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리틀야구 대표팀이 29년 만에 리틀야구 월드시리즈에 참가해 월드 챔피언에 올랐다. 선수들은 신나게 그라운드를 뛰어다녔고, 신나는 야구를 했다. 좋은 플레이가 나올 때마다 한데 엉켜 기쁨을 나눴다. 이제 만으로 13세가 된 선수들, 전원이 중학교 1학년인 선수들이 이룬 뿌듯하고도 즐거운 성과다.
한국 야구에는 굵직한 ‘세대’들이 있었다. 이른바 ‘황금세대’라 불린 ‘92학번 세대’를 우선 꼽을 수 있다.
박찬호를 필두로 임선동·박재홍·조성민·염종석·정민철 등 걸출한 선수들이 쏟아졌다. 92학번을 앞뒤로 세운 90~95학번에서 빼어난 선수들이 나와 한동안 한국 프로야구를 이끌었다. 93학번 이병규(LG·9번), 손민한(NC), 최영필(KIA) 등은 여전히 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94학번 이호준(NC), 조인성(한화) 역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고 95학번 이승엽, 임창용(이상 삼성)은 전성기 못지않은 실력을 보인다.
그런데 이들은 ‘프로야구 키드’들이었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언저리에 야구를 시작했다. 10년이 흘러 1992년에 대학에 들어간 선수들을 중심으로 한다. 그때 불기 시작한 야구 붐을 바탕으로 인재들이 야구로 모여들었다.
그 뒤를 이은 것이 ‘류현진 세대’다. 2005년 인천 아시아선수권대회 대표 선수들이 중심이다. 1987년생들인 김현수·민병헌(이상 두산), 강정호(넥센), 이재원(SK) 등이 현재 한국 프로야구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후 몇 년 동안 또 뛰어난 선수들이 쏟아졌다. 한 살 어린 김광현(SK), 이용찬(두산) 등이 2006년 쿠바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고, 두 살 어린 김상수(삼성), 오지환(LG), 허경민(두산), 안치홍(KIA) 등이 2008년 캐나다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이들은 ‘박찬호 키드’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맹활약을 펼치기 시작한 1997년 언저리에 야구를 시작했다. ‘코리안 특급’의 열풍이 야구 붐을 일으켰고 인재들이 글러브를 끼고 방망이를 휘둘렀다. 9~10년이 흐른 뒤 고교를 졸업하고 프로에 뛰어들면서 뛰어난 선수들이 쏟아졌다. 야구에 대한 관심은 재능을 가진 선수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기고, 그들이 자라서 야구의 수준을 높인다.
자, 그럼 지금 세계를 제패한 13세 소년들은 어떨까. 이들은 ‘베이징올림픽 키드’다. 2000년대 초중반 한국 프로야구의 암흑기를 깨뜨린 것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었다. 올림픽 야구 금메달은 다시 한번 야구 붐을 일으켰다. 이를 지켜보며 꿈을 키운 소년들이다.
앞선 선배들과 달라졌다. 리틀야구 대표 선수 중 한때 유행하던 우투좌타는 1명밖에 없다. 좌투좌타 1명에 나머지는 모조리 우투우타다. 선수들의 경기 장면을 본 두산 김현수는 “아이들이 정말 시원하게 방망이를 돌린다”고 했다.
야구의 새로운 세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들이 더욱 멋졌던 것은 ‘전쟁’을 닮은 ‘오로지 승부’의 벽을 넘었다는 점이다. ‘운명’ 또는 ‘전쟁’이라 여겨지는 일본전에서 신나는 야구를 했다. 경기가 끝난 뒤 서로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결승전 때 일본 소년들은 관중석에서 전날 바꿔입은 태극마크 달린 유니폼을 입고 한국 팀을 응원했다. 이들이 자라 서로 겨루며 보여줄 야구가 잔뜩 기대된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의 슬로건은 ‘야구는 만국 공용어’였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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