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기다림의 종목이다. 소설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에서는 이렇게 적었다.
“소년이여 잘 듣거라. 포르노는 어린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죽도록 따분한 것이야. 그렇지만 이 정도의 따분함에 지긋지긋해 할 정도라면, 도저히 훌륭한 야구선수는 될 수가 없어. 야구사에 빛날 정도의 명선수들은 대개 ‘천번노크’라고 해서 하루에 천 번이나 포르노를 보는 맹훈련에 힘썼어.”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메이저리그의 경기 시간은 3시간 안팎이지만 실제 경기가 진행되는 인플레이 시간은 겨우 18분 언저리밖에 되지 않는다. 매일매일 치러지는 경기, 그 속에서도 나머지 90%는 모두 기다리는 시간이다.
기다림의 종목에서 조급한 실패 결정은 섣부르다. 지난 시즌 롯데 에이스였던 조쉬 린드블럼은 개막전 승리 뒤 5경기에서 4패만 기록했다. 연패 동안 평균자책이 9.11이나 됐다. 조원우 감독은 로테이션을 흔들지 않고 기다렸다. 린드블럼은 지난 6일, 리그 1위 두산을 상대로 7.1이닝 무실점으로 시즌 2승째를 따냈다.
롯데 김문호는 기다림이 길었다. 2006년 신인 드래프트 때 롯데에 지명됐다. 롯데는 김문호를 택하면서 김현수를 버렸다. 매년 유망주였고, 4월에 기대를 모았지만 그 자리를 오래 지키지 못했다. 입단 11년차, 오랜 기다림 속에 드디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김문호는 9일 현재 타율 4할3푼8리로 리그 타격 1위에 올라 있다. 최다안타(49개), 출루율(0.508) 모두 1위다. 오래 걸려 피어난 꽃은 쉽게 지지 않는다.
정의윤은 김문호보다 한 해 앞서 LG에 지명됐다. 우타거포로 기대를 모았지만 역시 성장이 더뎠다. 지난해 SK로 트레이드된 뒤 달라졌다. 정의윤은 홈런 8개로 공동 2위, 타점 39개로 압도적 1위다. 오래 묵었고, 잘 익었고, 드디어 빛이 나기 시작했다. 이제 ‘실패’라고 섣불리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NC 김준완은 고려대 졸업반이던 201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실패했다. 스물셋에 맛본 쓰라린 실패.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지명 안됐다”고 말씀드리는 순간은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최악의 경험이었다. 육성선수로 NC 유니폼을 입었고, 기다리는 시간이 이어졌다. 지난달 22일부터 선발 라인업에 포함됐다. 8승8패였던 NC는 김준완이 테이블세터로 나온 이후 10승3패로 선두 두산에 1경기 차로 따라 붙었다.
참고 기다리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김인식 전 감독은 “못할 때 화내는 건 하수 중 하수의 일”이라고 했다. 넥센 외야수 임병욱은 8일 고척 KIA전에서 0-0이던 2회 결정적인 실책을 저질렀다. 순식간에 0-2가 됐다. 실책이 교체로 이어지지 않았고, 대신 기다림이 계속됐다. 임병욱은 7회와 9회 연타석 홈런으로 경기의 흐름을 바꿨다. 9회말 동점 홈런은 결정적 한 방이었다. 기다리지 않았다면 홈런도 승리도 없었다.
기다림은 때로 기적을 낳는다.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의 노장 투수 바톨로 콜론(43)은 8일 샌디에이고전에서 2-0으로 앞선 2회말 타석에서 제임스 실즈로부터 좌월 2점홈런을 때렸다. 데뷔 후 19시즌, 481경기에 등판해 221승을 거둔 투수의 데뷔 첫 홈런이었고 메이저리그 사상 최고령 데뷔 홈런 신기록이었다. 콜론은 “이런 놀라운 순간을 허락해 준 야구의 신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제 겨우 5월, 지금 성적으로 “끝났다”고 미리 포기할 필요 없다. 기다림의 종목 야구는, 모든 노력에 기적을 선물하곤 한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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