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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데자뷔(deja vu)-2011 PO5차전

이용균의 가을야구

by 야구멘터리 2011. 10. 2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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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2시 부산 사직구장.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의 연속. 사직구장의 파란 하늘. 여전한 부산팬들의 야구 응원. SK 선발 투수 김광현. 어딘가 모르게 닮아 있었다. 정확히 1주일 전에 같은 곳에서 열렸던 1차전. 시구는 김선아에서 롯데의 1라운드 지명 투수 김원중으로 바뀌었지만 묘하게 기시감이 흐르고 있었다. 이날 경기가 딱 그랬다. 어딘가 본 듯한 장면, 본 듯한 결정, 본 듯한 흐름. 데자뷔(deja vu). 

그때와 똑같이 1회초 SK의 공격은 3명의 타자로 끝났다. 1차전에서는 최정이 2루타를 때린 뒤 견제사를 당했고, 5차전에서는 최정이 2루수 뜬 공으로 물러난 점만 달랐다. 1회말 롯데의 공격도 무척이나 닮았다. 김주찬은 그때의 홈런 대신 우중간 3루타로 포문을 열었다. 1점이 난 뒤 1사에서 2루에 전준우가 있는 것도 똑같았다. 그리고 SK 벤치가 이대호에게 고의4구를 지시한 것도 똑같았다. 그 다음 병살타도 닮았다. 다만 병살타의 주인공이 강민호에서 홍성흔으로 바뀐 것만 달랐다.

SK 박정권은 역시 '미스터 옥토버'였다. 5차전 승부가 한 타자의 연타석 홈런으로 갈릴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하기 어려웠다. 사직/이석우기자

1-0으로 경기가 시작됐다. SK 선발 김광현은 1차전과 마찬가지로 흔들렸다. 롯데 타선 특유의 ‘긁어치는 스윙’ - 팔꿈치를 쭉 펴가면서 크게 휘두르는 스윙 - 에 김광현의 슬라이더 궤적이 맞아 떨어졌다. 롯데 타자들이 김광현의 슬라이더를 밀어쳐 계속해서 우익수 쪽 안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SK 포수 정상호는 5차전을 앞두고 “(김광현의)공이 지나갈 틈이 작다. 롯데 방망이가 직구 타이밍에 나오다가도 슬라이더가 자꾸 걸린다”고 했다. 정상호는 “무조건 낮게 던지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결국 김광현은 2회말 선두타자 강민호를 볼넷으로 내보낸 뒤 고든으로 바뀌었다. 이 또한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 해고당한 전임 김성근 감독이 자주 쓰던, 왼손 선발 조기 교체 뒤 오른손 투수 투입. 김광현과 고든은 각각 왼손 오른손 투수인 것 뿐만 아니라 공의 구질에서도 정반대 스타일이다. 

김광현이 슬라이더를 중심으로 헛스윙과 땅볼을 유도해내는 스타일이라면, 고든은 포스트시즌 들어 힘있는 직구 위주의 피칭으로 외야 뜬 공을 유도하는 스타일이었다. 롯데 타자들은 2회부터 정 반대의 투수와 싸워야 했다.

0-1로 뒤진 SK의 3회초 공격. 선두타자 정근우가 2사 뒤 중전안타로 살아나갔다. 그리고 선발 투수 송승준에게 볼카운트 2-1에서 견제사로 아웃됐다. 연거푸 몇 개의 견제구가 이어진 끝이었다. 2차전과 겹치는 장면. 정근우는 2차전 3회초 2사 뒤 출루했지만 2루 도루를 시도하다 잡혔다. 그때 롯데 투수는 송승준, SK 투수는 고든이었다. 야구가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원래 단기전 시리즈는 앞선 경기들의 실패와 성공이 뒤섞이면서 재현과 불발이 오고가는 경기다. SK에서 주루사가 또 나왔다. SK는 2차전에서 3회 정근우의 도루자와 6회 박재상의 견제사로 흐름을 뺏긴 채 경기를 내줬다. 둘 모두 송승준이 마운드에 있을 때 나왔다. 롯데가 경기 초반 추가 득점 기회를 놓치며 1차전을 닮았던 경기의 흐름이 정근우의 도루자로 2차전 쪽으로 넘어왔다. 2차전은 롯데가 이긴 경기였다.

