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속구라면, 역시 시속 150㎞다. KBO리그 국내 투수 중 평균구속 150㎞를 유지할 수 있는 투수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이따금 150㎞ 언저리의 공을 던지는 투수들이 있을 뿐이다. 빠른 공은 모든 투수들의 소원이다.
메이저리그 역시 강속구의 기준은 93마일(약 150㎞)이다.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중 팬그래프닷컴 기준 속구 평균구속 93마일을 넘긴 투수는 24명이었다. 구원투수로 확대하면 숫자가 크게 늘어난다. 50이닝 이상 던진 구원투수 중 평균구속 93마일 이상 기록한 투수는 모두 65명이었다. 제자리에서 제 몫을 하는 89명의 투수가 ‘강속구 투수’다. 구원투수 중 평균구속 93마일의 마지막 자리는 LA 다저스 마무리 켈리 잰슨이 차지했다.
투수들이, 특히 젊은 투수들이 사라졌다. 올 시즌 갑자기 사라진 게 아니라 수년째 보이지 않는다. 25세 이하 선발투수는 KBO리그의 ‘멸종 위기종’이다. 올 시즌 25세 이하 투수 중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는 한 명도 없었다. 류현진, 김광현, 양현종 등 87~88년생 투수들 이후 선발투수로서 2년 연속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는 이재학(90년생, 2013~2014)이 유일하다.
‘강속구’라고 평가받는 150㎞ 언저리의 공을 씩씩하게 뿌리면서 선발 자리를 꿰찬 선수들은 류현진이 데뷔한 2006년 이후 멸종 위기에 처했다. 매년 새로운 투수들이 리그에 수혈되지만, 선발투수로 성공하는 투수들은 없다. 외국인 투수들이 선발 2자리씩을 차지하고 있는 데다, 빠른 공을 가진 투수들은 불펜투수로 먼저 키워진다. 팀의 미래보다는 당장의 성적을 위한 선택들이 리그 ‘젊은 선발’의 싹을 말렸다.
후유증이 이번 프리미어12 대회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대표팀의 선발 마운드가 휑하다. 오타니를 비롯한 일본의 젊은 투수들이 새로운 일본 대표팀 마운드를 구성한 것과 달리 한국 대표팀 선발진은 4명을 채우기도 어려웠다. 다양성을 갖춘 불펜진의 효과적인 마운드 운용을 통해 조별리그를 통과했지만 경기의 흐름을 좌우할 압도적인 선발은 한 명도 갖지 못했다.
수년째 이어지는 선발 기근은 단지 아마추어 저변 부족의 문제만은 아니다. 류현진 같은 좋은 선수가 뚝 떨어지기를 바라는 ‘천수답’ 야구로는 KBO리그 10개 구단 체제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외국인 투수에 의존하는 리그 운영은 야구 생태계를 위협할 수 있다.
열심히 일하는 리그 투수 코치들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지금까지 결과로는 누구도 ‘성공’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어떤 구단도 투수를 성장시키지 못했다. 투구 이론 및 육성 시스템의 전면적인 재평가가 필요할 수도 있다. 오히려 투수를 성장시키기 위해 개별 팀이 아닌 리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투구 이론 및 투수 트레이닝, 컨디셔닝 방식의 정보가 한데 모여야 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인 노하우를 공유하고 리그 전체 투수를 성장시키는 리그 차원의 ‘투수 연구소’가 세워져야 할지도 모른다.
고갈됐던 ‘야구발전기금’이 리그 확대 과정에서 충분히 쌓였다. NC가 가입금 30억원과 발전기금 20억원을 냈고, KT는 가입금 30억원에 발전기금 200억원을 냈다. 발전기금만 220억원이다. 대한축구협회가 만든 NFC(National Football Center)처럼 야구 발전을 위한 KBC(Korea Baseball Center)가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단지 국가대표가 아니라 한국 야구 발전을 위한 시설이 돼야 한다. 2001년 개관한 NFC에 들어간 돈은 130억원이었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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