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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은 한국선수에겐 ‘악연의 땅’

잡지에 보내다

by 야구멘터리 2010. 8. 17.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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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양키즈, 박찬호 피츠버그로 트레이드…
ㆍ위협 되지않는 최약체 팀에 보내

뉴욕은 매력적인 도시다.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 심장부. 일반인뿐만 아니라 코리안 메이저리거에게도 동경의 대상이다. 그러나, 뉴욕은 한국인 메이저리거와는 악연으로 엮였다. 메이저리그 통산 100승을 넘긴 박찬호(37)도 결국 뉴욕 양키스 유니폼을 끝까지 입는 데 실패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끈이다.
 

박찬호가 지난 7월 20일 LA 에인절스전에서 실점을 하고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트레이드 마감시한인 현지시간 7월 31일, 양키스로부터 양도선수로 지명됐다. 그리고 8월 5일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피츠버그 파이리츠로 팀을 옮겼다. 우승반지를 끼겠다는 꿈은 다시 한번 사라졌다. 박찬호는 “슬프지만 야구도 비즈니스”라며 담담하게 이를 받아들였다. 뉴욕은 악연의 도시였다.

3년 전 뉴욕 메츠서도 쓸쓸한 퇴장
박찬호는 지난 2월 뉴욕 양키스를 택했다. 2년간 300만 달러를 주겠다는 전 소속팀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조건을 거부한 뒤 내린 결론이었다. 우승 가능성이 더 높아 보였고, 소원인 우승반지를 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2009년 월드시리즈에서 양키스는 필라델피아 유니폼을 입은 박찬호의 눈앞에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2010년에도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다. 박찬호가 돈보다 더 나은 가치를 선택한 것은, 그 순간 아쉬울 게 없어 보였다. 양키스도 베테랑 오른손 불펜 투수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시계를 3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박찬호는 그때도 뉴욕을 택했다. 줄무늬 유니폼의 양키스가 아닌 메츠였다. 박찬호는 2007년 2월 9일 뉴욕 메츠와 옵션 포함 300만 달러에 계약했다. 2006 시즌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쏠쏠한 활약을 보여준 뒤였다. 그때도 친정팀 샌디에이고는 박찬호에게 6선발 자리를 제안했었다. 금액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박찬호는 뉴욕 행을 택했다. 선발 진입을 보장 받지도 않은 상태였다. 투구 이닝에 대한 옵션이 포함됐기 때문에 선발로 뛰지 못하면 박찬호의 연봉은 뚝 떨어졌다.

도박이었다. 박찬호는 “뉴욕 메츠에서 제대로 된 활약을 해 자신의 재기를 완벽하게 증명한 뒤 다년 계약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찬호의 선택에 대해 전망과 평가는 엇갈렸다.

당시 송재우 메이저리그 해설위원은 “대박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송위원은 “톰 글래빈은 40대에 들어갔다. 에르난데스 또한 부상 없이 시즌을 뛴 적이 거의 없다. 메인과 페레스도 기복이 심한 투수들이기 때문에 박찬호의 강점인 ‘100승 경험’을 잘 살린다면 톰 글래빈에 이어 2선발까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선택에도 아쉬움이 남았다. 워싱턴 내셔널스가 박찬호에게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만약 워싱턴을 택했더라면 박찬호는 시즌 내내 2선발 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메츠가 박찬호에게 원한 것은 보험용 6선발이었다. 스프링캠프를 통해 경쟁을 해야 하는 자리였다.

결과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실패였다. 스프링캠프에서의 치열한 경쟁에서 밀려나면서 박찬호는 결국 선발 로테이션에 포함되지 못했다. 박찬호는 메츠 선발진이 무너진 2007년 5월 1일 플로리다전에 처음 선발 등판했고 4이닝 동안 6안타 7실점으로 부진했다.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박찬호는 양도선수로 지명됐다. 박찬호는 결국 방출됐고 휴스턴 애스트로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뛰어야 했다.

