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와 KIA가 맞붙은 준플레이오프 때였다. KIA 이범호는 허벅지 근육 부상에서 갓 돌아왔다. 이범호는 일본 요코하마의 미나미 공제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일본인 한국야구 전문가 무로이씨는 요코하마 미나미 공제병원에 대해 “스포츠선수들이 많이 찾는 전문 병원”이라고 말했다. 이범호는 “한국에서는 보지 못한 독특한 치료법들도 있었다. 긴 안테나 2개 같은 것을 부상 부위에 대고 전기를 흘리는 것 같은데 그것도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범호는 “그런데, 나는 근육 부상이다. 만약 뼈가 부러진 배영섭이 한국시리즈에 출전할 수 있다면 그 병원, 정말 용한 거다”라고 덧붙였다.
한국시리즈가 개막했다. 경기에 앞서 폭죽이 하늘을 뒤덮었다. 가을 축제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대구/이석우기자
삼성 배영섭은 지난달 21일 대구 두산전에서 두산 선발 김승회의 투구에 왼쪽 손등을 맞아 중수골이 부러졌다. 뼈가 부러졌기 때문에 한국시리즈 출전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같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이범호도 배영섭의 한국시리즈 출전을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배영섭은 한국시리즈 출전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은 물론 1차전에서 중견수·9번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기적과 같은 ‘회복(Recovery)’ 이었다. 1차전의 키워드는 회복이었다. 삼성 선수들의 시즌 막판 컨디션은 썩 좋지 않았다. 삼성의 정규시즌 마지막 5경기 팀 타율은 2할1푼5리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도 21득점을 올렸다. 볼넷을 20개나 골라냈다. 타율과 달리 팀 출루율은 0.303이었다. 같은 기간 팀은 2승1무2패를 거뒀다. 팀 방어율은 3.64였지만 5경기에서 선발 투수의 방어율은 5.40으로 좋지 않았다. 1차전 선발 매티스는 시즌 마지막 등판에서 7이닝 동안 7실점했다. 하지만 18일 간의 준비 기간은 ‘회복’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 기간 동안 뼈가 부러졌던 배영섭도 돌아올 수 있었다. 삼성은 마운드가 강점인 팀이다. 그 투수들의 충분한 휴식과 함께 피로에서 ‘회복’됐다. SK와의 한국시리즈 1차전 선발 투수 매티스는 강한 직구를 회복했다. 전체적인 팀 밸런스도 회복됐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1차전을 앞두고 자신감이 넘쳤다. “오늘 승부는 우리가 5점을 내면 이길 것”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감독의 예상은 틀렸다. 삼성의 마운드는 감독의 예상보다 더 강했다.매티스는 4이닝 동안 4안타를 내줬지만 위기 때마다 땅볼을 유도하며 효과적인 피칭을 했다. 그리고 2-0으로 앞서자 류 감독은 5회부터 왼손 투수 차우찬을 올렸다. 차우찬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완벽한 피칭을 했다. 완벽이라는 말 그대로, 3이닝 퍼펙트.
