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김성근 감독은 시즌 초반 “우리는 내일이 없는 야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내일 경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이길지 질지 모르는 오늘 한 경기에 매달리겠다는 뜻은 아니다. ‘내일 경기도 있으니 오늘은 이쯤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을 경계한다는 뜻이었다. ‘이 정도면 오늘은 졌다. 내일 잘해서 이기면 되지’라는 여유와 그 빈틈을 멀리 떼놓고자 했다.
한화의 ‘내일 없는’ 야구는 경계심의 야구였다. 끊임없이 경기에 몰두하게 하는 긴장의 야구였다. ‘내일이 없는 야구’는 ‘내 일이 없는 야구’를 통해 만들어졌다. 한화 선수들에게 ‘내 일’은 없었다. 각자의 포지션이 갖고 있던 루틴한 관습을 모두 털어냈다.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포지션과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던 일을 해야 했다. 중심타선은 여유 있게 장타를 노리고 있을 수 없다. 5번 최진행은 10일 대구 삼성전에서 0-1로 뒤진 4회초 무사 1·2루에서 페이크 번트 앤드 슬래시 작전을 수행했다. 번트 동작에서 타격 동작으로 바꿨고 헛스윙. 작전 수행은 실패였지만 주자들이 도루에 성공했다. 볼넷을 고른 뒤 신성현의 만루홈런이 나왔다. 12일 대전 LG전에서는 7회 희생번트를 성공시켰고, 추가득점으로 이어졌다.
수비에서도 포지션의 파괴가 자주 이뤄진다. 권용관은 유격수와 1루수를 수시로 오간다. 김회성 역시 3루수와 1루수를 오간다. 2루수 정근우는 심지어 중견수로도 나섰다. 제 자리에서 ‘내 일’만 고집할 수 없는 분위기다. 새로운 포지션에 대한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긴장해야 한다. 해당 포지션의 전문성에 집착하기보다 포지션 이동에 따른 수비진 전체의 긴장감을 더 중요시 여긴다.
투수들의 보직도 마찬가지다. 정해진 제 역할에 가둬두지 않는다. 심지어 윤규진은 타석에도 들어선다. 올 시즌 좌완 스페셜리스트로 좋은 활약을 펼치는 김기현은 “언제 등판할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항상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규진과 권혁은 때로 순서를 바꿔 등판한다. 예측 불가능은 때로 불펜 혹사, 부진의 이유로 거론되지만 한화는 이를 위해 불펜 투수들의 훈련 방식을 변경했다. 캐치볼을 없애고, 워밍업 뒤 등판 직전 투구 훈련으로 컨디션을 끌어올린다.
4년 연속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를 제패한 삼성의 야구는 반대로 ‘내 일’의 야구를 한다. 주축 선수들이 빼어난 실력을 갖췄음에도 자신의 일을 절대 게을리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이 되면서 자신을 성장시키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들이 ‘내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삼성의 전력은 탄탄함을 넘어 강함으로 이어진다. 이승엽은 누구보다 일찍 그라운드에 나와 훈련을 하고 있고 최형우의 방망이는 여전히 날카롭다.
반면, 잘 안 풀리는 팀은 ‘내일이 있는 야구’와 함께 ‘내 일만 하는 야구’를 한다. 한번 흐름이 꺾이면 이날 경기보다 다음날 경기를 먼저 준비한다. ‘내 일만’ 하는 야구에서는 자신이 익숙했던 타순만 바뀌어도 흔들린다. 제 포지션이 아닌 다른 포지션에서의 수비는 적응력이 떨어진다. 예정된 등판 시기보다 조금만 더 일찍 마운드에 오르더라도 제 공을 던지지 못하고 흔들리기 일쑤다. 남이 빠진 자리를 스스로 채우지 못하고 팀 전력에 구멍이 뚫린다. 최근 성적이 좋지 않은 팀들의 야구가 딱 이대로다. 그 야구는 거꾸로 돌아간다. ‘내일의 야구’를 하고 ‘내 일만 하는 야구’를 하면 정작 ‘내일’이 사라진다. 야구는 팀 스포츠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실수 인정, 그리고 변화와 진화 (0) | 2015.07.06 |
---|---|
‘사막의 질주’ 효과 (0) | 2015.06.22 |
메르스, 야구라면… (0) | 2015.06.08 |
대기록 나몰라? (0) | 2015.06.01 |
최선과 불문율 (0) | 2015.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