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1일. 일본프로야구 오릭스의 홈구장에서 기요하라 가즈히로의 은퇴 경기가 열렸다. 상대팀 소프트뱅크의 오 사다하루 감독은 23년 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감독이었다. 그때 오 사다하루 감독은 신인지명에서 기요하라 대신 구와타를 선택했다. 기요하라는 ‘저를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썼던 편지를 찢어 버렸다. 인연은 돌고 돈다. 오 사다하루는 기요하라의 은퇴 경기에 앞서 꽃다발을 전했다. “다시 태어난다면, 꼭 같은 팀에서 하자”. 기요하라는 눈물을 흘렸다.
마지막 경기였다. 8회말 마지막 타석에서 기요하라는 혼신의 풀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기요하라를 상대한 소프트뱅크 선발 스기우치는 모든 공을 직구로 던졌다. 기요하라는 “전구 직구 승부에 진심으로 감사한다”라고 말했다. 그날의 경기는, 한 남자의 인생이 담긴 드라마였다.
메이저리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바비 콕스 감독은 30년 동안 무려 2504승을 쌓았다. 2010시즌은 그의 감독 마지막 시즌이었다. ‘노장(老將)’의 마지막 시즌을 기리는 행사가 시즌 내내 이어졌다. 시카고 컵스 마지막 원정에서 컵스 구단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오래된 구장인 리글리 필드의 의자 1개를 선물했다. 세인트루이스는 전설적 선수 스탠 뮤지얼의 사인이 담긴 사진을 선물했다.
올시즌 뒤 은퇴를 선언한 애틀랜타의 강타자 치퍼 존스도 바비 콕스 감독과 마찬가지로 ‘원정 예우’를 받으며 시즌을 치르고 있다. 애리조나 원정경기 때 전광판에는 존스의 활약상이 담긴 영상이 흘렀다. 시카고 컵스는 기념 깃발을 선물했다. 세인트루이스 팬들은 치퍼 존스의 첫 타석 때 기립 박수로 그를 맞았다.
이종범이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는 갑작스러웠다. 팬들은 이종범을 떠나 보낼 준비를 할 시간도 갖지 못했다. 은퇴 경기는 고사했다. 2010년 양준혁은, 늘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마지막 타석에서 땅볼을 때린 뒤 1루까지 전력 질주를 했다. 이종범의 마지막 타석은 이미 지난해 끝났다. 이종범은 승부가 이미 기운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당한 무의미한 삼진을 자신의 마지막 타석으로 삼게 됐다.
지난 4월24일 메이저리그 명 포수 이반 로드리게스가 은퇴식을 치렀다. 자신의 은퇴식에서 로드리게스는 시구를 했다. 마운드가 아니라 자기가 줄곧 앉아 있었던 홈플레이트 뒤에서였다. 로드리게스는 포수 처럼 앉은 뒤 2루까지 빨랫줄 같은 ‘도루 저지 시구’를 했다. 명 포수 은퇴식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구였다.
그래서 보고 싶다. 이종범의 은퇴식, 그날의 시구는 유격수 자리에서 였으면. 보고 싶다. 마지막 오해를 푸는, 선동열 감독이 던지고, 이순철 코치가 때려서 굴러간 유격수 땅볼을, 등에 7번을 단 이종범이 잡아 1루수 최희섭에게 던지는 ‘바람’의 마지막 송구 시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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