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4일, 잠실구장에는 뙤약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KIA 타자들이 배팅 케이지에서 연신 방망이를 돌렸다. 몇몇의 방망이가 유난히 무거워 보였다.
한 걸음 떨어져서 지켜보던 김용달 타격 코치의 얼굴에도 수심이 가득했다. 김 코치는 “날씨 때문에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모처럼 화창한, 유리처럼 부서질 것 같은 뜨거운 하늘을 흘낏 쳐다봤다. “진작 날씨가 이랬더라면….”
그날 KIA는 선발 김진우의 호투와 간만에 터진 타선에 힘입어 LG에 7-4로 이겼다. KIA 타선은 16안타를 때렸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김 코치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KIA는 이후 21경기에서 이날보다 더 많은 안타를 때린 경기가 한 번도 없었다.
2013시즌 초반 KIA의 방망이는 무시무시했다. 개막 후 4월 한 달 동안 KIA의 팀 장타율은 무려 0.413이나 됐다. 팀 OPS(출루율+장타율) 0.799는 다른 팀과 격차를 크게 벌려놓은 1위였다. 경기당 6.33점을 따냈다. 6월 한 달 흔들렸지만 7월3일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KIA는 7월3일 당시 팀 타율 0.274로 공동 3위였고, 팀 장타율(0.397·3위)과 출루율 (0.364·2위)도 나쁘지 않았다. 팀 OPS는 0.761로 두산(0.780)에 이어 2위였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문제가 벌어졌다. KIA는 7월3일 SK에 3-4로 패한 뒤 4일 SK전, 5일 롯데전 모두 비 때문에 치르지 못했다. 6일 롯데전을 8-6으로 이겼지만 다음날 또 우천 취소. 곧바로 일정에 따른 4일 휴식이 이어졌고 또다시 우천 취소가 겹쳤다. 7월4일부터 15일까지 12일 동안 겨우 2경기만 치렀다. 타격감이 완전히 무너졌다.
4일 휴식을 치르는 동안 또 이틀이나 비가 내렸다. 한국시리즈 10번 우승의 영광을 갖고 있는 광주구장은 실내 연습장조차 갖추지 못했다. 그렇다고 멀리 떨어진 함평 2군 구장에 갈 수도 없다. 근처 고등학교 실내 훈련장을 쓰기도 쉽지 않다. 야구는 일상성·항상성의 종목인데, 타자들이 방망이를 제대로 들지도 못했다. 7월24일, 김 코치의 얼굴에 그득한 수심은 이 때문이었다. 16·17일 한화전 2경기를 치른 직후에는 올스타 브레이크가 이어졌다. 7월1일부터 22일까지 23일 동안 KIA는 고작 6경기를 치렀다.
KIA의 타격 성적은 거짓말같이 곤두박질쳤다. 리듬이 뚝 끊긴 채 맞은 후반기, 8월19일까지 KIA의 팀 타율(0.254)과 출루율(0.331)은 8위, 장타율 0.350은 리그 꼴찌로 떨어졌다. OPS 0.681은 같은 기간 1위 두산(0.845)과 비교해 심각한 수준의 꼴찌다.
KIA (경향DB)
KIA의 타격 추락은 ‘근성’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타이거즈 정신’의 부족 혹은 실종 때문이 아니라, 일정·날씨 불운과 실내연습장 하나 없는 열악한 광주구장 탓일 가능성이 높다. “옛날에는 그런 것 없이도 V10 했다”는 ‘정신 강조’ ‘과거 매몰’식 주장은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한다. 문제는 마르크스가 말했듯 ‘정신력’ 같은 상부구조가 아니라 ‘실내연습장’이라는 물적 토대, 하부구조다. 그나마 내년에는 실내연습장이 있는 새 구장에서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이제야 최소한의 조건을 갖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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