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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초구(First-pitch)-2011 PO1차전

이용균의 가을야구

by 야구멘터리 2011. 10. 16.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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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First-Pitch는 영화배우 김선아였다. 하지만 그때까지 그 누구도 이날 승부를 초구가 가르게 될지 예상할 수 없었다. 사직/김기남기자

16일 사직구장의 열기는 오전부터 뜨거웠다. 외야관중석이 경기 시작 3시간 전부터 가득가득 들어찼다. 외야 관중석에서 관중 한 명이 뛰어내리다 발목을 다치는 사고도 벌어졌다. 컨장한 남성 하나가 외야 그라운드의 공을 주우려 뛰어내렸다가 발목을 다쳤다. 구급대원이 그 관중을 데려갔다. 경기 전부터 사직구장은 뜨거웠다. 그리고 이날의 야구도 뜨/거/웠/다.

Firts-Pitch. 초구 혹은 시구. 플레이오프 1차전. 롯데-SK전의 First-Pitch는 영화배우 김선아였다. 롯데 저지를 입고 마운드에 선 김선아는 딱 영화배우다운, 예쁜 투구 폼으로 포수 미트를 향해 공을 던졌다. 시타자 영화배우 김주혁은 김선아의, 낙차 큰 ‘직구’에 헛스윙을 했다. 사직 구장 팬들은 박수를 보냈지만 시구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부산 팬들은 누구보다 야구를 사랑하는 팬들이었다. 그들의 눈에 시구는 얼른 끝났으면 하는, 그래서 빨리 진짜 야구를 했으면 하는, 그 앞에 걸리적거렸던 지루한 국민의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까지 부산 팬들도, 양팀 선수들도 몰랐다. 이날의 승부를 가른 것은 First-Pitch, 초구였다.

선발 투수가 던지는 초구는 경기 전체, 나아가 시리즈 전체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다. 2010년 한국시리즈 SK 선발 투수 김광현이 삼성 타자들을 상대로 던진 150㎞가 넘는 직구는 그해 한국시리즈 전체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이날 SK의 선발 투수는 김광현이었다. 초구는 스트라이크였다. 하지만 구속이 140㎞ 안팎에 지나지 않았다. KIA와는 다른, 강력한 롯데 타선을 압도하지 못했다. 볼카운트 1-1. 3구째를 김주찬의 방망이를 견뎌내지 못했다. 이날 전격 1번으로 기용된 김주찬은 좌월홈런을 터뜨리며 SK 마운드를 무너뜨렸다. 첫 타자의 홈런은 단지 1점에 그치지 않았다. 롯데 타선은 그 홈런 한 방으로 오랜만에 치르는 경기, 플레이오프 1차전이라는 부담감과 긴장감을 한 번에 날려버렸다. 손아섭의 안타가 이어졌고 비록, 3루수 정면을 향했지만 전준우의 타구도 잘 맞았다. 롯데 타선은 김주찬의 홈런 한 방으로 술술 풀려나갔다.

하지만 또 다시 초구가 문제였다. 김주찬의 홈런 뒤 맞은 1사 만루. 강민호는 김광현의 초구를 건드렸다. 3루수 앞으로 힘없이 굴러갔고 5-4-3 병살타가 됐다. 기선은 제압했지만 1점은 아쉬웠다. SK에게 추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2회 1사 1루에서 문규현은 ‘초구’에 번트를 댔다. 1사 뒤 번트는 ‘초강수’이거나 ‘무리수’였다. 그리고 문규현의 ‘초구’번트는 ‘초강수’가 됐다. 첫 타석에서 홈런을 친 김주찬이 또다시 중전안타를 터뜨리며 타점을 추가했고, 도루를 성공시키자 손아섭이 김광현의 머리를 스치는 무시무시한 중전안타로 김주찬을 마저 불러들였다. 1사 뒤 초구 번트는 2점을 더 불러왔다.

