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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위치(position)-2015 준PO1  

이용균의 가을야구

by 야구멘터리 2015. 10. 1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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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는 위치(position, location)의 종목이다. 선수 모두가 자기 포지션을 갖고 있다. 축구는 풀백이 상대 골문 앞으로 가기도 하지만, 야구는 유격수가 우익수 자리로 갈 일이 없다. 포수가 유격수 자리로 이동할 일도 없다. 수비 위치(position)의 이동은 ‘시프트’이지만, 타격 순서, 타순의 위치(position)를 바꾸면 ‘부정위 타자’(improper batter)가 되어 아웃이 선언된다. 자신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해 주는 일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종목이다.

 준플레이오프 1차전, 10일 잠실 구장. 하늘은 음산했고, 그라운드는 스산했다. 외계인이 나타나 시구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날씨였다. 넥센의 라인업, 타격 포지션(position)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두산 선발 우완 니퍼트를 상대로 좌익수 자리에 우타 박헌도 대신 좌타 스나이더가 투입됐다. 

 두산 라인업 역시 시즌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5번에 올시즌 20홈런을 때린 양의지가 들어섰다. 3번 민병헌, 6번 오재원은 시즌 막판 부진에도 불구하고 큰 경기 경험을 평가받았다. 7번 홍성흔-8번 오재일은 하위타선의 파괴력을 기대해볼만했다.

두산 박건우는 입단 7시즌 만에 자신의 자리(position)를 찾을 기회를 만들었다. 끝내기 안타를 때린 뒤 두산 니퍼트와 끌어안고 있는 모습 _ 두산 베어스, n2shot 제공

 두산 선발 니퍼트는 에이스의 위치(position)로 돌아왔다. 이택근을 3구삼진을 잡아낼 때 구속이 150㎞였다. 반면 넥센 선발 양훈은 포스트시즌 데뷔전이었다. 선두타자 정수빈은 까다로운 상대였다. 초구 2구가 모두 볼이었다. 표정에 긴장이 묻어났다. 7구째 타구가 우중간을 향했다. 1루쪽 팬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하지만 시리즈를 앞두고 ‘수비’와 ‘집중력’을 강조했던 넥센 주장, 중견수 이택근의 수비 위치(position)가 좋았다. 우중간 담장 앞까지 따라간 뒤 뒤 돌아선 상태에서 언더 캐치라는 기술을, 마치 아무일 없었다는 듯, 그냥 장난삼아 펑고 받듯 잡아냈다.

 2사 뒤 두산의 공격이 이어졌다. 타자, 주자 모두 자신의 위치(position)에서 해야 할 역할이 있다. 2사 1루, 볼카운트 1-0에서 1루주자 민병헌이 스타트를 끊었다. 두산 다운 플레이. 김현수의 타구가 좌중간으로 향했지만 민병헌은 여유있게 3루에 도착했다. 5번 양의지는 볼카운트 3-0에서 높은 공에 방망이가 나가 파울을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볼넷을 골라나갔지만 단기전, 경기 초반, 3-0에서의 스윙은 ‘과감함’을 강조한 두산 벤치의 의지가 담겼을 가능성이 높았다. 

 2사 만루, 넥센 벤치가 바빠졌다. .손혁 코치가 마운드에 올랐다. 투구수 24개 중 13개가 볼이었다. 이때 투수코치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리 많지 않다. 투수로서는 어떻게든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하는 상황이다. 다음 타자로서 자신의 위치(position)에 주어진 역할을 규정해야 했다. PS 데뷔전 1회 흔들리는 투수, 2사 만루, 투수 코치의 방문. 그러나 6번 오재원은 초구와 2구에 모두 루킹 스트라이크를 당했다. 자신의 위치(position)에 맞는 공격이 아니었다. 4구째 헛스윙 뒤 낫아웃. 오재원은 스윙이 아니라고 여기고 1루로 뛰지 않았지만 스윙 여부는 합의 판정의 대상이 아니다. (오재원은 6회 2사 만루 비슷한 상황에서 합의 판정을 통해 파울 판정을 받아내지만, 다음 공에 2루 땅볼로 아웃됐다) 3루주자 민병헌 역시 2사 만루, 공이 옆으로 흘렀다면 자신의 위치(position)에 따라 과감한 대시가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기록은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 상황, 3루주자 민병헌이 홈에서 아웃됐다. 

 두산은 경기의 큰 흐름을 뺏겼다. 반면 넥센 선발 양훈은 큰 자신감을 얻었다. 3회말 박동원의 선제 홈런이 터졌다. 니퍼트의 투구 위치(location)가 높았고, 박동원이 이를 놓치지 않았다. 박동원은 니퍼트 상대 통산 0.571로 무척 강했다. 니퍼트가 이후 13타자 만에 맞은 안타가 또다시 잠실구장 담장을 넘어갔다. 이번에는 2년전 니퍼트에게 악몽의 스리런을 안겼던, 리그 홈런왕 박병호였다. 박병호의 WC 포함 시리즈 첫 안타였다. 니퍼트의 150㎞ 직구가 그때처럼 가운데 높은 곳을 향했고, 박병호가 이를 놓치지 않았다. 4번 타자의 위치(position)를 정확히 수행한 홈런이었다. 점수는 2-0이 됐다.

