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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바보의 우공이산

베이스볼라운지

by 야구멘터리 2015. 12. 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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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조나의 1루수 폴 골드슈미트는 대표적인 야구 바보다. 주변의 모든 것을 ‘야구’로 생각한다. 2009년 드래프트에서 8라운드, 전체 246번째로 애리조나에 지명됐다.

애리조나는 골드슈미트에 앞서 포지션이 겹치는 코너 내야수만 5명을 뽑았다. 빅리그에 데뷔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특유의 성실함으로 이를 모두 이겨냈다. 스카우트들은 골드슈미트의 수비 능력에 대해 ‘보통’이라고 평가했다. 입단하자마자 마이너리그 팀의 수비 코치를 찾아갔다. ‘골드글러브 1루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수비에 매달렸고, 골드슈미트는 결국 골드글러브를 따냈다.

주변의 모든 일을 야구에 맞춘다. 책을 읽으면 그 책에서 야구를 찾는다. 골드슈미트는 어느 날 <행복의 특권>이라는 책을 읽었고 그 책에서 ‘행복할 때 시야가 넓어지고 시선의 집중력도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찾았다.



곧장 야구에 적용했다. 행복한 상태에서 경기에 나서면, 타석에서 공이 잘 보일 것이라는 가설이었다. 그래서 골드슈미트는 경기 전 20분 동안 라커룸에서 ‘코미디 영화’를 본다. <백만장자 빌리>라는 영화는 100번도 넘게 봤다.

유한준 역시 야구 바보였다. 야구밖에 몰랐다. 고교 졸업 때인 2000년 현대에 2차 3라운드에 지명됐다. 지명될 때는 내야수였다. 유격수와 3루수를 오갔다. 동국대 졸업 뒤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했다. 입단 뒤 외야수가 됐다. 현대 외야수 자리에는 쟁쟁한 선수들이 넘쳐났다. 입단 2년차였던 2005시즌 겨우 18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야구만 생각하는 바보였다.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 몸에 좋지 않은 음식도 멀리한다. 일본 전지훈련 때 선수들의 ‘취미’로 여겨지는 빠찐꼬도 사절이다. 주변의 선배들은 유한준을 가리켜 “그렇게 해서 벽에 X칠 할 때까지 야구하라”며 놀렸다.

골드슈미트처럼 모든 게 야구였다. 내야에서 외야로 전향한 프로생활, 어떻게 하면 외야 수비를 잘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유한준은 “어느 날 TV로 테니스 중계를 보고 있었다. 200㎞에 가까운 서브를 받아내는 게 신기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아, 외야수비도 테니스의 서브를 받는 것처럼 하면 되겠구나”라고 말했다. 열쇠는 리듬이었다. 유한준의 외야수비는 리그 정상급으로 평가받는다. 2012년 팔꿈치 수술을 받은 뒤 슬럼프가 찾아왔다. 조급한 마음에 재활 때 훈련량을 늘렸다가 탈이 났다. 유한준은 <9회말 2아웃에 시작하는 멘탈게임>이라는 책에서 길을 찾았다. 유한준은 “시간과 싸우려 하지 말고, 그 시간에 올라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2013년 겨울은 유한준에게 ‘터닝 포인트’가 됐다. 타구 스피드를 높이기 위해 힘을 키워야 했고, 이를 위해 몸무게를 늘렸다. 스스로의 표현대로 “미친 놈처럼 먹어댔다”고 했다. 넥센 이지풍 트레이닝 코치는 “유한준 아니면 그런 프로그램을 짜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승부수가 통했다. 유한준은 최근 2시즌 OPS(출루율+장타율) 0.972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리그 외야수 중 유한준보다 OPS가 높은 선수는 삼성 최형우(1.013)가 전부다.

유한준은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었고, KT와 4년 60억원에 계약했다. 경주에서 이기는 것은 꾸준한 거북이고, 태산을 옮기는 것은 어리석어 보이는 이들의 힘이다.


이용균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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