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시즌 넥센 왼손 투수 박성훈은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그는 2012년 6월22일 목동 삼성전부터 7월19일 목동 롯데전까지 근 한 달 동안 7경기에 등판했는데 마운드를 지킨 12이닝 동안 단 1개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았다. 물론 모두 구원 등판한 경기였지만 노히트 노런을 훌쩍 뛰어넘는 연속이닝 무안타 기록이었다.
신기록에는 1이닝 모자랐다. 최고 기록은 김진욱 전 두산 감독이 OB에서 뛰던 시절, 1987년 4월19일 광주 해태전부터 5월3일 청주 빙그레전까지 기록한 13이닝 연속 무안타였다. 김현욱 삼성 코치도 쌍방울 시절인 1993년에 12이닝 무안타 기록을 세웠다.
야구는 ‘기록의 경기’다. 다른 스포츠와 달리 상황이 명확하게 구분되기 때문에 기록의 경기가 될 수 있다. 볼카운트는 0-0에서 3-2까지 모두 12가지 조합으로 나뉘고, 주자 상황은 무사 주자 없는 상태에서 2사 만루까지 모두 18가지로 구분된다. 매 상황에 대한 분석이 기록을 낳는다. 기록이 쌓이면 일종의 방향성이 생기고, 이는 예측의 자료로 쓰인다.
물론 야구 기록이 경기 분석과 예측에만 사용되지는 않는다. 기록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힘을 지녔다. 박성훈의 12이닝 연속 무피안타 기록은, 박성훈이 그해 기록한 5승4패·7홀드·방어율 2.45가 알려주지 않는 새로운 이야기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게 한다.NC 외야수 권희동은 2차 9라운드에서 지명된 선수다. 하위 지명됐지만 타격 재능이 눈에 띄었다. 야구 선수의 행복은 지명 순서가 아니라는 점을 권희동이 새삼 또 잘 알려줬다. 그는 지난해 줄곧 1군에서 뛰었고 규정타석을 채웠다. 그런데 타율이 겨우 2할3리다. 이게 또 하나의 기록이다.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 32시즌 동안 규정타석을 채우고도 가장 타율이 낮았던 선수는 1986년 청보에서 뛰었던 권두조 롯데 수석코치다. 권 코치는 그해 1할6푼2리를 기록했다. 그 뒤를 1997년 박진만(0.185), 같은 해 김호(0.199)가 잇는다. 권희동은 역대 4번째로 낮은 타율을 기록한 선수가 됐다. 낮은 타율이지만 규정타석을 채울 수 있었던 것은 김경문 감독이 뚝심 있게 기용한 덕분이다. 권희동의 타율은 낮았지만 홈런이 15개나 됐다. 주목받았던 팀 동료 나성범과의 홈런 경쟁에서 오히려 한 개 앞섰다.
두산 내야수 허경민의 기록은 더욱 놀랍다. 허경민은 지난 시즌 276타석에 들어서 삼진을 겨우 14개만 당했다. 두 시즌 동안 당한 삼진이 겨우 31개다. 프로야구 통산 400타석 이상 들어선 타자 중 통산 삼진이 허경민보다 적은 선수는 백인천 전 감독(29개)밖에 없다. 허경민 다음이 송일수 두산 감독(40개)이다.
권희동과 허경민의 ‘놀라운 기록’은 한국 프로야구의 얘깃거리를 풍성하게 만든다. 또 다른 기록과 얘깃거리가 기대되는 새로운 시즌이 찾아온다. 그 전주곡인 시범경기가 이제 막 시작됐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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