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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박 대전, 이것이 야구다

베이스볼라운지

by 야구멘터리 2013. 9. 25.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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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구장에는 외야 관중석이 없다. 투수의 등 뒤에서 쏟아지는 함성이 없다. 목동의 마운드는 더욱 고독한 자리다.


지난 21일 목동구장 9회말. 그라운드에는 환호와 탄식, 긴장과 기대가 묘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1위 삼성과 3위 넥센의 대결. 8-6으로 앞선 삼성의 마지막 수비. 마운드에는 8회 1사부터 올라온 마무리 오승환이 서 있었다. 삼성 류중일 감독도 이날만큼은 어지간히 급했다. 안지만을 6회, 오승환을 8회에 올렸다. 1사 뒤 타석에 리그 최고의 타자, ‘4번’ 박병호가 들어섰다.



초구는 150㎞ 직구였다. 몸쪽 깊숙한 곳을 찔렀다. 볼카운트 1-0.오승환은 올 시즌에 홈런 3개를 맞았다. 그중 하나인 7월27일 홈런을 박병호에게 내줬다. 그때 상황도 거의 비슷했다. 오승환은 3-3으로 맞선 10회초 첫 타자 이택근을 잡아낸 뒤 박병호를 맞이했다. 스트라이크존을 향했던 초구 직구가 그대로 홈런이 돼 버렸다. 이날의 초구가 바깥쪽 낮은 곳을 향한 것은 그때의 기억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2구는 149㎞ 직구였다. 바깥쪽 낮은 쪽으로 빠졌다. 볼카운트 2-0.


오승환은 데뷔 이후 한 번도 한 해에 같은 타자에게 홈런 2개를 허용한 적이 없다. 오승환으로부터 홈런을 가장 많이 뽑아낸 타자는 이대호인데 그는 2005년, 2007년, 2010년에 각 1개씩 때렸다.


3구는 147㎞ 직구였다. 박병호의 스윙이 날카롭게 돌았지만 허공을 갈랐다. 볼카운트 2-1.


박병호는 리그 최고의 타자로 거듭났다. 넥센 염경엽 감독은 “완벽한 4번타자다.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했다. 박병호는 헛스윙 뒤 방망이 끝을 노려보고 있었다. 2점차였지만 분위기를 바꾸는 한 방이면 오승환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7월27일에도 오승환은 박병호에게 홈런을 허용한 뒤 연속 안타로 1점을 더 줬다. 오승환은 이날 15개째의 공을 던졌다.


4구는 149㎞, 역시 직구였다. 또다시 헛스윙. 볼카운트 2-2.


목동구장이 조용해졌다. 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와 리그 최고의 4번 타자가 숨막히는 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진짜 승부가 가려질 때가 점점 다가왔다. 5구는 149㎞ 직구, 박병호의 스윙이 공을 걷어냈다. 파울.


오승환의 슬라이더는 해가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제 누가 봐도 변화구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6구 또한 직구였다. 148㎞. 또다시 파울.


7구째, 오승환이 기어를 더욱 높였다. 152㎞ 직구. 또 파울. 8구째 이날 가장 빠른 공이 들어왔다. 153㎞. 또 직구. 박병호의 스윙도 밀리지 않았다. 파울. 박병호는 다시 숨을 고르며 방망이를 노려본 뒤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 9구. 오승환은 자신의 자존심을 던졌다. 152㎞ 직구가 바깥쪽 코스를 향했다. 박병호의 방망이가 따라갔지만 타구는 투수 오승환 앞에 원바운드로 힘없이 굴렀다.


역투하는 오승환 (출처 :경향DB)


한가위 연휴의 끝자락, 둥근달이 떠 있는 그라운드에서 오승환과 박병호가 벌인 9구 승부. 전구 직구. ‘오-박 대전’. 이게 야구의 맛이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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