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한 기업의 마케팅 전문가가 물었다. “왜 야구 팬들은 팀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걸까요.”
다른 종목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이에 대한 대답은 조지 F 윌의 책 <야구의 장인들(Men at work, The Craft of Baseball)>의 한 대목이 적당할 것 같다. 윌은 책의 에필로그에 이렇게 적었다.
“야구는 물론 그저 공놀이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야구가 공놀이라면, 그랜드캐니언도 애리조나주에 있는 커다란 구멍일 뿐이다.”
야구는 공 한 개 한 개가 모여 한 경기를 이루고 그 한 경기가 쌓여서 128경기(메이저리그 162경기)의 시즌을 만든다. 그 공을 던지고 때리는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하나가 모여 팀의 역사, 야구의 역사를 만드는 종목이다. 그랜드캐니언을 만든 것이 수천년 동안 그곳을 흐른 물과 바람이라면, 야구라는 종목과 역사를 만든 것은 플레이 하나하나를 펼친 선수들의 땀이다. 야구는 그래서 역사의 종목이고 추억의 종목이다. “아내와 종교는 바꿀 수 있어도 응원하는 팀은 못 바꾼다”는 과장 섞인 농담 속에 진정성이 비치는 것은 역사와 추억 때문이다.최근 프로야구 구단들이 ‘추억’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롯데는 지난달 26일 사직 NC전에서 ‘응답하라 1999’ 이벤트를 펼쳤다.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에서 이름을 따 온 이벤트였다. 1999년은 롯데가 마지막으로 한국시리즈에 오른 해였다. 당시 맹활약을 펼쳤던 외국인 선수 펠릭스 호세는 모처럼 한국을 방문해 많은 롯데 팬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국내 무대를 떠난 뒤 약물 복용 파문을 일으켰기 때문에 훗날 명예의전당에 오르기는 어렵겠지만 호세가 입국하자마자 먹은 비빔밥 매출이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질 정도로 인기가 여전했다.
롯데는 이날 입장료 가격도 그해를 기념해 1999원으로 낮췄고, 사직구장은 올 시즌 처음으로 매진을 기록했다. 강민호는 결승포를 터뜨리며 팬들의 호응에 응답했다.
롯데의 타자였던 펠릭스 호세가 '롯데 응답하라 1999' 행사에서 시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LG도 추억을 꺼내들었다. ‘응답하라 1994’. 1994년은 LG가 마지막으로 우승을 했던 때다. 그때를 추억하기 위해 당시 입었던 유니폼을 제작해 출시했다. 어깨에 챔피언을 상징하는 패치를 달았다. 등에 이름을 새기는 값을 포함해 7만1000~7만7000원의 만만치 않은 가격이지만 구단에 따르면 신청 마감일인 지난달 30일까지 2000벌이 넘게 팔려나갔다.
프로야구가 할 일은 추억을 끄집어내는 것만이 아니다. 추억을 만드는 역할도 함께해야 한다. 광주 무등야구장은 올해를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 구장에서 해태의 9번 우승과 KIA의 10번째 우승이 이뤄졌다. 선동열이 던졌고, 이종범이 때렸던, 팬들이 그물에 매달렸고, 이겼을 때 ‘목포의 눈물’을 목놓아 불렀던, 그 광주구장의 마지막 시즌이 지금 펼쳐지고 있다. 그 마지막 추억을 위한 무언가를 만드는 게 나중에 14년 전, 19년 전 ‘응답’을 요구하는 것보다 시급해 보인다. 산산이 사라진 동대문의 추억을 뒤늦게 후회하는 일이 소용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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