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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의 ‘컬러볼’ 훈련

베이스볼라운지

by 야구멘터리 2016. 6. 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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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가 가르쳐 주는 오랜 교훈 하나는, 이번 타석의 안타가 다음 타석의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3할 타자가 앞선 3타석에서 안타를 못 쳤으니 이번 타석에서 안타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말은, 오래전 그날의 해설에서나 가능했다. 매 타석의 결과는 독립 변수다.

어쩌면 그래서 매 타석 새로움이 필요하다. 2할6푼의 타자는 시즌이 끝난 뒤 타격폼 수정을 고민하지만 3할 타자는 타석마다 타격폼 수정을 생각한다. 상대 투수의 구위와 구종, 날씨와 컨디션을 고려한다. 변화와 실험, 도전은 야구 성공의 길이다.

지난 19일 고척 스카이돔, 넥센의 타격 연습 때 배팅케이지 한쪽 옆에 피칭 머신이 설치됐다. 머신에서는 계속해서 강속구가 뿜어져 나왔고, 타자들은 이를 지켜봤다. 치기도 어려웠지만 칠 생각도 없었다. 넥센 심재학 타격코치는 “스피드건으로 재면 시속 158~160㎞ 정도 된다”고 설명했다.

빠른 공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기 위한 훈련이다. 휘두르는 대신 마음속으로 타격의 타이밍만 계산한다. 심 코치는 “이 훈련을 시작한 지 한 2년쯤 됐다”고 했다.

최근 넥센은 빠른 공 훈련에 한 가지를 추가했다. 공 가운데에다 빨강과 파랑, 검정 동그라미를 칠했다. 그저 빠른 공을 쳐다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공에 칠해진 색깔을 맞혀야 하는 숙제가 더해졌다. 피칭 머신 앞에 선 임병욱은 공을 한번 쳐다본 뒤 “파랑” 혹은 “빨강”을 외쳤다. 못 보는 수는 있어도 색깔이 틀리는 일은 없다. 임병욱은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금방 색깔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빠른 공에 대한 감각뿐만 아니라 그 공의 색깔을 살핌으로써 공의 궤적을 좇는 훈련이다. 동체시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 주장 서건창은 “이제 시작이지만 동체시력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처음 몇 개는 안 보였는데, 금방 색깔을 다 볼 수 있게 되더라”라고 말했다. 넥센 염경엽 감독은 “어떤 선수는 3일 정도 걸린다. 지금은 대부분 색깔을 다 맞힌다”고 설명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익숙한 훈련이다. 추신수 역시 기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테니스공에 적힌 숫자를 확인하면서 이를 때리는 훈련을 한다. 스즈키 이치로는 초등학교 때부터 버스와 전차를 탈 때 빠르게 지나가는 간판을 읽어내는 훈련을 해 왔다고 밝혔다. 1990년대 초반 LA 다저스는 안과 전문의를 스프링캠프에 초청해 선수들의 시력을 살폈다. 의사는 92년과 93년 각각 1명의 선수를 ‘시력 좋은 선수’로 골랐다. 에릭 캐로스와 마이크 피아자. 둘 모두 그해 내셔널리그 신인왕에 올랐다.

심 코치는 “이것저것 다 해보는 중”이라고 했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유튜브를 뒤졌다. 원래 테니스공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회전판 3개로 작동되는 현재 피칭머신으로 테스트해보니 테니스공이 찌그러져서 제대로 발사되지 않았다. 한 선수는 “실제 효과가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며 웃었지만, 실제 효과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를 추구하려는 의지다. 심 코치는 “그냥 공만 보는 것은 이제 지루할 것 같아, 색깔을 칠하는 변화를 줬다”고 말했다.

넥센이 박병호와 강정호, 유한준과 손승락 등이 모두 빠졌음에도 중위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변화와 실험, 도전 덕분이다. 방향을 정하고 과감하게 바꾼다. 홈구장이 바뀌었고, 팀 컬러를 변화시켰다. 큰 틀뿐만 아니라 작은 디테일의 변화가 야구를 한 걸음 나아가게 만든다. 진짜 변화는 오랜 계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일단 바꿔 보자’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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