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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 감독, 1000패에서 얻은 것

베이스볼라운지

by 야구멘터리 2015. 11. 2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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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실패를 먹고 자란다. 제 아무리 뛰어난 팀이라 해도 승률 6할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경기의 40%는 패하기 마련이다. 타자는 실패가 더 익숙하다. 3할타자라는 훈장은 70% 가까운 실패를 통해 얻는 명예다.

프리미어 12 대표팀은 역대 ‘최약체’로 평가받았다. 압도적인 에이스는 없었고, 불펜 투수들의 국제 경기 경험은 떨어졌다. 타자들의 면면은 화려했지만 자칫 타고투저 리그의 ‘온실 속 화초’가 될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김인식 감독은, 악조건 속에서 시작했고 그 모든 조건을 뚫고 헤쳐나갔다. 약해 보였던 전력은 경기를 치르면서 단단해진 팀워크와 함께 예상 이상의 힘을 발휘했다.

며칠이 지났어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 일본과의 준결승 짜릿한 승리, 예선에서의 패배를 제대로 갚은 미국과의 결승전. 김 감독은 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극적인 우승을 따냈다.

김 감독은 KBO리그 감독 통산 980승1032패를 기록했다. 김 감독을 ‘승부사’로 만든 것은 980번의 승리가 아니라 1000번이 넘는 패배에서 나왔다.

김 감독은 야구 감독의 조건으로 3가지를 꼽는다. 머리와 눈, 그리고 가슴이다. 머리는 야구 경기를 펼치는 ‘지략’이다. 경기의 흐름을 읽고 상황에 맞는 전략을 구사한다. 일본전에서 보여준 절묘한 대타 작전, 대회 내내 펼쳐진 귀신같은 계투 작전은 김 감독의 머리에서 나왔다.

머리를 만드는 것은 눈이다. 선수의 능력을 파악하고 살피는 힘이다. 적재적소 투입을 위해서는 정확한 타이밍도 중요하지만 그때 필요한 능력을 갖춘 선수를 찾는 게 우선이다. 대표팀이 보여준 ‘귀신계투’는 김 감독의 눈에서 나왔다.



그 눈을 만드는 것이 바로 가슴이다. 김 감독은 가슴의 조건으로 “이겨야 한다는, 열정이 넘치는 뜨거운 가슴이 아니라 선수와 소통할 수 있는, 믿고 기다릴 수 있는 따뜻한 가슴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따뜻한 가슴으로 선수를 바라볼 때 그 선수의 능력을 끌어낼 수 있고, 능력을 끌어내야 적재적소에 투입했을 때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김 감독은 “누군가를 혼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최하수의 길”이라며 “선수의 실수를 참고 견뎌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따뜻한 가슴이 필요한 이유”라고 설명한다.

그 따뜻한 가슴을 얻을 수 있는 길이 바로 패배다. 김 감독은 “적어도 300패쯤은 해 봐야 길이 보인다”고 했다. 승리를 통해 자신의 결정이 옳았음을 판단하는 일은 쉽지 않다. 자칫 자만과 독선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최소 300패를 통해 자신의 결정이 잘못됐음을 깨닫는 일이 쌓이고 쌓이면 그곳에서 야구의 길이 보인다는 뜻이다. 패배가 쌓이면 단지 따뜻한 가슴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패배를 통해 위기의 징조를 빨리 파악할 수 있다. 프리미어 12에서 보여준 ‘귀신계투’는 그 위기의 징조를 재빨리 알아챈 김 감독의 1000번의 패배 덕분이다.

과거와 다른, 올바른 미래를 만드는 것은 ‘성공’의 역사가 아니라 ‘실패’의 역사다. 과거 성공에 대한 집착은 오만과 독선을 만들지만 실패에 대한 반성은 위기가 닥쳤을 때 이를 벗어날 수 있게 하는 밑거름이 된다.

김 감독이 프리미어 12 우승을 통해 우리 사회에 던져주는 묵직한 메시지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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