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⑭마무리(Closer)-2011 KS5차전

이용균의 가을야구

by 야구멘터리 2011. 10. 3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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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뒤 팬들 앞에서 선수들의 춤을 추는 것은 삼성의 전통처럼 돼 버렸다. 잠실/이석우기자

한국시리즈는 단기전. 경기의 운영계획, 플랜은 뒤로부터 짜여진다. 승리를 위해서는 상대보다 한 점 더 뽑는 것. 마찬가지로 상대보다 한 점 덜 주면 된다. 승리를 위해 아웃카운트 27개를 잡아내면 된다. 그 27개를 어떻게 잡아내는가 하는 것. 플랜의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삼성은 강했다. 플랜을 짜기가 쉬웠다. 다른 이유도 많지만, 다른 투수들도 많지만, 무엇보다 오승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승환이 마지막 아웃카운트 3개를 확실하게 잡아줄 수 있기 때문에 삼성이 승리를 위해 잡아야 할 아웃카운트는 24개로 줄어든다. 

8회 오를 수 있는 투수는 안지만, 왼손 타자가 끼어 있을 경우 권혁. 그 앞서 정현욱, 권오준이 각각 1이닝씩을 막아준다면 선발 투수는 5이닝만 막아주면 된다. 그렇다는 얘기다. 아직 언급되지 않은, 다른 팀에 가면 마무리로 뛸 수 있는 투수들이 삼성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는 수두룩하다. 마음만 먹는다면, 매이닝 1명의 투수를 투입해서 막아낼 수도 있다. 

이런 경기 운영이 가능한 것도 역시 오승환의 존재 덕분이다. 단 1점이라도 앞서 있다면 막아낼 수 있다는 믿음. 삼성의 경기 운영 플랜은 오승환으로부터 시작된다.

류중일 감독은 31일 5차전을 앞두고 “(6차전 갈 경우 선발로 예정된) 매티스를 제외하고 모든 투수들이 불펜에 대기한다”고 말했다. 차우찬이 선발로 나서는 가운데 2차전 선발이었던 장원삼도 왼손 불펜으로 나설 수 있다. 

안지만-오승환으로 이어지는 삼성의 철벽 계투진은 감독의 '계산'을 쉽게 만든다. 잠실/이석우기자

실현 가능성은 없었지만 저마노-배영수-정인욱-윤성환-장원삼-권오준-권혁-정현욱-안지만-오승환으로 이어지는 초특급 철벽 계투진을 꾸릴 수도 있다. 차우찬이 1이닝, 오승환이 1이닝을 막아준다고 가정하면, 나머지 9명이 책임져야 할 아웃카운트는 2.3개씩 뿐이다. 게다가 이날 5차전은 삼성의 홈 경기로 치러졌다. 말 공격을 남겨 둔 팀의 막강 불펜은 상대에게 더욱 큰 부담이다.


삼성 타선의 특징은 ‘기다린다’는 점이다. 좀처럼 방망이를 내지 않는다. 김정준 SK 전력분석팀장은 1차전을 앞둔, 포스트시즌 유일했던 전력분석미팅에서 SK 배터리를 대상으로 삼성 타선을 분석했다. 

김 팀장에 따르면 삼성 타선은 볼카운트 2-0, 2-1에서 스윙 타이밍이 늦었다. ‘중타임’으로 표현하는데 공을 끝까지 본 뒤 스윙을 하는, 정타 보다는 커트에 능한 스윙의 형태를 띠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공을 잘 골라 2-2, 2-3가 되면 삼성 타선은 더욱 힘이 나는 타선이 됐다. 노림수가 강했고 집중력이 높아졌다. 

