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오클랜드의 ‘스위치 투수’ 팻 벤디트가 야구를 처음 시작한 것은 6살 때였다. 벤디트의 아버지는 그때부터 ‘양손 투수 훈련’을 시켰다. 양손으로 공을 던지기 위해서는 양쪽 다리의 ‘킥 동작’이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점에서 미식축구 공을 양발로 차는 훈련을 시켰을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지난 시즌 16승을 거둔 미네소타의 선발 투수 필 휴즈는 막 돌이 됐을 때 ‘재능’이 발견됐다. 어머니 도리 휴즈는 아기가 의자에 앉아 나무 숟가락을 휘두르는 걸 유심히 살펴보다가 아이에게 콩을 던져줬다. 이제 겨우 한 살짜리 휴즈는 나무 숟가락으로 어머니가 던져 준 공을 정확하게 때려 맞혔다. 도리는 “우리 아이가 자라서 분명히 야구선수가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휴즈는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아버지와 캐치볼을 했고, 4살 때 리틀 리그 선수가 됐다.
요미우리의 하라 다쓰노리 감독은 더 일찍부터였다. 하라 감독의 아버지 하라 미쓰구는 무명이던 미이케공고를 일약 전국대회 정상에 올려놓은 유명한 야구감독이었다. 로버트 휘팅이 쓴 책에 따르면 하라 감독은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테스트’를 받았다. 아버지 하라는 3개월 된 아들의 ‘반사신경’을 테스트하기 위해 아이를 이불 위에 던졌다. 3개월 된 아기가 충격을 줄이기 위해 발을 오므리는 모습을 본 뒤 “음, 훌륭한 야구선수가 되겠군”이라고 흡족해했다.
많은 ‘천재’들이 재능을 조기 발견하고, 집중적인 투자를 받는다. ‘조기 교육’은 성공의 열쇠로 평가받는다. 첫 출발의 시기와 방향이 미래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것으로 여겨진다. 서두르지 않으면 기회를 놓친다는 강박은 우리 사회를, 교육을 지배하는 가치가 됐다. 그런데, 조금 늦는다고, 모든 기회를 날리는 것도, 끝장이 나는 것도 아니다.
야구선수들은 대개 초등학교 3~4학년인 10~11살 때 본격적인 선수의 길로 접어든다. 학교 야구부에 들어가거나, 클럽 야구팀에 소속된다. KIA 2루수 최용규는 이들보다 5년가량 늦었다. 최용규가 야구를 시작한 것은 공주중 2학년 때였다. 초등학교 때 학교 육상 대표로 뛰다가 졸업한 뒤 배정된 중학교에 마침 야구부가 있어서 반대하는 부모님을 졸라 야구 유니폼을 입었다. 최용규는 “처음에는 유니폼도 없어서 학교 체육복을 입고 함께 훈련했다”고 말했다.
공주고를 졸업한 뒤 드래프트에 실패했다. 원광대 입학 허가를 받았지만 세상이 끝난 것 같아 넉 달 동안 학교에 가지 않았다. 최용규는 “그때 김준환 감독님이 아니었더라면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늦게 시작한 야구에 뒤늦게 열정이 더해졌지만 세상의 응답은 빠르지 않았다. 2008년 입단했지만 2009년부터 KIA의 주전 2루수는 5살 어린, 막 고교를 졸업한 안치홍에게 돌아갔다.
군대를 다녀왔다. 상무·경찰이 아닌 일반 사병이었다. 수색대대에서 근무하며 틈틈이 방망이를 휘둘렀다. 제대를 했고, 입단한 지 7년, 우리 나이 서른 하나에 드디어 주전 2루수가 됐다. 안치홍이 스무살에 맡았던 그 자리다. KIA가 6연승을 하는 동안 타율이 0.286. 실책은 1개도 없다. 최용규는 “매일 매일이 새롭다. 전날 잘했든 못했든 싹 잊고, 새 기분으로 경기에 나선다”고 했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 야구도, 인생도.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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