희생번트는 아니었다. 롯데 양승호 감독은 “경기 초반 1사 뒤 1루주자를 2루로 보내는 번트를 지시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양 감독은 “문규현이 기습번트를 댔다. 사실 이번 플레이오프를 준비하면서 준플레이오프 때 SK의 압박 번트 수비를 주의깊게 살폈다. 희생번트 때 평범한 번트를 대기 보다는 슬래시나 기습번트 형태의 (역동적인) 번트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후 롯데는 통한의 9회말 때 조성환의 슬래시로 무사 1·3루 기회를 만든다)

SK 이만수 감독대행은 1회 이대호를 상대로 에이스 김광현에게 고의4구를 지시했다. 이 고의4구는 결국 김광현을 살아나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사직/김기남기자

롯데 선발 장원준은 비교적 호투했다. 좌우 외곽 낮은 쪽의 스트라이크 존을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롯데 포수 강민호도 SK 타자들에 대한 연구가 충분했다. SK 타선의 특징에 따라 좌우 승부가 때맞춰 이뤄졌다. 중심타선 상대로 바깥쪽 위주의 승부를 편 것도 어느 정도 적중했다. ‘어느 정도’라고 표현한 것은 4회 박정권의 타석 때문. 박정권을 상대로 꾸준히 바깥쪽 승부를 했던 장원준-강민호 배터리는 볼카운트 2-2에서 던진 공이 가운데로 살짝 몰리면서 홈런을 허용했다. 지나치게 ‘정석대로’ 갔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버리는 공이라도 몸쪽을 한번 보여줬더라면 중심타선이라도 코스를 좁히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그 홈런 1개는 SK 추격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SK는 이후 안치용의 중전안타, 김강민의 좌전안타, 정상호의 볼넷이 이어졌다. 박진만이 희생플라이를 날렸고, 정근우가 동점 적시타를 때렸다. 정근우의 적시타도 ‘초구’였다.

롯데가 1점을 더 도망가 4-3으로 앞선 6회초 SK 선두타자 김강민은 장원준으로부터 좌선 2루타를 뽑아냈다. 이 공은 이날 장원준의 마지막 공이었고, 김강민 타석의 ‘초구’였다.

투수가 임경완으로 바뀌었다. 임경완의 올시즌 SK전 방어율은 0.93이었다. SK를 상대로 가장 강한 투수였다. 하지만 1사뒤 박진만은 임경완으로부터 동점 적시타를 때렸다. 임경완은 정근우에게 투수 내야안타를 허용한 뒤 고원준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고원준은 삼진과 내야 직선타로 이닝을 마감했다.

그리고 7회, 또 하나의 초구가 승부의 흐름을 바꿨다. 이호준이 볼넷을 골랐고 박정권을 삼진으로 잡았지만 그 다음 공 1개가 담장을 넘어갔다. 안치용은 고원준의 초구 높은 슬라이더를 놓치지 않았다. 안치용이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로페즈로부터 동점홈런을 때렸을 때와 같은 코스의 슬라이더였다. 안치용이 가장 좋아하는 코스, 걸리면 넘어갔다. 승부의 기세가 SK로 넘어갔다. 점수는 6-4가 됐다.

하지만 롯데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7회말과 8회말 각각 1점씩을 뽑았다. 그것도 SK가 자랑하는 박희수, 정대현을 상대로 뽑은 점수였다. 특히 8회말 동점타는 정대현을 천적으로 여기던 이대호가 적시타를 터뜨렸다. 이대호는 홈런이라도 친 듯 1루에서 두 손을 들어 기뻐했다. 정대현은 “실투가 아니었다. 코스도 나쁘지 않았다. 이대호가 준비를 많이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전 타석까지 이대호는 정대현에게 49타수 5안타로 눌리고 있었다. 올시즌 안타 3개를 때렸지만 앞선 2개는 빗맞은 행운의 안타였다. 이날 안타는 지금까지 이대호가 정대현으로부터 때린 가장 깨끗한 안타였다.

