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는 지난 시즌 리그에서 가장 공을 많이 보는 타자 중 한 명이었다. 타석당 투구수가 4.27개(리그 4위)였다. 3년 연속 홈런왕에게 좋은 공을 던질 투수는 많지 않았다. 박병호는 제 역할을 잘 아는 타자였다. 나쁜 공을 참았고, 견뎌냈다. 볼넷 96개는 삼성 나바로와 리그 공동 1위였다. 5.95타석마다 1개씩 볼넷을 골랐다.
그런데 올 시즌 초반, 박병호는 기다리는 법을 잊은 듯했다. 5월8일까지 박병호가 골라낸 볼넷은 겨우 13개였다. 9.15타석마다 1개씩으로 전년보다 절반 가까이 줄었다. 스윙이 늘고, 타석당 투구수가 줄었다. 전체 투구수 중 헛스윙 비율 14.2%는 리그에서 가장 많았다. 타석당 투구수는 3.97개까지 떨어졌다.
‘4번타자’로서의 책임감 때문이었다.
지난해 자신의 다음 타석을 지켜줬던 강정호는 리그를 떠나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117타점을 거뒀던 타자가 없어졌다. 시즌 초반 5번 타순에 들어선 윤석민과 김민성의 파괴력은 아무래도 강정호만 못했다.
다음 타자가 약한 상태에서 상대 투수들이 박병호에게 좋은 공을 줄 리 만무했다. 그래도 박병호는 휘둘렀다. 박병호는 “아무래도 강정호 때보다는 뒤가 약하다고 상대가 생각할 것 같았다. 타석 때 볼카운트가 쌓이면 좋은 공을 더욱 안 줄 가능성이 높았다. 내 타석에서 어떻게든 결과를 내는 게 필요하다고 계산했다. 가능한 한 빠른 카운트에서 노림수로 승부했다”고 말했다.
적극적인 스윙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5월8일 현재 박병호의 타율은 3할4푼5리(6위)였다. 박병호의 개인 통산 최고 타율은 3할1푼8리(2013년)였다. 대신 홈런을 잃었다. 리그에서 무려 9명이나 박병호보다 홈런이 많거나 같았다.
박병호가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은 이후였다. 박병호는 이후 45경기에서 타석당 투구수가 4.06개로 조금 나아지기 시작했다. 볼넷 역시 7.24타석마다 1개씩으로 빠르게 회복했다. 앞서 32경기 8개였던 홈런은 이후 45경기에서 17개로 폭발했다. 박병호가 돌아왔다.
유한준이 4월 중순 이후 5번에 고정된 이유이기도 했지만 박병호의 스윙에 변화가 생겼다. 넥센 심재학 타격 코치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한 노력 중 하나가 150㎞ 강속구에 대한 대처였다. 테이크백을 짧고 빠르게 가져가려 노력하다보니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가상의 스트라이크 존이 낮아지는 왜곡이 생겼다. 낮은 볼에 방망이가 나와 헛스윙이 늘었고, 자신의 예상보다 공의 윗부분을 때리게 돼 타구가 높이 뜨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심 코치는 “박병호라는 타자가 대단하다고 느끼는 것은 이런 문제를 스스로 고쳐내는 데 있다”고 덧붙였다. 박병호는 실수를 인정했고, 이를 통해 변화했고, 더욱 뛰어난 타자로 진화했다. 책임감을 어깨에 얹은 박병호는 여전히 적극적인 스윙을 하지만 안타도 홈런도 많이 때리는 타자가 됐다. 타이밍이 까다로운 투수를 만나면, 마치 강정호가 그랬듯, 왼발을 들지 않고 스윙을 한다. 박병호는 홈런(25개) 1위뿐만 아니라 타율(0.346)에서도 2위다. 도루를 제외한 공격 전 부문에서 1위를 노릴 만한 ‘완성형 타자’가 됐다.
그러니 부디, 이제 조금 잠잠해졌다고 무조건 잘했다고 우기거나,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거나, 모른 척하고 덮고 넘어가지 말기를. 4번타자의 책임감보다 훨씬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할 분들 얘기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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