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최영필(38)의 등번호는 85번이다. LG 류택현(41)의 등에는 90번이 달렸다. KIA 최향남(41)은 99번을 달고 뛴다. 그들의 나이 만큼이나 묵직한 번호를 달았다. 셋의 나이를 합하면 120세다. 나이 때문에 등번호가 묵직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모두 야구를 떠나 있었고, 힘겹게 야구로 돌아왔다. 돌아온 이들에게 ‘남는 번호’가 주어졌다. 영화제목이 그랬듯, 노장을 위한 야구는 없다.
최영필은 1승3홀드, 방어율 3.57을 기록 중이다. FA 제도 때문에 1년을 돌아 다시 야구공을 쥐었다. 늑골 부상에서 돌아온 뒤 9경기에서 14와 3분의 2이닝 동안 1점만 내주며 (방어율 0.61) SK의 초반 상승세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대단한 비밀이 있는 건 아니다. 최영필은 “그저 후배들한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후배들한테 볼, 볼, 볼 던지지 말라고 얘기하는데 내가 마운드에서 그런 짓 하면 안된다”고 했다. 제구의 기본은 ‘항상성’이다. 최영필은 “프로야구를 떠나 있었지만 난 미국에서, 멕시코에서, 일본에서 계속 공을 던지고 있었다”고 했다. 최영필의 가방에는 프로입단 때 선물받은 손목 강화용 스냅볼이 항상 들어있다. 새카맣게 때가 묻은 그 공은 “초심을 잊지 않게 해준다”고 했다. SK 포수 조인성은 “공 끝에 힘이 있다”고 했다.
류택현은 3승1패, 5.27을 기록하고 있다. 갈비뼈를 다치기 전 4월 한 달 동안 3승무패였다. 방어율 2.84. LG 초반 상승세에는 류택현의 역할이 막중했다. 봉중근이 마무리로 투입되기 전 핵심 왼손 불펜역할을 했다. 류택현은 “나이가 들면 연습과 실전 사이의 차이가 좁혀진다”고 했다. 나이를 얻는 동안 체력을 잃고 정신력을 얻는다. 불펜에서의 피칭과 마운드에서의 피칭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또한 ‘항상성’이다. 류택현은 “투구 밸런스를 꾸준히 끌고 갈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고 했다.
최향남을 두고 KIA 선동열 감독은 ‘복덩이’라고 했다. 1군에 올라온 뒤 8경기에서 8이닝 동안 6안타 무실점. 삼진 10개를 잡아냈다. 8일 넥센전에서도 1이닝을 루킹삼진 3개로 막아내며 3세이브째를 챙겼다. 140㎞가 안되는 공끝에 힘이 넘친다. 최향남은 “공을 더 끝까지 끌고 나오는 요령이, 나이들면 생긴다”고 했다.
기복없는 꾸준함이 필수요건이다. 최향남은 “에이스급 투수라도 어린 선수 중에 한 번은 잘 던지고, 그 다음 번에는 못 던지고 하는 선수들이 있다”면서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해서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일찍 일어나고, 세끼를 꼬박 챙겨먹고, 매일 정해진 운동을 정해진 시간 동안 하는 것. 최향남은 튀긴 음식을 먹지 않고, 탄산음료와 주스를 멀리한다. “그게 꾸준함을 만든다”고 했다.
영화 제목이 그랬듯이, 노장을 위한 야구는 없다. 야구를 위한 꾸준한 노력이 결과를 낳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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