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살 남자아이가 밤새 무언가에 몰두하는 건 때로 단순한 데서 시작된다. 어쩌면, 평소 마음에 두고 있던 여자아이의 한마디 때문일 수 있다. 스물다섯 청춘이 밤을 불태우는 것도 비슷하다. “오빠는 ○○할 때 멋있더라”는 말은 그 어떤 에너지 음료보다 큰 힘이 된다. 실제로 누군가는 여자친구의 “오빠는 도루할 때 멋있더라”는 말에 시즌 도루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 고래를 춤추게 만드는 것이 칭찬이듯, 야구 선수의 플레이에서 재능이나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노력을 끌어내는 ‘동기 부여’다. 나는 왜 야구를 하고 있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LA 다저스 유격수 핸리 라미레스는 1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한 ‘천재’였다. 2006년 플로리다 말린스에서 데뷔한 라미레스는 내셔널리그 최초로 50도루, 110득점을 기록한 선수가 됐다. 신인왕은 라미레스의 차지였다. 2년차 징크스도 없었다. 2007년에는 타율이 3할3푼2리로 치솟았다. 홈런을 1개만 더 쳤더라면 역대 3번째로 한 시즌 30홈런-50도루를 달성한 선수가 될 뻔했다. 김형준 MBC 스포츠 플러스 메이저리그 해설위원에 따르면 라미레스는 ‘금지약물 의혹이 없었던 알렉스 로드리게스’ 이후 최고의 유격수를 기대하게 했다. 2009년에는 타격왕과 함께 100타점을 넘겼다. MVP 투표에서 2위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천재의 추락은 항상 우연과 징조 사이에서 온다. 라미레스는 2009년 3번타자를 맡으면서 비거리를 늘리기 위해 몸무게를 늘렸다. 타격 실력은 그대로였지만 수비 실력이 떨어졌다. 많은 선수들이 그렇듯 잘나갈 때는 어깨부터 힘이 들어간다. 그해 5월 자신이 흘린 타구를 잡으러 설렁설렁 걸어가자, 프레디 곤살레스 감독은 라미레스를 교체한 뒤 공개적으로 게으른 플레이를 지적했다. 갈등이 커졌고, 구단은 슈퍼스타가 된 라미레스의 편을 들었다. 곤살레스 감독은 시즌 막판 해임됐다.
수비력이 떨어지자 구단은 유격수 호세 레예스를 영입했다. 라미레스는 3루수로 이동했다. 팀에는 자신의 화려했던 몇 시즌을 떠올리게 하는 젊은 선수들이 파닥거렸다. 주인공에서 멀어지자 성적은 추락했다. 라미레스의 타율은 2011년 2할4푼3리로 곤두박질쳤다. 지난해에도 겨우 2할5푼7리에 그쳤다. 야구가 재미없어졌다. 라미레스는 지난 시즌 중반 다저스로 트레이드됐다.그리고, 천재가 부활했다. 라미레스는 시즌 초반 부상 때문에 결장이 길었지만 6월 이후 다저스 타선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쿠바 출신 ‘괴물’ 야시엘 푸이그가 주춤할 때 다저스 타선을 이끌었다. 시즌 타율은 무려 3할8푼3리,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한 OPS가 무려 1.129다. 마크 맥과이어 타격코치는 “완벽한 스윙을 갖고 있다”고 했고, 클레이튼 커쇼는 “내가 본 선수 중 가장 재능이 뛰어난 선수”라고 했다. 그러나 모든 성공하는 이들이 그렇듯 재능이 전부는 아니다.
헨리 라미레스 (AP연합뉴스)
‘천재의 각성’은 지난 3월 이뤄졌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도미니카공화국 대표로 참가했고 마지막 순간 부상을 당했지만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플로리다(현 마이애미)에서 뛰던 6시즌, 줄곧 꼴찌만 하느라 한 번도 맛보지 못한 감동이었다. 라미레스는 “한 번 트로피를 들게 되면, 더 갖고 싶어질 수밖에 없다. 정말로 대단한 감격”이라고 말했다.
우승의 감격이 천재의 야구 열망을 깨웠다. 우승은 혼자서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도 새삼 다가왔다. 라미레스는 “다저스로 트레이드됐을 때 내 삶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며 “이제 나를 도와주는 동료들이 여기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다저스가 9.5경기 차이를 뒤집고 대역전을 일구는 데는 천재 라미레스의 각성이 있었다. ‘짜릿한 우승의 기억’은 고래를 춤추게 하는 칭찬보다 더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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