뉴욕은 철저한 비즈니스 논리 우선

박찬호가 지난 7월 9일 시애틀전에서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박찬호가 올 시즌 선택한 뉴욕 양키스도 박찬호에게는 행운의 팀이 아니었다. 첫 단추부터 좋지 않았다. 철천지 라이벌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개막전에서 불을 끄러 마운드에 올랐다가 되레 보스턴의 저스틴 페드로이아에게 역전 홈런을 얻어맞았다. 첫 등판에 패전을 기록하면서 경기가 풀리지 않더니 결국 허벅지 부상이 이어진 탓에 제대로 된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전반기 막판 직구 구위를 회복한 듯 보였지만 조 지라디 감독의 눈에 들지는 못했다.

박찬호는 그토록 입고 싶어했던 양키스의 줄무늬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AP통신에 따르면 박찬호는 구단을 떠나는 마지막 날 기념품을 챙겼다. 당시 600홈런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던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홈 유니폼에 사인을 받아 챙겼다. 외신 등에 따르면 양키스 셋업맨 조바 챔벌레인도 박찬호의 방출을 무척 아쉬워했다.

뉴욕이 거부한 한국인 메이저리거는 박찬호뿐만이 아니었다. 한화와 오릭스를 거쳐 메이저리그를 노크한 구대성도 결국 뉴욕 메츠에서 시즌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구대성은 왼손 스페셜리스트로 메츠에서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쳤지만 무리한 주루 플레이를 하다가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구위가 떨어졌다. 이 또한 뉴욕과의 악연이었다. 서재응도 뉴욕 메츠에서 3시즌 동안 22승24패를 기록하며 전성기를 보냈지만 결국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래서 왜 하필 뉴욕이었을까. 메츠가 아니라 워싱턴이었다면, 양키스가 아니라 필라델피아, 시카고 컵스 등을 선택했더라면 다른 결과를 낳지 않았을까.

메이저리그 에이전트 ㄷ씨는 “한국사람들은 뉴욕을 정말 좋아한다”고 전했다. 미국 진출을 노리는 많은 선수들이 교민이 많은 로스앤젤레스가 아니면 뉴욕을 선호한다는 얘기다. ㄷ씨는 “특히 부인이 있는 경우 뉴욕에 대한 애착이 더 심해진다. 가능하면 뉴욕에 있는 팀으로 갈 수 없느냐고 문의하는 일이 태반이다”라고 말했다.

뉴욕은 미국의 중심이다. 뉴욕을 프랜차이즈로 하는 팀은 단순히 뉴욕만의 팀으로 남지 않는다. 전국구 팀이다. 뉴욕에서의 활약은 미국내 전국구 스포츠 스타의 길로 가는 지름길이다. 높아지는 몸값은 당연히 따라오는 덤이다.
그러나 그만큼 독이 많다. 비즈니스에 철저하다. 유망주를 육성하기보다는 필요할 때 쓰고, 필요 없으면 버리는 논리에 익숙하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박찬호는 결국 피츠버그에서 뛰게 됐다.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4년 연속 꼴찌. 18년 동안 한 번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팀. 박찬호의 가치는 이제 거기까지 떨어진 것일까.

여기에도 뉴욕 팀의 비즈니스 논리가 숨어 있다. 송재우 해설위원은 “단순한 웨이버 공시에 따른 하위팀 지명에 의해 피츠버그로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송 위원은 “양키스는 치밀한 팀이다. 박찬호 정도의 경험을 가진, 게다가 연봉도 싼 우완 불펜 투수는 구하기 쉽지 않다. 포스트시즌에서 써먹기 좋은 선수”라며 “그래서 양키스가 피츠버그를 택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렸다. 양키스 로스터에 필요 없기 때문에 박찬호를 빼냈지만 다른 팀으로 가서 우승을 위협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송 위원은 “필라델피아는 지난해 박찬호 덕을 봤기 때문에 분명히 필요했을 것으로 본다. 양도선수 지명 방식은 웨이버도 가능하지만 트레이드도 가능하다. 필라델피아는 양키스와 접촉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양키스로서는 박찬호가 필라델피아로 가면 당장 자신을 위협하는 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힌트는 있다. 박찬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웨이버 방식이 아닌 트레이드 방식”이라고 밝혔다. 양키스가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피츠버그를 택해 박찬호를 보냈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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