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시즌 메이저리그에서는 모두 5610개의 홈런이 나왔다. 2000년(5693개) 이후 가장 많았다. 불과 두 시즌 전인 2014년엔 경기당 홈런이 겨우 0.86개였다. 1992년 이후 가장 적은 홈런이었다. 그런데 2015년 경기당 1.01개로 뛰어오르더니 지난해에는 1.16개까지 치솟았다. 이 기간 동안 홈런 증가율은 무려 35%나 된다. 그렇다고 득점 자체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아니었다. 메이저리그는 여전히 투고타저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2014시즌 경기당 평균득점은 4.07점이었고, 2016시즌은 4.48점이었다. 홈런은 35%나 늘었는데, 득점은 겨우 10% 늘었다.
전체 득점에서 홈런에 의한 득점이 차지하는 비중은 늘었다. 홈런 의존도의 증가다. 2014시즌 전체 득점 중 홈런에 의한 득점은 33%였는데, 2016시즌에는 전체 득점의 40%가 홈런 덕분이었다. 김현수가 뛰고 있는 볼티모어는 홈런 의존도가 가장 큰 팀이다. 지난 시즌 팀 득점 744점 중 52%가 홈런에서 나왔다.
일반적으로 리그 환경이 투고타저일 경우 ‘스몰볼’이 답으로 제시된다. 실제 한국 프로야구는 그런 방식을 써 왔다. 번트를 대고, 도루를 하고, 상대를 흔드는 속에서 1점을 따내면 이를 지키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반대를 택했다. 선발은 물론 불펜투수진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가운데 연속 안타에 의한 득점 확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계산. 아웃카운트를 버리고 주자를 보내는 대신 한 방을 노리는 것이 개인은 물론 팀 전체에 이득이 된다는 판단이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판단의 차이를 가져온 것은 ‘빅데이터’였다. 메이저리그는 경기 중 공과 선수들의 움직임 대부분을 체크하는 ‘스탯캐스트’ 시스템을 2015년부터 30개 구장 전체에 설치했다. 새롭게 쏟아진 데이터 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 타구의 속도와 타구가 방망이에 맞는 순간 이루는 각도, 즉 타구 발사각이었다. 어떻게 하면 강하고 멀리 날아가는 타구를 만들 수 있을지 연구가 거듭됐다. 보다 빠르게, 멀리 보내기 위해서는 발사각 22~28도, 타구 속도 시속 90마일(144㎞) 이상이 답으로 제시됐다. ESPN은 이를 두고 “새로운 타격의 과학”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새로운 사실이 발견됐다고 해서 곧장 생태계의 변화로 이어지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런데 메이저리그는 홈런 숫자의 급증이라는 형태로 리그 생태계가 변화했다. 단지 데이터를 통한 사실의 증명을 넘어, 데이터 자체가 널리 공유된 덕분이다. 열쇠는 ‘빅데이터’ 자체가 아니라 ‘빅데이터의 공유’였다. 메이저리그는 경기당 3테라바이트(TB)나 되는 데이터를 모두 공개했다. 30개 구단은 물론 수많은 야구팬들이 이를 들여다봤고, 새로운 의미를 찾아냈다. 새로운 훈련법이 쏟아졌고, 타자들은 홈런 숫자를 크게 늘렸다.
근거가 부족했던 한국식 스몰볼은 감독의 지위를 강화시켰다. 선수를 희생시킴으로써 승리를 따내는 게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지게 했다. 승리의 열매는 야구판의 말을 잘 부린 감독의 몫으로 돌아갔다. 물론 패배의 책임 역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감독의 몫이었다. 이에 따른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메이저리그가 데이터를 통해 연구한 결과는 반대에 가까웠다. 선수들이 번트를 대는 대신 힘껏 휘둘러 홈런을 때리는 게 승리에 가까워지는 길이었다. 홈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식과 데이터의 공유다. 지식도 데이터도 권력도 나누는 게 결국 이기는 길이다.
LA |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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