SK 투수들에게 주어진 숙제는 ①2-0, 2-1 유리한 카운트 때 버리는 공을 너무 쉽게 버리지 말 것. ②2-0, 2-1에서 오히려 과감하게 승부할 것이 됐다. 어느 정도는 적중했다.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타선의 득점력이 떨어졌던 것은 SK의 분석이 어느 정도는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실제 삼성 타선은 볼카운트 2-0에서 0.154(4위), 볼카운트 2-1에서 0.166(7위)로 부진했다. 그러나 볼카운트 2-2에서 0.188(5위)로 조금 높아진 뒤 2-3에서 장타율(0.353)은 리그 1위다.)

삼성 타선이 ‘기다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삼성이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점수는 - 플레이오프 롯데와 달리 - 1~2점이면 충분하다. 적극적인 스윙으로 대량득점을 노릴 필요가 없었다. 어떻게든 출루를 늘린다면 점수가 날 확률이 조금씩 높아졌다. 여기에 기동력을 갖춘 팀이다. 

주자가 있을 때 상대투수가 갖는 부담감을 이용하는게, 타석에서 노림수를 갖고 큰 스윙을 하는 것 보다 득점 확률이 높았다. 물론, 이는 삼성 불펜의 단단함을 타선이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타자들은 ‘타점’이 중요하지 않았고 어떻게든 ‘득점’만 하면 됐다. 

부담감이 줄었고 타석에서 그만큼 여유가 생겼다. 기다릴 줄 아는 타자만큼 단기전에서 무서운 타자들은 없다. 

오승환의 존재는 단순히 마지막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는데 그치지 않는다. 팀 전체가 오승환을 중심으로 플랜을 짜고 전략을 세운다. 삼성 타선이, 상대 투수가 지긋지긋해 할 정도로 기다릴 수 있는 것은 오승환을 철썩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강봉규는 다른 삼성 타자들과 달리 빠른 카운트에서 적극적으로 방망이를 낸 타자였다. 류중일 감독은 "그만큼 감이 좋다는 뜻"이라고 말했고, 강봉규는 이를 5차전에서 증명했다. 잠실/이석우기자

한국시리즈 5차전은 오승환을 위해 준비된 경기였다. 삼성 선발 차우찬은 2회, 4회 위기를 넘기면서 안정감을 찾기 시작했다. 특히 2회초 수비 때 1사 만루 위기를 맞으면서 흔들렸지만 정상호와 박진만을 모두 삼진으로 잡아냈다. 풀카운트 승부 끝에 결정구를 몸쪽 직구로 가져갔고 정상호는 헛스윙, 박진만은 루킹 삼진으로 물러났다.
 


가뜩이나 9회말 수비를 해야 하는 SK로서 경기 초반 득점 기회 무산은 경기 흐름을 좋지 않게 만들었다. 2회가 끝났을 때 흐름은 삼성쪽으로 어느 정도 넘어가 있었다. 4회초에도 2사 1·2루 기회가 박진만 타석에 찾아왔다. 볼카운트 0-2에서 3구째 몸쪽 직구가 스크라이크 존을 약간(중계화면으로는 많이) 벗어났지만 문승훈 주심이 스트라이크를 선언했다. 

박진만은 표정을 찡그리며 항의했으나 스크라이크 콜이 번복될리 없었다. 볼카운트 0-3와 1-2의 차이는 호텔 뷔페와 군대 짬밥 사이의 거리를 넘어설지도 모른다. 박진만이 살아나간다면 2사 만루지만 다음 타자가 발 빠른 정근우다. 볼배합도, 내야수들의 수비 위치도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그 공 하나는 경기 흐름을 삼성 쪽으로 한 걸음 더 가져왔다. 박진만은 결국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위기 뒤에는 기회가 온다. 흐름싸움이 심한 경기일수록 이 말은 진리에 가까워진다. 4회말 1사 뒤 강봉규는 2구째 고든의 높은 직구를 ‘감아 쳐’ 올렸다. 144㎞는 이날 고든의 가장 빠른 공 중 하나였다. 좌익수 박재상이 잡을 듯 따라갔지만 타구에는 힘이 남았다. 잠실구장 왼쪽 담장을 넘어갔다. 결정적 한 방. 

