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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문화의 탄생

베이스볼라운지

by 야구멘터리 2014. 4. 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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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시즌이 시작되기 전, 으레 그렇듯 9개 구단의 주장들이 모였다. 몇 가지 의견이 오고갔다. 야구의 ‘불문율’에 대한 논의였다.

주장들은 경기 후반 승부가 갈린 경기에서 무의미한 도루를 자제하는 것에 대해 얘기했다. 야구에서 ‘암묵적인 규칙’이라는 이름 아래 금기시됐던 행동들을 구체적으로 따졌다. 여전히 무 자르듯 명쾌한 조건이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7회 이후·10점차 이상일 때’라는 얘기가 나왔다. SK 주장 박진만은 “지난 시즌에 10점 차이도 뒤집힌 적이 있으니까”라고 덧붙였다.

선수들이 논의한 내용을 코칭스태프에게 전달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사실상 승부가 끝난 경기 후반에 기회를 얻은 신인 선수들의 도루 능력을 보기 위해 무의미한 도루를 지시하는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자는 뜻이었다. 한화 김응용 감독의 ‘6회 6점차’에 대한 언급은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일 가능성이 높다.

‘지고 있는 팀도 도루하지 않기로 했다’는 내용은 완전히 와전된 내용이다. 두산 주장 홍성흔은 “7회 이전에는 20점 차이가 나도 상관 안 하기로 했다. 지고 있는 팀의 도루 시도는 7회 이후라도 당연히 상관없다”고 말했다.


상대방을 자극하는 홈런 세리머니에 대해서도 의견이 오갔다. 홍성흔은 “홈런을 때리고 베이스를 도는 동안에는 세리머니를 가급적 하지 않기로 했다”며 “일단 베이스를 다 돌고 홈플레이트를 밟은 뒤 자기 팀 더그아웃 앞에서 세리머니를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LG 주장 이진영은 “홈플레이트를 밟고 나서는 무슨 세리머니를 하든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주자가 상대 배터리의 사인을 훔치지 않는 것은 오래전부터 합의된 내용이다. 투수가 실수로 타자를 맞혔을 때 선후배 관계에 상관없이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보여주기로 했다. 여기에 더해 상대 라커룸을 방문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원정팀 선수가 홈팀 트레이닝 룸을 쓰는 것도 금지하기로 선수들끼리 의견을 나눴다.

중요한 것은 경기 후반 도루의 조건, 세리머니의 동작 규정 여부, 미안하다는 제스처의 세세한 범위가 아니다. 야구는 문화이고, 문화는 소통을 통해 만들어진다. 선수들이 모여서 ‘불문율’을 구체화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것 자체가 의미를 가진다.

야구의 목적은 야구 규칙에 나와 있듯 ‘상대 팀보다 많이 득점하여 승리를 하는 것’이지만, 철학 교과서에 나와 있듯 목적이 모든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승자독식 사회’로 빠르게 변해가면서 ‘이겼으니 무조건 승복하라’는 주장이 뻔뻔하게 등장하고 있다. 선수들의 불문율 논의는 사회에 대한 메시지다.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되, 존중할 것. 로스 번스타인의 책 <불문율>(the code)에서 토드 켈리 전 미네소타 감독은 “불문율이란 열심히 플레이하되 상대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는 것에 대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NC 이태일 대표는 리그를 함께하는 이들의 ‘리거십’을 얘기했다. 선수들의 서로에 대한 존중을 위한 소통은 ‘리거십’을 향한 의미 있는 한걸음이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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