공방이 이어진 4회초, 송승준은 1사 뒤 최정에게 좌중간 안타를 내줬다. 1사 1루. SK의 기동력은 정근우를 견제사 시킴으로써 한 차례 막았다. 최정은 3차전에서 도루를 성공시켰다. 롯데 배터리의 견제가 계속됐다. 롯데 양승호 감독은 플레이오프를 준비하며 유리한 카운트에서 버리는 공을 ‘직구’로 할 것을 주문했다. 굳이 변화구로 공을 뺄 필요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실제 그 바깥쪽 직구 작전으로 SK의 도루 4개를 잡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독이 됐을지도 모른다. 박정권이 타석에 들어섰을 때 롯데 배터리는 3구 연속 바깥쪽 직구 승부를 했다. 4구째도 또 직구. 하지만 이번에는 가운데 낮은 쪽으로 몰렸다. 직구 3개를 연거푸 지켜본 박정권은 벼락같은 우월 홈런을 날렸다. 사직구장이 싸늘하게 식었다. SK가 2-1로 역전시켰다. 박정권의 홈런은 1차전에서도 나왔다. 그때도 딱 4회였다. 다시 경기의 흐름이 1차전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1차전은 엎치락 뒤치락 끝에 SK가 승리한 경기였다. 사직구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4회말 롯데의 공격. 선두타자는 이대호였다. 1차전에서 이대호는 첫 타석에서 고의4구를 얻었고 두번째 타석에서 삼진을 당했다. 이대호가 삼진을 당한다면 경기 분위기는 1차전대로 흐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이대호는 4차전 홈런 이후 조금 달라졌다. 상대의 바깥쪽 승부를 읽었고, 가볍게 밀어쳐서 타구를 우익선상에 떨어뜨렸다. 

지명타자 안치용 대신 선발 출전한 우익수 임훈이 깔끔하게 처리했다. 이대호가 조금 더 발빠른 타자였다면 2루를 갈 만한 타구였다. 하지만 무사 1루 기회는 득점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홍성흔·강민호·황재균이 나란히 우익수 방향 큼지막한 타구를 날렸지만 임훈이 놓치지 않았다. 만약 이대호의 발이 조금 더 빨라서 2루를 갔더라면 이어진 우익수 뜬 공 2개로 태그업 플레이 2개가 이어지면서 동점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기회는 무산됐다. 야구는 원래 기회 다음에 위기가 찾아오는 종목이다.

5회초 송승준은 박진만과 정상호를 깔끔하게 처리했다. 다음 타자 임훈 타석 때 롯데 양승호 감독이 마운드에 올랐다. 4와 3분의 2이닝을 잘 던진 투수. 그리고 올라온 장원준. 양 감독의 교체 타이밍은 4차전을 떠올리게 했다. 과감한, 빠른 투수교체. 4차전은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그때 장원준은 공 1개로 박정권을 병살 처리했다. 

롯데의 5차전도 만만치 않았다. 홍성흔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시리즈에서 가장 쏠쏠한 활약을 펼친 롯데 타자였다. 결정적인 순간 당겨칠 줄 아는 타자다. 사직/이석우기자

그러나 임훈은 박정권과 달리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5구째를 때려 중전안타를 만들었다. 그래도 양 감독은 움직이지 않았다. 양 감독은 경기 뒤 “정근우가 장원준 상대로 안타가 1개도 없었다. 왼손 박재상까지 장원준이 막아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정근우 6타수 무안타, 박재상 5타수 무안타) 하지만 운이 SK쪽으로 흘렀다. 정근우가 때린 타구는 투수와 3루수 유격수 사이를 향했다. 게다가 불규칙 바운드가 섞였다. 내야 안타가 됐다. 행운이 따른 내야 안타는 3차전에서도 있었다. 당시
 
