대수는 “골든 글러브를 위해 야구하는 게 아니었다. 난 아빠였다”고 했다. 딸에게 우윳병을 물리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의 눈을 쳐다보다가 야구가 다시 다가왔다.
이대수는 지난달 29일 1군에 복귀했다. 6경기에서 실책은 1개도 없었고 모든 경기에서 안타를 때렸다. 3일 LG전에서는 5회말 1사만루에서 박용택의 빨랫줄 타구를 다이빙 캐치한 뒤 병살타로 연결하는 ‘명품수비’를 선보였다. 우윳병을 물리다 딸의 눈빛에서 깨달은 야구다. 나를 100% 믿어주는 이를 위한 야구는 그 어떤 야구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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