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SK 조조 레이예스는 시즌 초반 ‘외국 괴물’로 불렸다. 150㎞를 넘는 직구가 오른손 타자의 몸쪽에 깊숙이 꽂혔다. 슬라이더와 컷패스트볼이 예리했다. 무엇보다 힘이 넘쳤다. 레이예스는 우타자 몸쪽 공으로 잡는 삼진이 늘어나자 “한국 프로야구리그는 스트라이크존이 넓어서 좋다”고까지 했다.
만나는 팀마다 승을 챙기며 승승장구가 이어졌다. 팀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불펜 등판도 자처했다. 4월28일 한화전에 구원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당초 30개 정도가 목표였으나 팽팽한 승부 때문에 투구수가 늘었다. 3이닝 동안 53개를 던지며 1실점했다. 그때부터 뭔가가 꼬였다.
이후 4경기에서 1승도 따내지 못했다. 지난 9일 두산전에서는 4이닝 동안 무려 9실점이나 했다. 4경기에서 방어율이 6.43이나 됐다. 공 자체가 갑자기 위력이 줄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급격하게 볼넷이 늘었다. 첫 5경기에서 9이닝당 2.82개였던 볼넷이 불펜 등판 이후 4경기에서 9.43개로 늘었다.
그랬던 레이예스가 25일 잠실 LG전에서 시즌 초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8이닝 1실점으로 오랜만에 승리했다. 볼넷은 단 1개도 내주지 않았다. 변신의 계기를 만든 것은 ‘에어컨’이었다. 레이예스는 선발 등판을 앞두고 잠실구장 원정 라커룸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그게 하필 에어컨 바로 밑이었다.
25일 서울 날씨는 섭씨 30도를 넘겼다. 올 들어 가장 더운 날이었다. 에어컨 밑에서 잔 30분 동안의 낮잠은 오히려 레이예스를 감기 직전의 상태로 몰고 갔다. 경기 전부터 레이예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마운드에 올랐다.
그런데, 그게 통했다. 레이예스는 80%의 힘으로 공을 던졌고, 되레 변화구의 각이 예리해졌다. 제구가 잘됐고, 볼넷 없이 삼진 5개를 잡았다. 앞선 등판에서는 지나치게 힘을 많이 쏟았다. 레이예스의 변신을 만든 게 바로 ‘최선의 80%’ 또는 ‘80%의 최선’이 가진 힘이다. 진짜로 강한 힘은 20%를 남겨뒀을 때 생긴다.
SK의 팀 닥터인 정진상 성균관대 뇌신경과 교수(삼성서울병원 뇌신경센터장)는 “사람의 몸도 80%의 법칙으로 이뤄져 있다”고 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사람의 핏속에 들어 있는 헤모글로빈은 80% 정도만 활용된다. 나머지 20%는 위급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리저브’다. 근육도 신경도 마찬가지다. 정 교수는 “100%를 다 써버리면 정말 위급한 상황에 더 큰 문제가 벌어진다”고 설명한다. 죽을 힘을 다한 100%보다 최선을 다한 80%가 더 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레이예스는 남은 20%를 효과적으로 쓸 수 있었고, 다시 ‘괴물’로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정 교수는 “최선의 80%는 팀 운영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100%짜리 1군이 아니라 2군 상위 20%의 힘이 시즌 성적을 좌우할 수 있다. 20%의 여유를 남겨둔 승부가 진짜 무서운 승부라는 뜻이다.
두산의 화수분이, 넥센의 휴식이, 삼성의 여유가 갖고 있는 잠재력이다. 수년 전 한 드라마의 명대사, “이게 최선입니까.” 네, 조금 덜 하는 게 진짜 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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