타구는 사도스키의 글러브를 맞고 2루수 조성환 앞에서 불규칙 바운드가 되면서 1루주자가 3루까지 갈 수 있었다. 행운이 따른 내야 안타가 나온 3차전은 SK의 승리였다. 박재상은 우전안타로 임훈을 불러들였다. 3-1. 투수가 바뀌었다. 4차전 선발이었던 크리스 부첵이 올라왔다. 초구는 폭투가 됐고 3루주자 정근우가 홈을 밟았다. 4-1. 분위기가 SK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6회초 박정권은 무사 1루에서 또다시 오른쪽 담장을 넘겼다. 6-1. 승부는 거의 끝이 난 것처럼 보였다. 6회초가 끝났을 때 점수는 5점차였다. 

그러나 SK로서도 불안 요소가 남아 있었다. 잘 던지던 고든을 5회말 김주찬의 2루타 뒤에 박희수로 교체된 터였다. 이번 데자뷔는 이번 플레이오프의 재현이 아니었다. SK로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딱 1경기. 2009 한국시리즈 7차전을 떠올리게 했다. 그때 SK는 6회초가 끝났을 때 5-1로 4점을 앞서고 있었다. 그때도 5회말에 호투하던 글로버를 내리고 이승호를 투입했었다. 뒤에 남은 투수들이 충분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2009년에도 2011년에도 SK는 선공이었다. 9회말 수비가 불안해질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때도, 이번에도 불펜들은 지쳐가고 있었다.

노래 가사처럼 언제나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6회말 선두타자 전준우가 우전안타로 살아나갔다. 이대호는 고의4구나 다름없는 볼넷을 얻었다. 무사 1·2루, 홍성흔은 주자가 있을 때 거의 대부분 그렇듯 타구를 힘있게 밀어쳤다. 우중간을 완벽하게 갈랐다. 롯데가 2-6으로 따라붙었다. 아직도 아웃카운트는 0. 주자는 2루와 3루에 있었다. 강민호 타석, SK 이만수 감독대행은 정대현을 마운드에 올렸다. 강민호는 올시즌 정대현 상대 7티수 무안타였다. 

기록은 기록일 뿐이다. 장원준 상대로 무안타였던 정근우가 내야 안타를 쳤고 나란히 무안타였던 박재상이 적시타를 친 것처럼 강민호는 좌중간 펜스 상단을 맞는 호쾌한 2루타를 정대현으로부터 뽑아냈다. SK가 자랑하는 박희수와 정대현이 차례로 무너졌다. 믿을만한 불펜은 정우람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2009년 끝내기 홈런의 기억이 스물스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데자뷔. 어디선가 한 번 본듯한 기억. 점수는 어느새 2점차까지 다가왔다. 2009년에도 나지완의 2점홈런으로 3-5 1점차가 됐었다. 그 뒤 안치홍의 홈런, 최경환의 3루타 등이 나오며 5-5 동점이 됐더랬다. 사직구장에 다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7번 황재균은 초구에 번트 자세를 취했다. 스트라이크. 번트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2구째 또 번트자세. 이번에는 볼이었다. 그리고 3구째, 이날 경기 최악의 선택이 나왔다. 황재균은 번트 대신 슬래시 작전으로 바꿔 공을 때렸고, 타구는 유격수 박진만의 글러브에 그대로 꽂혔다. 2루주자 강민호는 움직이지 못했고, 아웃카운트 1개만 늘었다. 이후 대타 박종윤과 문규현이 차례로 외야 뜬 공으로 물러났다. 점수를 좁히지 못했다. 2점이 남은 것도 문제지만 경기 후반 상대를 흔들 수 있는 노련한 베테랑, 2루수 조성환이 빠진 게 더 아쉬웠다. 2009년 한국시리즈의 데자뷔 현상이 차츰 옅어지고 있었다. 이날 경기는 다시 SK가 이겼던 3차전을 닮아가고 있었다. 

