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으로 앞선 9회초. 뉴욕 양키스 ‘수호신’ 마리아노 리베라가 마운드에 올랐다. 4점차로 벌어져 세이브 상황이 아니었지만 이날은 특별했다. 리베라는 여전히 모든 공을 커터로 던졌다. 선두타자 제이 페이튼은 땅볼을 쳤다. 유격수 데릭 지터가 잡아 1루에 송구했다. 원아웃. 대타 루크 스콧의 타구는 2루수 로빈슨 카노 앞으로 굴렀다. 투아웃. 마지막 타자는 브라이언 로버츠였다. 역시 땅볼이 됐고 1루수 코디 랜섬이 잡아 직접 베이스를 밟았다.
아주 특별한 아웃카운트였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MLB.com)는 그 아웃카운트를 두고 “양키스타디움의 마지막 생명”이라고 표현했다. 리베라뿐만 아니라 모든 양키스 팬들에게 특별했던 이 경기는 지난 9월27일 벌어진 리베라의 은퇴 경기가 아니었다. 이 경기는 5년 전 9월22일 열린 볼티모어와의 경기, 리베라의 은퇴가 아닌 양키스타디움의 은퇴 경기였다.
뉴욕 양키스는 보스턴으로부터 베이브 루스를 트레이드해 온 지 3년 만인 1923년 새 야구장을 지었다. 양키스타디움 개장 경기의 첫 홈런 주인공도 루스였다. 사람들은 양키스타디움을 아예 ‘루스의 집’이라고 불렀다. 루스는 1927년 시즌 최다 기록인 60호 홈런을 양키스타디움에서 때렸고 34년 뒤 로저 매리스는 그 기록을 뛰어넘는 61호째 홈런을 또 여기서 때렸다. 양키스는 양키스타디움에서 9번이나 월드시리즈 우승을 확정했다. 1956년 월드시리즈 5차전에서는 돈 라슨이 바로 그곳에서 퍼펙트게임을 달성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루스가 마지막 순간 팬들에게 남긴 유언은 다음과 같았다. “양키스타디움 첫 홈런을 쳤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마지막 홈런이 누가 될지는 신만이 아시겠죠.” 그 마지막 홈런의 주인공은 양키스 포수 호세 몰리나였다. 몰리나는 3-3 동점이던 4회말 결승 2점홈런을 때렸다.양키스타디움의 마지막 생명, 아웃카운트를 잡은 1루수 랜섬은 그 공을 리베라에게 건넸다. 리베라는 “잊지 못할 순간”이라며 “이 공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에게 주겠다”고 말했다.
한 시대의 야구장이 사라졌다. 2009년 양키스는 길 건너 ‘새 양키스타디움’에서 새 시대를 열었다. 주장 데릭 지터는 경기가 끝난 뒤 동료들과 마운드에 서서 마이크를 들고 팬들에게 말했다.
“이곳에서는 그동안 수많은 전통과, 아주 깊은 역사와, 아주 많은 추억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 위대한 추억과 기억들은 여러분이 다음 세대로 전달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내년 시즌부터는 길 건너 새 야구장에서 양키스의 새 역사가 시작됩니다. 많은 것들이 바뀌겠지만, 절대 바뀌지 않을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양키스라는 자부심, 양키스라는 전통,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팬들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10월4일, 양키스처럼 한국 프로야구 최다 우승팀 타이거즈의 홈구장 마지막 경기가 열린다. 마지막 시즌의 성적부진이 그 추억까지 모두 망치지 않기를 바란다. 마지막 안타, 마지막 홈런, 그리고 마지막 아웃카운트까지. 모두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 전해줄 역사다.
PS. 뉴욕 양키스는 새 구장 첫 시즌이었던 2009년, 9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되찾아왔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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