시리즈 내내, 다른 삼성 타자와 달리 빠른 카운트에서 적극적인 공격을 했던 강봉규가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홈런을 때렸다. 강봉규는 두 손을 번쩍 들며 1루를 돌았다.

그리고 삼성이 우승을 확정짓는 데 필요한 점수는 그 1점이면 충분했다. 차우찬은 더욱 힘을 냈고 5회부터 3이닝을 9명의 타자로 끝냈다. 

8회부터 삼성의 불펜이 가동됐다. 7회 안지만이 몸을 풀기 시작하자 경향신문에 시리즈 내내 관전평을 쓴 김용달 IPSN 해설위원이 “이닝 시작 때 안지만을 내는 것은 좋지 않다. 첫 타자 상대가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흐름 싸움이 중요한 큰 경기, 이닝의 첫 타자를 맞는 셋업맨의 부담감은 예상보다 크다. “혹시 경기가 뒤집힐 수 있을까요”라는 어리석은 질문에 김 위원은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저 첫 타자가 쉽지 않을 뿐”이라고 했다. 김 위원은 “뒤에 오승환이 있다. 오늘은 1점으로 끝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위원의 예상대로 안지만은 첫 타자 정근우에게 내야 안타를 허용했다. 2번 박재상이 보내기 번트를 시도했다. 그러자 김 위원은 “오늘 경기가 이걸로 끝났다”고 했다. 

삼성이 5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오승환으로서는 3번째 우승. 앞으로 오승환은 저 장면을 몇 번이나 더 만들어낼 수 있을까. 잠실/이석우기자

김 위원은 “만약 SK가 말 공격을 하는 홈팀이었다면 동점을 노리는 승부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말 수비를 해야 하는 팀이다. 삼성 불펜을 상대로 8회 1점, 9회 혹은 연장가서 1점을 더 내겠다고 생각하고 운영을 한다면 이는 기 싸움에서 지고 들어가는 플레이다. 과감하게 큰 승부를 했어야 한다. 지금 지친 SK 타선에서 칠 수 있는 타자가 별로 없다. 그나마 칠 수 있는 타자들이 있을 때 큰 승부를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정은 삼진을 당했다. 그리고 왼손 박정권이 들어서자 삼성 벤치는 주저없이 박정권을 걸렀다. 그 순간 번트는 실패한 작전으로 바뀌었다. 안지만이 고의4구를 내 준 뒤 잠실구장 전광판에 ‘끝판대장 오승환’이라는 자막이 떴다. 삼성 마무리의 등장을 알리는 음악, ‘SAVE US’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오승환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마운드에 올랐고, 안치용을 초구에 유격수 뜬 공으로 잡아냈다.

9회초 SK의 2011 프로야구 시즌을 마감하는 마지막 공격. 오히려 긴장감은 떨어졌다. 3루쪽 삼성 응원석을 채운 팬들은 기대감으로 가슴을 가득 채웠다. 오승환은 그 어느 때 보다 신중한 투구로 타자를 차례로 아웃시켰다. 우익수 뜬 공, 좌익수 뜬 공, 그리고 3루 땅볼. 오승환이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뭔가 세리머니를 하려는 찰나, 포수 진갑용이 무서운 속도로 마운드로 뛰어 올랐다. 지난해 같은 상황에서 SK 김광현은 허리를 깊게 숙여 포수 박경완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지금 오승환은 뛰어 올라 진갑용에게 안겼다. 

경기가, 한국시리즈가, 그 어느해 보다 뜨거웠던 2011 한국 프로야구가 끝이 났다. 삼성 1-0 승리. 시리즈 전적 4승1패. 5차전 MVP 강봉규. 기자는 한국시리즈 MVP 투표용지에 오승환의 이름을 적어넣었다. 다른 기자들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PS.

SK 선수단은 조용히 더그아웃에 모였다. 이만수 감독대행은 선수들을 모아놓고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했다. 고맙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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