롯데는 7회에도 선두타자 김주찬의 안타로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직전 이닝 슬래시의 기억이 이후 작전을 어렵게 만들었다. 발빠른 주자와 발빠른 타자 손아섭. 여러가지 옵션이 있었지만 희생번트가 선택됐다. 1사 2루에서 전준우와 이대호가 각각 뜬 공과 내야 땅볼로 물러났다. 중심타선을 막아낸 것은 손아섭 타석때 마운드에 오른 정우람이었다. 손아섭의 번트는 1차전 9회말 끝내기 기회 때 투수 정우람과의 승부 실패(병살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롯데의 마지막 기회가 끝이 났다. 2009 한국시리즈 7차전에 있었던 신인급 타자의 홈런과 베테랑의 3루타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SK 불펜은 바닥이 난 상태였지만 롯데의 추격이 더 이상 이뤄지지 못했다. 오히려 SK는 8회 3루수 황재균의 실책과 안치용 김강민의 적시타로 2점을 더 달아났다. 점수는 8-4가 됐다. 또다시 기시감. 롯데의 성적이 좋지 않던 시절의 롯데 야구. 실책 뒤 실점. 데자뷔는 계속해서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롯데의 가을야구가 그때 끝나가고 있었다. 경기장을 빠져나가던,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남자 아이는 함께 간 아버지에게 “아부지, 야구 끝났어요”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기특하다는 듯 “OO 엄마, 우리 OO가 야구 끝났댄다. 잘 아네”라고 말했다. 여섯 살 아이가 보기에도 이날의 야구는 8회에 끝이 나고 있었다. 

KIA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이겼을 때 이만수 감독대행은 한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롯데마저 꺾고 5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짓는 순간 이 대행은 두 손을 번쩍 처들었다. 사직/이석우기자

SK 정우람은 9회까지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9회말 1사 1루, 이날 홈런 빼고 안타 2개. 2루타, 3루타를 기록한 롯데 김주찬은 마지막 타석에서 사이클링 히트를 노렸지만 타구가 담장 앞에서 박재상에게 잡혔다. 손아섭의 마지막 타구도 좌익수 뜬 공이었다. 롯데의 가을야구가 끝났다. SK 8-4 승리. 시리즈 전적 3승2패. 5차전 MVP와 플레이오프 MVP는 물론 연타석 홈런을 때린 SK 박정권. SK는 프로야구 최초로 5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또 데자뷔, 지난해와 똑같이 삼성과 SK가 맞붙는 한국시리즈. 김성근 감독이 없지만 포스트시즌 들어 더욱 김성근 감독 스타일의 야구를 선수들이 알아서 하는 SK. 선동열 감독이 없지만 선동열 감독 스타일의 불펜 야구를, 오승환의 가세로 더욱 충실히 하고 있는 삼성의 재대결. 아바타 혹은 데자뷔.


경기가 끝났어도 데자뷔는 끝나지 않았다. 비로 취소된 5차전을 하루 뒤에 치르며 경기를 가져간 2011년 SK는 2009년 김현수의 홈런을 삼킨 비가 고마웠던 2009년 SK를 또 닮았다. 그리고 또 하나. 이틀 뒤 한국시리즈를 해야 한다는, 불펜 소비를 최소화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겠지만 정우람은 이날 너무 많은 공을 던졌다. 정우람의 투구수는 38개였다. 2009년 한국시리즈 끝내기 홈런을 맞은 투수 채병용의 데자뷔. 채병용은 7차전에 앞서 너무 많은 공을 던지고 있었다. 2002년 동점 3점홈런을 맞은 이상훈도 마찬가지였다. 데자뷔의 연속. 정우람의 9회 표정은 좋지 않았다. 부상을 당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정우람은 경기가 끝난 뒤 박정권과 더그아웃에서 방송 인터뷰를 기다리며 “손가락이 너무 아프다. 이상하다. 이렇게 아픈 적이 없었는데”라며 고개를 갸우뚱 했다. 자고 나면 나을 수 있는 통증이지만 좋은 신호는 분명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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