차우찬은 류중일 감독이 미디어데이 때 했던 말을 '사실'로 만들었다. 대구/이석우기자
가장 필요했고, 가장 절실했던 ‘회복’이 이날 2회 이뤄졌다. 차우찬은 선발 매티스가 2회 선두타자 안치용을 볼넷으로 내보내자 불펜에 올라 몸을 풀기 시작했다. 차우찬은 “2회 몸을 푸는 데 갑자기 밸런스가 돌아왔다. 직구가, 기적처럼 살아났다”고 말했다. 차우찬은 시즌 초반 이후 직구 구위가 떨어졌다. 지난해 후반기 보여줬던 강한 직구가 사라졌다. 직구가 평범해지면 슬라이더도 덩달아 약해질 수밖에 없다. 자칫 평범한 투수로 떨어질 뻔한 위기였다. 류 감독은 전날 미디어데이에서 “차우찬의 구위가 떨어진 게 아니라 좋아졌기 때문에 선발이 아니라 불펜에서 쓸 것”이라고 말했다. 왼손 릴리프가 권혁 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차우찬이 가세하면 불펜이 더 강해질 것이라는 뜻이었다. 이는 류 감독의 연막작전이었다. 차우찬은 “솔직히 구위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불펜으로 밀려났다. 미리 통보를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겨울 체인지업에 집착했던 것이 이유 중 하나였다. 삼성 허삼영 전력분석원은 시즌 후반 차우찬의 구위 하락 이유에 대해 “체인지업이 독이 됐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체인지업은 제대로 갖춰졌을 때 직구를 더욱 살리는 역할을 하지만 자칫 직구의 구위를 함께 잡아먹는 독이 묻은 사과가 될 수도 있다.차우찬은 “그래서 시즌 중반 이후 체인지업을 버렸다”고 했다. 그랬던, 위험했던, 자칫 다시 찾을 수 없을지도 몰랐던 차우찬의 직구가 회복됐다. 5회 3타자를 내야 뜬 공과 삼진 2개로 돌려세운 뒤 포수 진갑용은 차우찬에게 “오늘 직구로만 가자”라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차우찬의 직구는, 차우찬의 말대로 “기적처럼 회복됐다”.다른 공은 필요없었다. 차우찬은 직구만 던졌다. 가끔 커브를 섞었다. “슬라이더는 3개밖에 던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통했다. 3이닝 동안 아웃카운트 9개 중 5개를 삼진으로 잡아냈다. 당초 삼성이 준비한 SK 4번 박정권 공략법은 변화구. 선발 매티스는 박정권을 상대로 두 타석에서 공 7개를 모두 변화구로 승부해 잡아냈지만 차우찬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초구 직구로 스트라이크를 잡았고, 1-2에서 또다시 직구로 파울을 끌어냈다. 결정구는 120㎞ 커브, 헛스윙 삼진이었다. 직구가 워낙 좋았다. SK의 한 타자는 “헛스윙을 하고 돌아보면 대개 포수 미트에 공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헛스윙 하고 나자 이미 포수가 투수에게 공을 던지고 있더라”라고 했다.2루수 신명철의 정규시즌 마지막 5경기 타율은 0.083이었다. 5경기에서 12타수 1안타에 그쳤다. 4회말 1사 1·2루에서 채태인이 삼진으로 물러났을 때 대구구장 팬들이 큰 탄식을 내뱉었다. 아웃카운트가 늘어났기 때문일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다음 타자가 신명철이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신명철은 파울 4개를 커트하는 집중력을 보였고, 이날 승부를 가른 커다란 좌중간 2루타를 만들어냈다. 신명철의 ‘타격감’도 어느 정도 회복됐다.골절상에서 회복된, 한국시리즈 첫 출전의 배영섭은 5회 선두타자로 나와 한국시리즈 첫 안타를 기록했다.
삼성은 오승환의, 오승환에 의한, 오승환을 위한 팀이었다. 그리고 오승환은 자신이 왜 오승환인지를 1차전에서 증명했다. 대구/이석우기자
그리고, 삼성의 불펜은 회복이고 자시고 없었다. 완벽했다. 안지만은 가볍게 2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내려갔다. 권혁이 안타를 내줬지만 삼성에는 마무리 오승환이 있었다. 첫타자 최정과는 어려운 승부(중견수 뜬 공)를 했지만 박정권을 파울플라이, 안치용, 이호준을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삼성 2-0 SK. 한국시리즈 1차전 승리팀의 우승 확률은 81.33%다. 경기 MVP는 차우찬. PS. 반면 SK 선수들은 플레이오프 5차전의 피로에서 회복되지 못했다. 삼성 전력분석 관계자는 “8회말 오승환이 상대한 첫 타자 최정의 타구는, 최정의 컨디션이 정상이었다면 평범한 뜬 공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오승환이 약간 긴장했다. 확실히 최정이 지친 것 같다”고 말했다. 박진만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이만수 감독대행은 경기가 끝난 뒤 “박진만은 2차전에 쉰다. 최윤석이 유격수로 나선다”라고 말했다. 1경기가 정규시즌 10경기 같다는 포스트시즌을 SK는 10경기째 치렀다. 박진만의 코에 여드름 비슷한 것이 솟아 있었다.
kia : killed in action 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