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⑪인내(Endurance)-2011 KS2차전

이용균의 가을야구

by 야구멘터리 2011. 10. 26. 11:06

본문

삼성 오치아이 투수코치는 트위터를 통해 '장원삼이 좋다'라고 밝힌 바 있다. 오치아이 코치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장원삼은 이날 생애 최고이 피칭을 했다. 대구/이석우기자

참을성. 기다림. 삼성 타선의 특징은 인내(Endurance)다. 삼성 타자들은 좀처럼 휘두르지 않는다. 공을 끝까지 보고 타격한다. 2011 프로야구 정규시즌에서 삼성 타선이 한 타석에서 상대한 평균 투구수는 4.01개였다. 8개구단 단연 1위다. 유일하게 4개 이상의 투구를 하게 만들었다.
 


초구를 치지 않는다. 삼성 타선의 초구 스윙률은 26.3%다. 넥센(26.0%)에 이어 2번째로 적게 초구에 방망이를 냈다. 가장 초구를 좋아하는 팀 롯데와 차이는 극명하다. 롯데의 초구 스윙률은 무려 34.9%다. 

SK는 그 롯데와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올라온 팀이었다. 초구를 좋아하는 롯데를 상대로 SK 투수들은 초구로 유인구를 던지는 데 익숙했다. 그러나 삼성 타선은 정 반대다. 초구에 방망이가 나오지 않는다.

2차전에서 삼성 타자들은 8회까지 35명의 타자가 들어섰다. 이 중 초구에 방망이를 휘두른 타석은 딱 6번 뿐이다. 그 중 3번은 강봉규였고 2개가 안타가 됐다. 나머지 3번 중 2번이 박한이. 1번은 뜬 공으로 아웃됐고, 1번은 파울이 됐다. 신명철의 6회 초구 파울이 나머지 1번이다.

SK 마운드를 적잖이 괴롭혔다. 나머지 29번의 타석에서 초구 볼이 된 경우가 18번이었다. 볼카운트 0-1, 유리한 상황에서 타격을 할 수 있었다. 

삼성 타선의 인내는 몇가지 효과를 얻는다. 앞서 살핀대로 유리한 카운트에서 노림수를 좁힐 수 있다. 대개 포수들이 초구를 통해서 타자의 노림수를 살피는데 이를 위해서는 한복판 스트라이크 보다는 유인구나 외곽구가 유효하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포수에게 노림수를 들키지 않을 수 있다. 볼카운트가 유리해진다면 더욱 좋다. 무엇보다 투수의 투구 수를 늘릴 수 있다. 이날 가뜩이나 지친 SK 투수들은 삼성의 공격 8이닝을 막으며 총 143개의 공을 던졌다. 반면 삼성 마운드는 1이닝을 더 던지고도 146개에 그쳤다. 체력전이 된다면, 삼성이 유리해진다.

삼성 선발 장원삼은 “생애 최고의 피칭을 했다”고 했다. “이렇게 좋은 날이 있었을까 싶다”고 했다. 5와 3분의 1이닝을 3안타 무실점으로 막았다. 직구와 슬라이더가 거의 완벽했다. 전날 차우찬에 이어 장원삼마저 막강한 구위를 자랑했다. 장원삼은 삼진을 무려 10개나 잡았다. 전체 아웃카운트 16개 중 63%가 삼진이었다. SK는 몇 차례 득점 기회를 잡았지만 전혀 이를 살리지 못했다. 전날에 이어 SK 타선의 피로도는 회복되지 않았다. 

배영섭은, 박희수의 느린 커브를 놓치지 않았다. 자세가 완전히 무너진 가운데 공을 끝까지 본 덕분이었다. 박희수로서는 느린 공 보다는 빠른 공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대구/이석우기자

승부는 6회에 갈렸다. 선두타자 최형우가 볼넷을 골랐다. 초구 스트라이크를 지켜 본 최형우는 이어진 볼 4개에 손을 대지 않았다.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은 채 볼넷을 얻었다. 1사 뒤 강봉규가 우전안타를 터뜨려 1사 1·2루, 전날 영웅이었던 신명철이 삼진으로 물러나는 바람에 2사 1·2루, 득점 가능성이 점점 희미해져 갈 때 였다.


