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라루사 전 세인트루이스 감독이 쓴 <마지막 스트라이크 하나>에 나오는 대목. 라루사 감독은 스프링캠프에서 중요하게 여겨야 할 한 가지로 ‘정신력’을 꼽았다. 단순히 ‘상대를 꼭 이겨야겠다’는 투쟁심에 그치지 않는다. 강한 정신력은 ‘선수들이 뛰어난 야구IQ를 공유하고 있는 것’을 포함한다. 경기 상황에 따른 주자의 움직임, 수비진의 시프트 형태 등을 이해하는 것도 이른바 ‘정신력’의 일부다. 라루사 감독은 “기록지만 보고도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류현진이 깔끔하게 시즌 출발을 했다. 23일 호주에서 열린 애리조나와의 경기에서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낮에 하는 경기였고, 비교적 약했던 애리조나를 상대했다. 무엇보다 보통 때보다 1주일이나 빠른 출발이었다. 일상성이라고 할 수 있는 ‘루틴’이 가장 중요하다는 야구 종목에서 ‘평소보다 빠른 1주일 전 준비’는 밥 한 끼 거르는 것처럼 가볍게 넘길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류현진은 완벽에 가까운 투구를 했다.
류현진의 투구는 벤치의 감독을, 보고 있는 팬들을 편안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주자가 쌓여도 손에 땀을 쥐게 하지 않는다. 혹시 모를 수비진의 실책을 걱정하지 류현진이 한가운데 높은 공을 던져 맞을 일은 걱정되지 않는다. 그 편안한 ‘침대 야구’의 비밀, 류현진이 어려운 조건 속에 맞은 개막 2차전에서 호투할 수 있는 비밀은 그의 ‘야구IQ’에 있다.
류현진을 곁에서 오래 지켜본 정민철 한화 투수코치는 “기억력이 굉장히 좋은 선수”라고 평가했다. 단순히 숫자나 기록을 잘 외우는 기억력이 아니다. 정 코치는 “자신이 좋았을 때 몸상태, 투구 밸런스, 손끝의 감각을 기억하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다. 잠시 흔들리더라도 재빨리 그때 기억을 되살리고 그 상태로 되돌아가는 길을 빨리 찾는다”고 말했다.
체인지업의 각이 좋지 않을 경우, 다른 선수들처럼 불펜에서 많은 공을 던져가면서 밸런스를 회복하지 않는다. 각이 좋았을 때 여러 가지 감각의 기억을 되살려 금세 회복한다. 류현진이 선발 투구 사이에 불펜 피칭을 하지 않는 이유도 굳이 불펜 피칭을 통해 다시 한 번 몸이 좋은 밸런스를 기억해 되살려내도록 채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기억하고 있고, 이를 다시 끄집어내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그만큼 어깨를 소모하지 않아도 돼 체력을 아낄 수 있다.
클레이튼 커쇼도 인정했다. 커쇼는 23일 경기 중 중계진과의 인터뷰에서 “류현진은 잠에서 깨자마자 모든 구종을 스트라이크로 던질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며 “솔직히 부럽다. 나는 모든 구종에 이상이 없는지 꼼꼼하게 점검해야 하는데 류현진은 잠에서 깨자마자 그게 된다”고 말했다.
체인지업을 가르쳐 준 ‘스승’ 구대성을 만났을 때 류현진의 첫 질문은 “커브가 가끔 빠진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였다. 금세 감각의 기억을 되찾았고, 실전에서 좋은 커브를 여러 개 던졌다.
어쩌면 머리의 기억이 아니라 몸의 기억이다. 잘린 꼬리가 금세 다시 똑같이 자라는 도마뱀처럼 류현진 특유의 야구 DNA가 좋은 상태를 쉽게 유지하게 만든다. 정 코치가 덧붙였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는 옛말이 틀린 게 없다. 현진이는 몸이 고생할 필요가 없다”며 웃었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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