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2년 전 로빈 벤추라를 새 감독으로 영입했다. 스타 출신인 벤추라는 선수 은퇴 후 유소년 야구를 지도하며 보냈다. 프로 코치 경력은 없었다.
당시 화이트삭스 단장 켄 윌리엄스는 “아주 유명한 리더십 전문가를 만났는데 벤추라가 기업 CEO가 됐다면 포천지 선정 세계 100대 기업의 수장이 됐을 것이고, 군인을 택했다면 3성장군 이상의 인물이 됐을 것이라고 하더라”라며 “벤추라가 우리 팀의 적임자”라고 말했다. 야구 실력보다는 리더십이 주요 고려 대상이었다. 벤추라는 감독 첫해인 2012시즌에 85승77패를 기록하며 팀을 지구 2위로 끌어올렸다.
시카고 컵스는 최근 샌디에이고의 벤치코치였던 릭 렌테리아를 새 감독으로 결정했다. 컵스는 새 감독 선임 배경에 대해 “강력한 소통 능력을 가진 지도자”라고 했다. 렌테리아 역시 메이저리그 감독은 이번이 처음이다.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의 톰 버두치는 최근 칼럼에서 “메이저리그 감독의 역할이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고 밝혔다. 디트로이트의 새 감독 브래드 어스머스 또한 ‘초짜 감독’이다. 더스티 베이커 감독의 뒤를 이은 신시내티의 새 감독 브라이언 프라이스도 마찬가지다. 최근 수년간 감독이 된 월트 와이스(콜로라도), 마이크 매시니(세인트루이스), 돈 매팅리(LA 다저스), 커크 깁슨(애리조나) 등도 모두 신인 감독이다. 구단들은 감독의 경기 운영 능력, 선수 지도 능력이 아니라 카리스마와 소통 능력, 리더십을 중시한다. 버두치는 “야구 발전에 따라 수많은 데이터와 노하우가 쌓였다. 감독의 경기 운영 방식이 어느 정도 정형화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이를테면, 구단마다 ‘감독 매뉴얼’이 생겼다. 타자의 타격 성향에 따라 맞는 스타일의 투수가 투입되고, 수비 시프트가 정해진 대로 움직인다. 실제로 메이저리그에서 보내기번트의 숫자는 최근 20년 사이에 30%가 줄어들었고, 고의4구 지시는 36%나 줄어들었다. 마무리 투수의 투입시기도 정해져 있다. 2이닝 이상 세이브의 숫자는 1990시즌 320개에서 2012시즌 19개로 급격하게 떨어졌다. 이제 ‘매니저’(manager)로 일컬어지는 메이저리그 감독의 역할은 정말 관리자, 회사 과장(manager)의 역할로 바뀌는 듯하다.
일러스트 : 김상민
한국 야구의 흐름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3시즌 4강에 오른 감독들은 모두 감독 경력 3년차 이내 감독들이었다. 4명의 감독 모두 경기 운영 능력보다는 소통 능력과 리더십 면에서 더 큰 점수를 받았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요구되는 감독의 역할이 바뀌어가는 모양새다.
하지만 야구는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전자오락이 아니다. 버두치 또한 “야구는 버튼만 누르면 되는 경기가 아니다”라고 지적하며 빅 데이터와 머니 게임 속에 ‘색깔 있는 야구’가 사라지고 있다고 걱정한다. 7회 이후 박빙 상황에서 우타자를 상대로 좌투수를 내는 ‘모험’을 하지 않는 야구가 반복되고 있다.
매뉴얼에 안주하면 발전이 더뎌진다. 삼성을 벼랑 끝에서 탈출시켜 우승으로 이끈 것은 류중일 감독의 ‘형님 리더십’이 아니라 벼랑 끝에서 던진 ‘사즉생의 카드’ 덕분이었다. 게다가 한국의 야구 구단은 메이저리그 구단만큼 야구에 정통하지도 못하다.
돌연변이는 진화에 대한 자극이고, 다양성은 생태계 안정과 발전의 필수요소다. 그래서 이제 ‘형님 야구’는 그만. ‘김성근 야구’ ‘로이스터 야구’가 사라진 2013시즌. 이제 베테랑 감독들이 야구판 전체를 긴장시킬 색깔 짙은 야구를 보여줄 차례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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