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타와 삼진은 비례하면서도 배반적인 기록이다. 장타는 득점력을 높이지만 삼진은 득점에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한다. 장타를 위해 휘두르는 스윙은 삼진 숫자를 늘리는 부작용을 낳는다. 2스트라이크 이후에 풀스윙을 고수하는 홈런 타자들의 삼진은 대개 늘어나기 마련이다.
야구에서 득점권은 가장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다. 공격도 수비도, 점수를 둘러싸고 치열한 대결을 벌인다. ‘팀 컬러’가 드러난다. 득점권에서 강한 스윙을 하는 팀이라면 장타와 함께 삼진이 늘어난다. 득점권에서 삼진을 줄이는 콤팩트한 스윙이 이뤄진다면 장타와 삼진이 함께 줄어든다.
장타 성향을 잘 드러내는 기록은 장타율에서 타율을 뺀 ‘순장타율(ISO)’이다. 올시즌 거침없는 스윙을 하는 롯데는 시즌 평균 ISO가 0.185로 넥센(0.193)에 이어 리그 2위다. 득점권이 되면 0.237로 치솟는다. 득점권 때 더욱 강한 스윙을 한다. 대신 타석당 삼진은 22%에서 23%로 늘어난다. 반면 한화는 평소 ISO 0.141에서 득점권 때 0.096으로 급격하게 줄어든다. 타석당 삼진은 18%에서 큰 변화가 없다. 대신 볼넷이 3%포인트 높아진다. 득점권에서 ‘콘택트’에 집중하는 팀 컬러를 지녔다. 그런데, 삼성은 독특하다. 시즌 팀 ISO가 0.182인데, 득점권이 되면 0.194로 높아진다. 16%인 타석당 삼진이 12%로 뚝 떨어진다. 득점권에서 장타 비율이 높아지면서 삼진이 줄어드는 ‘이해불가’의 기록을 나타낸다. 득점권 타석당 삼진 비율 12%는 리그 최저다. 리그 평균 19%에 비해 7%포인트나 낮다.
삼성 최형우는 “그게 바로 삼성이 갖고 있는 힘”이라고 했다. 최형우는 “내가 봐도 우리팀 타자들 모두 야구를 엄청나게 잘한다. 타자들 대부분이 주자가 쌓였을 때 긴장하기는커녕 타점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해 신이 나서 타석에 들어선다”고 말했다. 1980년대 후반 해태 전성기를 보냈던 이들은 “옛날 해태가 그랬다”고 했다. 앞타자가 홈런을 치고 나면 다음 타자가 “아따, 내 먹을 것도 좀 남겨 주소”라며 아쉬워했단다. 최형우 역시 “우리 팀도 앞타자가 홈런 치고 들어오면 축하해주면서 농담으로 나도 타점 좀 올리자는 얘기를 하는 때가 있다”며 웃었다.
삼성이 4년 연속 우승과 함께 쌓은 ‘승리의 경험’ 덕분이다. 승리의 경험은 긴장감이 극도로 높아지는 득점권에서 침착함을 유지하고 운동수행능력을 높인다. 긍정적인 긴장감이 집중력 향상으로 이어지면서 삼진을 줄이고 장타 가능성을 높인다.
주전 라인업 대부분이 최근 4년의 우승과 함께했다. 기술적 향상뿐만 아니라 득점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대한 경험 축적으로 ‘위기에 강한 타자’들로 성장했다. 팀을 재건하는 ‘리빌딩’, 유망주의 성장이 쌓이는 패배 속 단순한 경험 축적만으로 이뤄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막내구단 KT의 시즌 ISO는 0.100, 득점권 때의 ISO는 0.082로 떨어진다. 타석당 삼진은 22%에서 24%로 늘어난다. 경험 부족의 증거로 읽힌다. 최근 쌓기 시작한 승리가 더욱 필요한 팀이다. 리그 강타선으로 평가받는 넥센 역시 젊은 타자들의 경험 부족이 기록에서 드러난다. ISO는 0.193에서 0.190으로 줄고, 삼진은 21%에서 25%로 늘어난다. 물론 워낙 득점권 ISO가 높아(리그 3위) 부진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이 쌓는 승리 경험을 고려하면 앞으로 더욱 무서운 타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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