진갑용이 6구 승부 끝에 중전안타를 때렸다. SK 중견수 김강민이 전진 수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2루주자 최형우가 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다음 타자는, 골절상에서 돌아온 배영섭이었다. 그리고 배영섭은 자신의 한국시리즈 2번째 안타를 결승 적시타로 만들었다. 중전 안타 때 3루주자 최형우와 2루주자 강봉규가 모두 홈을 밟았다. 

이 타석 또한 인내의 승리였다. 배영섭은 초구, 2구 스트라이크를 모두 흘려보냈다. 이후 어려운 승부를 모두 커트해 나가면서 버텼다. 볼카운트 2-1, 6구째,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박희수-정상호 배터리는 ‘커브’를 선택했다. 배영섭의 손등은 완벽하게 돌아오지 않았다. 대부분의 타구가 밀어치는 타구다. 몸쪽 깊숙한 공에 약점이 여전히 있다. 커브는, 기다리는 시간이 있다는 점에서 배영섭에게 안성맞춤이었다. 배영섭은 커브가 다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고, 거의 바닥에 떨어진 공을 가볍게 받아쳐 중전안타로 연결했다. 삼성의 승리를 예감케 하는 2점이었다.

박희수는 SK가 가을야구에서 건진 최고의 수확이었다. 하지만 이만수 감독대행의 믿음이 교체 타이밍을 어렵게 만들었고,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을 더 많이 안은 채 내년시즌을 준비하게 됐다. 대구/이석우기자

그리고 2점이면 충분했다. SK는 8회초 정현욱을 상대로 2안타, 볼넷 1개를 집중시키며 1점을 따라붙었다. 무사 1·2루 기회가 이어지자 삼성 류중일 감독은 지체없이 마무리 오승환을 투입했다. 2이닝을 던져야 했다. 2009년 이후 처음이었다.


SK 벤치는 기다리지 못했다. 강한 직구를 가진 오승환을 상대로 기다리는 것은 오히려 제 몸을 제 손으로 묶는 일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안치용은 초구에 보내기 번트를 댔지만 위로 솟았다. 포수 진갑용이 가볍게 잡아 아웃카운트를 늘렸다. 김강민은 삼진이었다. 최동수가 중전안타를 때렸지만 마침 교체된 중견수 이영욱이 완벽한 송구로 2루주자 최정을 홈에서 잡아냈다. 최정은 “충분히 세이프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몇 걸음 앞에서 공이 포수에게 갔다. (홈에서 크로스가 벌어진 뒤) 많은 생각을 했다. 혹시 스킵 동작이 잘못됐나, 3루를 돌 때 각이 너무 컸나, 슬라이딩을 하지 말고 부딪혔어야 했나, 등 많은 생각을 했다. 너무 아쉬웠다”고 했다. 

9회 올라온 오승환은 ‘돌부처’ 별명이 무색하게, 무자비한 공을 던졌다. 이호준-최윤석-정근우가 모두 삼진으로 물러났다. 인내(Endurance)의 또다른 뜻은 ‘내구성’이다. 2이닝을 던지고도 오승환은 끄떡없었다.

SK로서는 지나친 기다림이 결국 화를 불렀다. 실점 상황이던 6회 2사 1·2루 진갑용 타석 때 교체 타이밍을 놓쳤다. 박희수의 위력이 떨어졌다. 이만수 감독 대행은 “뒤에 불펜이 없었다. 엄정욱으로 교체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뒤에 정대현 밖에 남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정우람은 1·2차전에 등판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플레이오프 5차전 3이닝 투구가 무리였다. 왼손 검지를 다쳤다. 3이닝은 너무 길었고, 결국 내구성(Endurance)에 문제를 일으켰고, 2차전을 내줬다. 

SK 안치용은 오승환을 상대로 보내기 번트에 실패했다. 타석에 들어서기 전 SK 벤치는 번트 의사를 물었고 안치용은 "번트 자신있다"고 답했다. 대구/이석우기자

삼성이 홈에서 열린 1·2차전을 모두 승리했다. 오승환이 9회초 정근우를 삼진으로 잡는 순간 대구구장 하늘에 폭죽이 터졌다. 삼성 2-1 SK. 2차전 MVP 배영섭. 역대 한국시리즈에서 첫 2경기 연승이 나온 것은 14번이었다. 그 중 한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연승 팀이 우승했다. 삼성의 우승 확률은 92.9%. 하지만 그 예외 한 번이 2007년 SK 였다. 두산에게 2패를 당한 뒤 4연승에 성공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