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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헌 소지 있는 ‘스피드업’ 규정

베이스볼라운지

by 야구멘터리 2015. 3. 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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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은 손주의 배가 아프면 배를 살살 문지르며 노래를 불렀다. ‘할머니 손은 약~손’이라는 가락이 구성졌다. 한참 그렇게 쓰다듬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팠던 배가 싹 나았다. 머리가 아프면 이마에 손을 댔고, 팔다리가 아프면 팔다리를 주물렀다.

KBO가 지난겨울 머리를 맞댔다. 경기 시간이 너무 길어졌다. 2014시즌 평균 경기 시간은 역대 최장인 3시간27분이었다. 스피드업 규정을 강화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타석 이탈 금지’ 조항이었다. 투수와 타자의 대결 때 시간이 너무 걸린다는 ‘연구 결과’ 때문이었다. 실제 지방구단의 한 선수는 공을 던질 때마다 타석을 벗어나 한참 자세를 가다듬은 뒤 돌아왔다. 타석 준비 시간이 오래 걸리기로 유명했던 삼성 박한이는 이제 상당 부분 자신의 루틴을 줄였다. 그 선수는 박한이보다 훨씬 길었다.

그래서 ‘시간’을 줄이기로 했다. 타석에서 벗어나는 시간을 줄이겠다는 계산을 세웠다. ‘경고’는 덜 효과적일 것 같아, 초강수를 뒀다. 타석을 벗어나면 ‘스트라이크’를 선언하기로 했다. 심지어 타자들의 등장곡 연주 시간을 10초로 줄이겠다고 했다. 10초 안에 타석에 들어서지 않으면 이것 또한 ‘스트라이크’다. 야구 만화 'H2'의 주인공 쿠니미 히로의 명대사 중 하나는 “타임아웃이 없는 시합의 재미를 가르쳐 드리지요”인데, 한국 야구에 ‘타임아웃’이 생겼다.

시간을 줄이기 위해 시간을 잡겠다는 것은 배 아플 때 배를 만지는 할머니 약손이다. 그것도 할머니의 사랑과 정성이 빠진 채다.


타자에게 스트라이크 1개는 무시무시한 형벌이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강정호는 지난 시즌 볼카운트 0-1에서 공격했을 때 타율이 0.432였지만 0-2였을 때 타율은 0.167로 떨어졌다. 리그 전체 타율로 따져도 0-1에서는 0.354이지만, 0-2에서는 0.181이었다. ‘기강’을 잡겠다며 툭하면 ‘과잉처벌’을 언급하는 현 정권의 태도를 꼭 닮았다.

무엇보다 ‘위헌’ 가능성이 높다. 경기촉진룰의 상위법이라고 할 수 있는 야구규칙 2.72는 스트라이크에 대해 ‘투수의 정규 투구로 심판원이 스트라이크라고 선언한 것을 말한다’고 규정한다. 심판이 스트라이크를 선언한다는 점에서 ‘옳다’고 할 수 있지만 그에 앞서 ‘투수의 정규투구’가 인정돼야 한다. 공도 던지지 않았는데 ‘스트라이크’가 되는 것은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

증상을 다스리는 대증요법보다 근본적인 원인 해결을 고민할 때다. 경기 시간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타고투저’다. 스트라이크존에 대한 고민, 공인구의 반발력 등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이에 앞서 리그 확대와 저변 축소로 인한 ‘투수 부족 현상’에 따른 문제가 심각하다. 그나마 KBO가 유소년 투구 법에 관한 책을 낸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대은이 일본 프로야구 지바 롯데행을 택한 과정과 결정은 아쉽다. 부족한 투수를 육성하고 확보하기 위한 대책이, ‘스트라이크’를 아무렇게나 남발하는 대증요법보다 훨씬 중요하다. 눈에 보인다고, 보이는 것만 잡겠다고 ‘과잉처벌’에 가까운 법을 만들어서는 안된다. 정치가 야구를 배워야지, 야구가 정치를 배워서는 곤란하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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