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유격수 오지환(23)의 별명은 ‘오지배’다. 경기를 지배한다는 뜻이다. 경기를 잘해서 지배할 때도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 실책으로 경기를 망치는 일도 많았다. 2010시즌부터 본격적으로 LG 유격수로 경기에 나섰다. 매년 실책 수가 리그 톱이었다. 2011시즌은 손바닥 수술로 경기 출전 수가 많지 않아 빠졌지만 2010년 27개, 2012년 25개로 가장 많은 실책을 기록한 선수였다.
야구 밖에서 야구를 좀 안다는 이들은 LG의 최근 수년간 부진에 대해 “오지환 때문”이라고 쉽게 말했다. “오지환을 유격수로 쓰니까 안되는 것”이다. 포기하거나 다른 포지션으로 옮겨야 한다고 짐짓 점잖은 훈수를 뒀다. 하지만 그때마다 박종훈 전 LG 감독(NC 육성이사)도, 김기태 현 LG 감독도 “오지환은 머지않아 리그를 대표하는 유격수가 될 것”이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어쩌면 ‘지구에서 가장 슬픈 유격수’였다. 가까운 이들의 기대와 먼 이들의 비난을 혼자서 감수해야 했다. 누구보다 많은 훈련을 했다. 아프고 깨져도 내색할 수 없었다. 2011년 9월1일 SK전, 경기 후반 교체돼 들어간 오지환은 6-6으로 맞선 연장 11회말 1사 1·2루에서 박재상의 타구를 한 번에 잡지 못하면서 실책을 저질렀다.
병살 플레이로 끝날 수 있는 이닝이 1사 만루로 이어졌다. 손톱이 깨져 피가 흘렀지만 오지환은 계속해서 괜찮다고, 괜찮다고만 했다. 그날 LG는 결국 박진만에게 끝내기를 맞고 졌다. 4위 SK에 연패하며 승차가 4.5경기로 벌어졌다. 그해 8팀 중 가장 먼저 30승을 따냈던 LG에게서 또 한 번 가을야구가 멀어지는 순간이었다.
오지환은 올시즌에도 LG 유격수다. 실책 숫자는 9개로 여전히 리그 1위다. 그나마 2위 SK 최정(8개)보다 1개 많으니 차이는 많이 줄었다. 그런데, 꼼꼼히 따지면 오지환은 확실히 달라졌다. 시즌 첫 19경기에서 실책 7개를 저질렀지만 이후 32경기에서 오지환의 실책은 겨우 2개뿐이다. ‘결정적 실책’은 사라졌다.
최근 LG가 보여준 ‘반등’은 수비의 힘이다. 인플레이된 타구의 처리 비율을 뜻하는 수비 효율성 지수(DER)에서 LG는 69.5%로 리그 1위다. 그리고 그 속에는 오지환의 성장이 포함됐다.
LG 유지현 수비 코치는 “습관의 힘, 습관의 무서움”이라고 했다. 유 코치는 오지환에게 포구 때 아주 작은, 안 좋은 버릇이 있었다고 했다. 타구를 처리하는 순간 무릎의 움직임이 좋지 않았다. 오지환은 공을 받는 순간 무릎이 너무 일찍 펴졌다. 그렇게 되면 상체가 들리고 글러브 끝이 마지막 순간 땅을 향한다. 포구 각이 좋지 않고 타구가 약간 글러브 위로 떠오르는 상황이 된다.
오지환의 손가락이, 손톱이 자꾸 깨지는 건, 작은 무릎 움직임의 습관 때문에 떠 있는 공을 손으로 잡기 때문이다. 나쁜 습관이 손톱을 다치게 해서 훈련량을 늘릴 수도 없었다. 유 코치는 “조금만 훈련하면 손가락이 퉁퉁 부었다. 그런데도 그 상태로 계속 훈련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고 했다.
오지환, 수비하며 화려한 비상 (경향DB)
습관이라는 건 무서운 것이어서, 금연·다이어트와 마찬가지로 조금만 방심하면 나쁜 습관이 툭 튀어나온다. 유 코치는 “가을·겨울에 거쳐서 거의 고쳤다 싶었는데, 내가 WBC 한 달 다녀오는 동안 나쁜 습관이 다시 돌아와 있었다”고 했다. 시즌 초반 19경기 실책 7개는 그 나쁜 습관 때문이다.
오지환도 그 버릇을 잘 알고 있다. 습관을 다스리는 건, 금연을 하고, 식사량을 줄이고, 운동을 하는 것은, 습관을 넘어서는 의지가 필요하다. 오지환은 “그래서, 그라운드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에서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한 박자 쉬어가고 있다”고 했다. 외야 중계 플레이 때도 한 박자, 심지어 투수가 삼진을 잡은 뒤 내야에 공을 한 바퀴 돌릴 때에도 한 박자 멈추고 생각한 뒤 움직인다.
습관은 개인을 바꾸고, 개인의 변화가 모여 팀을 바꾼다. 오지환이 바뀌었고, 수비가 안정되자, 마운드가 탄탄해졌다. LG의 야구에서 높고 푸른 가을하늘이 언뜻언뜻 비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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