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전력’과 ‘최선’의 가치를 결과로 증명하는 종목이다. 데릭 지터가 양키스의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고 뛴 20년 동안 단 한 번의 시즌 MVP, 타격왕, 타점왕, 홈런왕을 하지 못하고도 메이저리그 최고 선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전력과 최선 덕분이었다.
지터는 제아무리 승부가 기운 상황, 형편없는 내야 땅볼이라도 언제나 1루까지 전력질주를 했다. 오클랜드 빌리 빈 단장은 “이게 바로 부와 명예, 실력을 모두 갖춘 선수가 야구에서 플레이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지터는 “전력질주는 딱히 대단한 게 아니다”라며 “그저 열심히 달리는 것뿐이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것, 노력을 하는 데에는 ‘재능’이 따로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재능에 앞선 최선의 노력을 증명함으로써 야구를 빛나게 만들었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야구에서 한국은 금메달을 땄다. 비교적 편했던 앞선 경기들과 달리 대만과의 결승전 승리는 전혀 쉽지 않았다. 시종일관 끌려다니던 경기를 기어이 뒤집을 수 있었던 것은 선수들의 ‘최선’과 ‘전력’ 덕분이었다. 안지만의 최선을 다한 전력투구는 한국을 위기에서 구했다. 민병헌부터 시작된 타순은 상대 마운드를 향해 전력을 다한 집중력으로 경기를 뒤집었다.
예선과 준결승을 치르는 동안에도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태국과의 경기, 1회 대량득점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나성범의 전력질주 덕분이었다. 땅볼에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뛰었고, 실책성 플레이를 만들어냈다. 홍콩과의 경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고, 전력으로 방망이를 휘둘렀다. 태국의 도쿠나카 마사오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우리를 상대할 때 한국이 전력으로 플레이하지 않아도 되는데 최선을 다해줘서 감사하다. 한국 대표팀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야구는 전력과 최선을 넘어서는 가치도 지닌 종목이다. 스타킹에 허리띠를 매는 유일한 종목인 야구는 그 바탕에 ‘존중’과 ‘소중’을 품었다. 메이저리그에서 불문율이 인정받는 것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고대 응징 방식이 여전히 야만적으로 살아남아 있어서가 아니라 야구에 대한 존중이 깨지고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승패를 넘어 상대에 대한, 야구에 대한 존중이 없다면 야구는 곧장 ‘벌’을 내린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명장인 토니 라루사 감독은 자신의 책 <마지막 스트라이크 하나>에서 “야구의 신은 야구 또는 상대 팀을 존중하지 않을 때 언제나 패배라는 벌을 내린다. 나는 그것을 아주 혹독하게 배웠다”고 말했다.
한국이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것은, 그래서 어쩌면 신이 잠시 한눈을 팔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선수들은 분명히 최선과 전력을 다했지만 야구의 소중함을 충분히 보여줬는지, 상대 팀에 대한 존중이 충분했는지는 의문이다. 진정한 존중을 가졌다면 농담으로라도 “초등학교 투수보다 느리더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우승 직후 몇몇이 보인 ‘잿밥 세리머니’ 역시 야구 아닌 다른 가치에 대한 집착이었다. 여전히 몇몇 어른들은 야구 금메달을 향한 시선에 부당하다고 항변한다.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터다. 야구는 결과가 아니라 존중의 종목이라는 것을. 팬들의 비난은 누군가 누구를(감독이 선수를, 프런트가 감독을, 팬이 팬을) 존중하지 않을 때 거세진다는 것을.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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