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말 철도노조 파업이 한창일 때 ‘원칙’과 ‘타협’을 내세웠다. 거칠게 요약하면 ‘원칙 없이 타협하면 미래 없다’는 표어 형태로 정리된다. 풀어보면, 원칙을 세우고 밀어붙이면 미래가 밝아진다는 뜻일 게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야구가 딱 그랬다. 원칙을 세웠고, 밀어붙였고, 미래를 기대했다. 1년 뒤인 2011년 ‘예언가 이대호 선생’은 지금의 미래를 정확히 맞혔다.
일러스트: 김상민
프로야구 연봉 얘기다. 지난 10일 기준으로 프로야구 연봉계약이 ‘공식 완료’된 구단은 NC와 넥센, 두산 등 3곳뿐이다. 대부분의 구단은 몇 명의 미계약자만 남겨둔 상태다. 그런데 삼성과 한화는 아예 단 한 명의 연봉 계약 결과도 발표하지 않았다. 1위 삼성 주변에서는 아시아시리즈가 끝난 직후부터 연봉을 둘러싼 잡음이 흘러나왔다. 몇몇은 공개적으로 구단을 성토하기도 했다. 연봉협상을 두고 “이번에야말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며 ‘전의’를 불태웠다.
자유계약선수(FA)들에게 거액을 안긴 한화도 올해 연봉 협상은 특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전체적으로 훈훈한 분위기였다고는 하나 구단의 씀씀이에 대한 선수들의 기대 또한 작지 않았다.그러나 결국 10일에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매년 1월10일은 프로야구 연봉조정신청 마감일이다. 구단의 배타적인 보유권을 상대로 직업 선택의 자유가 없는 선수들이 유일하게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이다.
이 제도가 유명무실해진 것은 ‘원칙’ 때문이다. 2010년 1월 롯데 이정훈이 연봉조정신청을 냈다. 2002년 이후 8년 만이자 역대 19번째 조정신청이었다. 구단의 제시액은 6200만원, 이정훈의 요구액은 7000만원으로 800만원 차이였다. 연봉조정회의는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겨우 1시간30분 만에 끝났다. 연봉조정회의 관계자는 이때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문제가 되는 ‘원칙’을 세웠다. “가난한 구단과 부자 구단의 연봉을 똑같이 규정할 수 없어 다른 구단과의 비교는 원래 하지 않는다. 롯데 구단 내부의 연봉 총액 인상계획 6%에 맞춰서 이정훈의 연봉 인상폭을 결정했다”는 ‘타 구단 비교 불가 원칙’이다. 타협은 없었다. 미래가 밝아졌을까.
1년 뒤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7억원을 요구한 이대호는 롯데의 6억3000만원에 맞서 연봉조정신청을 했다. 전해 세워진 ‘원칙’에 따라 구단의 손이 들렸다. “고과 평균에 따른 활약도와 구단 내 다른 선수와의 형평성을 고려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역시 이대호가 주장했던 2003년 이승엽 연봉과 물가상승률은 ‘다른 구단 선수’여서 고려되지 않았다. 이대호는 그때 예언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조정위원회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모르겠고, 후배들이 앞으로 연봉 조정신청을 당연히 안 해야겠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라고. 그 예언은 현실이 됐다.
이대호가 야구캠프에서 아이들에게 타격자세를 가르치고 있다.(출처 :경향DB)
2011년 이대호를 마지막으로 연봉조정신청회의는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2012년 1월에도 KBO는 혹시 모를 무더기 신청에 대비했지만 결국 조정회의는 무산됐다. LG 이대형은 연봉조정신청을 냈지만 조정회의 전에 철회했다. 지난해에도, 올해에도 결국 선수들은 연봉조정신청을 포기했다. 한 선수는 “우리는 ‘을’(乙)이다. 신청해봤자 소용없다”고 전했다.
원칙과 전례는 한 번 만들어지면 쉽게 바뀌지 않는 날카로운 칼이다. 섣부른 칼날은 미래를 향한 길을 베어 버린다. 대통령은 신년 국정화두로 ‘비정상의 정상화’를 내세웠다. 비정상과 정상의 기준은 여전히 애매하지만, 적어도 비정상이어서 아무도 쓰지 않는 연봉조정신청제도는 정상화가 절실하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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