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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번트

베이스볼라운지

by 야구멘터리 2015. 4. 2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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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대전 한화-NC전은 팽팽했다. 7~8년 전, 치열한 라이벌이었던 김성근 감독(한화)과 김경문 감독(NC)의 야구가 맞붙어 치열한 불꽃을 튀겼다.

한화가 2-3으로 뒤진 4회말 1사 1·3루, 권용관이 투수와 1루 사이로 번트를 댔다. 3루주자 김회성이 일찌감치 스타트를 했다. 야구는 훔치기(steal·도루)뿐만 아니라 자살(suicide sacrifice bunt)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를 쓰는 종목이다. 올시즌 한화의 2번째 스퀴즈 번트였다. 김성근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내야 뜬공이 되면 병살 위험성이 있었지만 과감히 승부를 걸었다”고 했다.

번트는 아웃카운트를 버리고 주자의 안전한 진루를 노리는 소극적인 공격이다. 무사 1루의 번트는 득보다 실이 되는 경우가 많다. 번트를 대는 타자의 타율이 매우 좋지 않거나, 번트 다음 타자의 타격이 무척 좋을 때 그나마 효과를 지닌다.


그런데, ‘무서운 번트’가 있다. 상대의 멱살을 쥐고 흔드는 듯한 번트다.

한화는 4회 권용관의 스퀴즈 번트로 동점을 만들고 난 뒤 ‘번트 행진’이 이어졌다. 5회말 무사 1·2루에서는 이적 뒤 매서운 타격을 보여주는 이성열이 희생번트를 성공시켰다. 7회 무사 1·2루가 되자 또다시 이성열에게 희생번트 사인이 나왔다. 5회에는 내야 땅볼과 뜬공으로 점수가 되지 않았지만 7회 번트는 희생뜬공과 홈런이 나오면서 3점이 따라왔다.

8회에는 연속 희생번트가 나왔다. 이용규의 사구 뒤 강경학의 희생번트에 투수가 흔들렸다. 서둘러 2루를 노리다 모두 세이프. 김경언의 희생번트로 1사 2·3루가 됐고 이시찬의 희생뜬공으로 한화는 쐐기점을 뽑았다.

이날 기록된 한화의 희생번트는 모두 5개였다. 번트는 김성근 감독의 ‘주무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기록상 손해인 무사 1루 번트는 1개에 그쳤다. 나머지 4개가 무사 1·2루에서의 번트였다. 무사 1·2루의 득점확률은 63.9%, 기대득점은 1.502점이지만 1사 2·3루가 되면 득점확률이 68.5%로 높아진다(단, KBO 리그에서 기대득점은 1.408로 조금 낮아진다). 김 감독의 번트는 ‘포기는 없다’의 상징이자 ‘1점’을 위한 번트다. “4~5점 뺏겨도 끝까지 기회를 기다린다. 1점이 필요할 때 번트를 댄다”고 말했다.

그 번트가 모일 때 무서운 번트가 된다. 라인업의 모두가 ‘번트’를 잘 댈 때, 언제 어디서든 번트가 나올 때 ‘멱살을 쥐고 흔드는’ 번트가 된다. 이날 경기 ‘거포’로 평가받는 이성열의 번트 성공 2개는 결정적이었다. 권용관의 스퀴즈에 앞서 최진행은 무사 2루, 2구째 번트를 실패한 뒤 볼카운트 0볼-2스트라이크에서 스리번트를 시도하다 슬래시로 전환하며 2루주자 김경언을 3루로 보냈다. 4번째 번트였던 강경학의 번트가 야수 선택으로 이어진 것은 수비에 부담을 주는 ‘무서운 번트’의 힘이었다. 최진행의 슬래시를 번트에 포함시킨다면 한 경기 희생번트 6개. 프로야구 역대 최고기록 타이다.

조성환 KBS N 해설위원은 “팬들로부터 박수를 받을 수 있는 번트가 진짜 희생번트”라고 말했다. 번트에 철학이 담기면, 박수를 이끌어낼 수 있다. 김성근 감독답게, 20일 현재 한화의 희생번트는 21개로 압도적 1위다. 21개 중 무사 1루 번트는 절반이 안되는 8개에 그친다. 나머지 번트들은 무사 2루 4개, 무사 1·2루 6개, 무사 1·3루 1개, 1사 1루 2개다. 4시즌 만에, 김성근 감독과 함께 ‘무서운 번트’가 돌아왔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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