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팬 사이의 영원한 논쟁거리이자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 하나. ‘최동원과 선동열, 누가 더 나은 투수인가.’
이 안주라면 술병이 잠실구장을 다 채워도 모자랄 수 있다. 최동원과 선동열에 관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근거와 증거가 쏟아진다. 하나의 근거에 또 다른 증거가 더해지고 종이에 남은 기록과 머릿속 기억이 뒤섞이고 나면 주장만 남는다. 둘 모두 훌륭한 투수인 게 틀림없지만 우열을 가리기는 우주 탄생의 비밀을 밝히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어떤 선수가 어떤 선수보다 나은지를 가리는 ‘정답의 길’이 있을까. 미국야구기자협회(BBWAA)는 매년 투표인단을 선정해 최우수선수(MVP), 신인왕, 사이영상과 올해의 감독을 선정한다.
BBWAA는 MVP 투표의 가이드라인을 정해서 투표인단에게 알려준다. 이 가이드라인은 1931년 첫 BBWAA 투표가 시작된 이후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BBWAA는 “MVP에 대한 정확한 규정은 없다”고 가이드라인을 시작한다. 다만 “MVP는 반드시 디비전 우승팀이나 포스트시즌 진출팀에서 선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조건을 단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첫번째 규정은 역시나 선수의 가치다. BBWAA는 ‘공격과 수비에서 해당 팀에서 지니는 그 선수의 가치’로 선을 긋는다. 모든 선수의 실력에 순위를 매기는 게 아니라 그 선수가 그 팀에서 어떤 역할을 했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두번째는 ‘경기 수’다. 비슷한 수준이라면 더 많은 경기에 뛴 선수가 표를 받아야 마땅하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MVP 투표에서는 선발 투수들이 야수들에 비해 불리하다.
세번째는 해당 선수의 성품과 인격, 팀을 향한 충성도와 노력의 여부다. 성적이 뛰어난 것뿐만 아니라 ‘품행이 방정하고 타의 모범이 되는’ 학교 다닐 때 우등상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뛰어난 선수는 단지 ‘플레이어’의 영역을 넘어선다. 4~5번째는 자격 규정이다. 앞서 MVP를 수상했던 선수라도 상관없다는 내용과 투표인단이 같은 팀에서 2명 이상에게 투표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투표가 모두 끝났다. 수상자는 10일 오후 4시40분에 열리는 시상식 현장에서 발표된다.
그런데 이번 투표에서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커밍아웃’이 있었다. 한국의 골든글러브는 ‘글러브’라는 상 이름과 관계없이 ‘수비’에만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은 ‘베스트 10’ 상이 사라진 1985년 이후 공공연한 사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KBO는 투표인단 공지에 이를 명문화했다. KBO는 ‘공격과 수비, 인지도에 동일한 비중’을 두라고 권고했다. 공격과 수비는 이해할 수 있지만 ‘인지도’에 같은 비중을 부여하라는 것은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인기’는 하루 아침에 쌓이지 않는다. 이른바 ‘스타’ 선수에게 더 유리한 조건이고 어찌 보면 ‘기득권’이다. 가뜩이나 ‘기득권 지키기’가 뻔뻔하게 자행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 야구에도 스며든 듯하다.
불편하고 씁쓸한 야구의 겨울. 그리고 어쩌면, KBO의 커밍아웃에 대한 적절한 응답. 주변에 물어보니 ‘인지도’에 반한 투표가 상당히 이뤄진 듯하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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