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시즌 아메리칸리그 홈런왕은 47개를 때린 볼티모어의 마크 트럼보(31)였다. 미국 매체들은 자유계약선수(FA)가 된 트럼보가 4년 6000만달러 정도에 계약할 것으로 예상했다.
트럼보의 타율이 2할5푼6리로 비교적 낮고 삼진(170개)이 많아 출루율(0.316)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홈런왕에게 연평균 1500만달러는 ‘거품’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 트럼보는 스토브리그 동안 새 팀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트럼보에게 관심을 보이는 팀이 적었다. 결국 원 소속팀인 볼티모어와 3년 3750만달러에 계약했다. 34세의 노장 1루수 켄드리 모랄레스가 맺은 3년 3300만달러보다 조금 더 많은 규모였다. 보장금액으로 따지면 이번 스토브리그 FA 계약 중 11위에 머물렀다.
홈런의 중요성이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지난 시즌 메이저리그는 홈런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리그 전체가 쏟아낸 5160홈런은 역대 2위, 전체 득점의 40%가 홈런에 의한 것이었다.
야구의 세계관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1950년대 뛰었던 랄프 카이너는 “홈런왕은 캐딜락을 타고 타격왕은 포드를 탄다”고 말했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과학사를 살펴보면 인류의 세계인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측정기술의 발전이다. 인류가 배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항해에 대한 경험이 쌓여서가 아니라 온도계의 측정 정밀도가 높아진 덕분이다. 항법사들은 바닷물의 온도 변화를 조금 더 세밀하게 알 수 있게 됐고 이를 기록해 과거에 무심하게 지나쳤던 조류의 패턴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항해 기술의 발달은 세계사의 흐름을 바꿨다.
야구 역시 측정기술의 발전이 야구를 보는 세계관을 변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과거 플레이 결과에 대한 기록만으로 선수를 평가했지만 이제는 공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측정하고 평가할 수 있다. 트럼보의 약점은 단지 많은 삼진과 낮은 출루율 뿐만이 아니었다. 바깥쪽 낮은 코스에 대한 적응에 실패했고, 상대 투수들은 이 부분을 집중 공략했다. 전반기 OPS(출루율+장타율) 0.923은 후반기 0.754로 뚝 떨어졌다. 과거에는 측정하기 어려웠던 수비력도 이제 평가가 가능해졌다. 트럼보의 외야 수비 능력은 팀에 24점의 손해를 안겨주는 것으로 평가됐다.
내셔널리그 홈런왕 크리스 카터(전 밀워키)는 더욱 심각하다.
홈런 41개를 때렸지만 스프링캠프 시작이 얼마 남지 않은 6일까지도 새 팀을 찾지 못했다. 일본프로야구 진출설이 흘러나오고 있을 정도다. 타율 2할2푼2리도 문제지만 카터 역시 수비력이 심각하게 떨어진다.
클리블랜드 불펜 투수 제프 맨십은 최근 2년 동안 평균자책 2.07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메이저리그 어떤 불펜 투수와 견줘도 밀리지 않는 성적이다. 지난해 가을야구에서도 2.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하지만 클리블랜드는 맨십을 방출했고, KBO리그 NC 유니폼을 입게 됐다. 더 정밀하게 측정된 기록, 구속과 공의 회전수 등이 약점으로 지적됐기 때문이다.
파워하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박병호가 미네소타에서 양도선수로 지명됐다. 하지만 바뀐 세계관은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팬그래프닷컴에 따르면 박병호는 ‘방망이 중심에 맞은 타구 확률’에서 게리 산체스(뉴욕 양키스)에 이은 전체 2위, 라인드라이브, 뜬공 타구의 평균 타구 속도에서 메이저리그 전체 10위로 측정됐다. 타석에서의 선구안은 크리스 카터보다 낫다.
팬그래프닷컴은 “웬만한 타자 1년 연봉도 안되는 3년 900만달러 계약은 충분히 베팅해볼 만한 금액”이라고 덧붙였다.
LA |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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