박병호는 4번 타자의 위치(position)에 걸맞는 활약을 펼쳤다. 6회 니퍼트로부터 홈런을 때리고 1루로 뛰고 있다. _ 넥센 히어로즈, n2shot 제공

 넥센은 끈끈한 수비로 실점을 막았다. 두산은 3번 민병헌, 6번 오재원의 타석에서 흐름이 끊겼다. 민병헌은 바깥쪽 공에 포커스를 맞추고, 이를 최대한 끌어당겨 때리는 능력이 뛰어난 타자였다. 오른쪽 방향의 타구가 많았고, 잘 맞은 타구는 센터 방향을 향해야 했다. 하지만 후반기 민병헌은 안 맞으니 서두르는 타자가 됐다. 타격이 이뤄지는 위치(position)가 좋지 않았다. 3유간 타구는 민병헌에게 좋은 신호가 아니다. 3회 유격수 병살타, 6회에도 1루주자 허경민의 적극적인 스타트가 아니었다면 병살타가 될 뻔 했다. 6번 오재원 역시 안타 1개를 기록했지만 타석에서 주저함이 많았다. 타격 타이밍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졌다는 신호일 수 있다.

 8번 오재일은 5회 1사, 상대 시프트에 대비해 번트를 대고 살아나갔다. 선택은 자유지만, 팀 내 최고 장타율(0.594)의 타자다. 도루는 0이다. 한 베이스 이상을 노리는 타격이 더 큰 기회를 만드는 타자다. 자신의 역할, 위치(position)와 어울리지 않았다.(물론, 8번 타순과는 어울릴지 모른다. 김태형 감독은 7회 무사 1루, 오재일에게 희생번트를 지시했다)

 두산은 6회 결국 1점을 따라붙었다. 1번 정수빈-2번 허경민으로 이어지는 테이블세터진의 조합 덕분이었다. 7회 선두타자 홍성흔은 마치 이용규처럼 9구 승부 끝에 볼넷을 골라 나갔다. 과거 홍성흔이 아니라 지금의 홍성흔, 7번 홍성흔의 위치(position)에 걸맞는 타석 모습이었다. 1사 3루, 김재호의 루킹 삼진으로 기회가 날아가는 듯 했지만 정수빈의 2루타가 이어졌다. 1회와는 반대 상황. 중견수 이택근의 수비 위치(position)가 우중간으로 치우쳐 있었고, 짧은 타구가 중견수 위치에서 약간 좌익수 쪽으로 흘렀다. 이택근이 전력질주해 슬라이딩하며 잡아내려 했지만 마지막 순간 공이 글러브에서 떨어졌다. 2-2 동점이 됐다. 

 이택근은 8회초 공격에서 이를 만회했다. 1사 1루, 중전안타로 2루주자 고종욱을 3루까지 보냈다. 박병호는 초구에 어렵지 않게 타구를 외야로 보냈고, 3루주자를 불러들였다. 박병호의 스윙을 고려하면 웬만한 몸쪽 공으로는 땅볼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2이닝을 남겨두고 3-2, 넥센에게 승기가 흐르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비가 흐르기 시작했다. 발이 묶이면, 두산의 장점이 줄어든다.

 하지만, 넥센 조상우는 자신의 새로운 위치(position)에 적응하지 못했다. 이제 겨우 2년차, 관리가 됐다 하더라도 불펜으로 93.1이닝을 던졌다. 게다가 비까지 내렸다. 상대 발도 묶이지만 수비도 쉽지 않다. 3루수 김민성과 2루수 서건창 모두 무릎이 좋지 않다. 유격구 김하성은 루키다.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듯, 지나치에 투구 위치(location)에 신경썼다. 결국 사구 1개, 볼넷 3개로 동점을 내줬다.

 1사 뒤 김재호 타석 때 사구가 문제가 됐다. 주심은 사구를 인정했지만 느린 화면으로는 방망이 손잡이에 맞았다. 1루에 나갈 상황이 아니라 볼카운트 2-2가 되는 상황이었다. 포수 박동원의 판단이 아쉬웠다. 포수라는 포지션(position)의 역할은 단지 투수를 잘 리드하는데 머물지 않는다.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있었어야 했다. 마운드의 새 마무리 조상우를 돕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변호’가 필요했다.

 경기는 10회말 끝이 났다. 8회 대타로 들어섰던 최주환이 좌완 루키 김택형을 상대로 좌중간 2루타를 때렸다. 대타는 로메로가 아니라 박건우였다. 니퍼트와 스와잭을 이미 모두 썼기 때문이었다. 박건우가 들어섰다. 2009년 입단 당시 박종훈 두산 2군 감독은 김경문 감독에게 “당장 승리에 도움이 되는 백업을 원한다면 정수빈, 나중에 우승으로 이끌 주전을 키우기를 원한다면 박건우”라고 얘기한 바 있다. 그 박건우가 입단 7년만에 포스트시즌 데뷔 타석에 들어섰다. 딱 한 번의 스윙으로 우중간 끝내기 안타를 만들었다. 오랫동안 제 자리(position)를 잡지 못했던 박건우에게 새 위치(position)가 보이도록 하는 한 방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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