9회가 왔다. 롯데 팬들은 어쩌면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을. 아쉽고 아쉽고 또 아쉬운 9회말 롯데의 끝내기 기회. 무사 1·3루, 1사 만루. 결과적으로 대타 손용석은 ‘초구’를 때려 투수 앞 땅볼로 물러났고 손아섭도 ‘초구’를 때려 4-6-3 병살타가 됐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번 포스트시즌 경향신문에 관전평을 기고하는 김용달 IPSN 해설위원은 “그 상황에서 왼손 이인구를 상대를 흔드는 카드로 쓰는 게 어땠나 싶다. 이인구를 먼저 올렸다면 끝내기 상황에서 상대 SK 벤치가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투수가 왼손으로 바뀐다면 그 다음에 손용석으로 바꾸고 생각할 여유와 시간은 물론 승부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양승호 감독은 9회말 상황에 대해 “손아섭의 초구 공략 보다는 손용석의 초구 공략이 조금 아쉽다. 그렇다고 두 선수가 잘못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적극적인 공격이 필요했고 그게 가능성이 높았다”고 했다. 양 감독은 “다만 손용석의 초구 공략이 아쉬웠던 것은 당시 SK가 전진수비를 하고 있었다. 초구를 기다리고 공을 조금 더 봤다면 1루주자 조성환이 2루로 뛸 기회가 있었다. 상대 베이스 커버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단지, 그게 조금 아쉽다”고 말했다. 만약 조성환이 2루 도루를 성공했다면 손용석과의 승부가 더욱 뜨거웠을지 모른다. 손용석 다음 타순의 남자는 이날 최고의 활약을 펼친, 그 누구보다 뜨거웠던 김주찬이었다.

롯데팬들로서는 두고두고 아쉬웠겠지만 9회말은 SK 수비의 승리로 끝났다. 손아섭 타석 때 SK 내야진은 전진수비를 풀고 중간 수비를 택했다. 타자주자가 손아섭, 빠른 왼손타자였음에도 SK 내야진은 홈승부 대신 2루와 1루를 잇는 병살 플레이를 준비했다. 행운이 따르기도 했지만 큰 경기를 많이 치러 본 SK 내야진의 무시무시한 배짱이었다. 홈 승부 포기는 아주 작은 실수라도 끝내기 점수로 이어질 수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2루-1루를 잇는 병살플레이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배짱의 승리였다.

솔직히 운도 따랐다. 정우람이 손아섭을 상대로 던진 초구는 체인지업이었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떨어지지 않는 체인지업은 뜨거운 프라이팬에 손을 올리는 것 만큼이나 위험한 공이다. 그러나 떨어지지 않는 대신 평소 체인지업보다 더 느렸다. 직구 타이밍에 스윙을 시작한 손아섭은 체인지업임을 알아채고 스윙 각을 조절했지만 평소 머릿 속에 그리던 정우람의 체인지업보다 속도가 더 느렸다. 그래서 정타가 되지 않았고, 공은 마침 2루수 정근우 정면으로 향했다. 정상호는 “롯데 타자들이 적극적으로 승부할 것으로 예상했다. 손용석 초구 때는 포크볼을, 손아섭 초구 때는 체인지업을 요구했다. 솔직히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연장 10회초 정상호의 홈런이 나오자 이만수 감독대행이 더그아웃에서 뛰어오르고 있다. 이른바 헐크 세리머니. 이만수 감독대행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하지만 지나치다는 논란을 낳기도 했다. 사직/김기남기자

10회초, 정상호의 홈런이 나왔다. 이때도 ‘초구’가 키였다. 정상호는 “부첵의 바깥쪽 초구를 지켜봤다. 공끝이 밋밋했다. 노려볼만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상호는 2구 낮은 직구를 받아쳐 사직구장 왼쪽 담장을 넘겼다. 그 어떤 경기보다 뜨거웠던, 이만수 감독대행이 경기 뒤 ‘월드시리즈 못지 않은 드라마’라고 했던 플레이오프 1차전이 끝이 났다. SK 7-6 롯데. SK 1승.

경기 종료 직후 SK 더그아웃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그때 한 선수는 “야, 지금 가지 말자. 우리 지금 한 경기 더 해야 하는 거 아냐. 이 분위기에서 한 경기 더”라고 외치고 있었다. 메이저리그의 가장 유명한 명언. Let's Play two의 한국 버전.

반대로 건너편 더그아웃은 가라앉아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만큼 힘들고 짜릿했고, 어려운 승부였다. 롯데 양승호 감독은 “경기 뒤 다들 처져 있었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경기에 졌다면 그것은 감독의 책임이다라고 말했다. 라커룸에 갔고, 뭐라 할 말도 없어서 칠판에 크게 적었다. ‘내일이 있다’라고 다섯글자. 그리고 웃어주고 나왔다”라고 했다. 양 감독의 말대로 이제 5전3선승제 플레이오프는 딱 1경기만 치렀을 뿐이다. 야구의 가장 큰 특징은 ‘내일도 경기를 한다’는 점이다. 이 또한 롯데 버전의 Let's Play two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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