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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의 심리학

베이스볼라운지

by 야구멘터리 2015. 11. 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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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은 겉보기 전력보다 더 뛰어난 성과를 거뒀다. 두산 선수들은 자신감이 넘쳤고, 긴장 속에서 여유를 잃지 않았다. 팀 응집력이 단단했다. 보이지 않는 전력이 숨어 있었다.

야구는 멘털 게임이다. 자신감은 수행 능력을 향상시킨다. 넥센과의 4차전은 두산 선수들의 자신감을 크게 끌어올렸다. 2-9로 뒤진 경기를 역전승으로 바꿔놓았다. 넥센 마무리 조상우를 9회 무너뜨리며 4점차를 뒤집었다. 상대 어떤 투수라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우승의 심리학이다. ‘잘해야 한다’는 수행 결과에 대한 압박감은 거꾸로 수행 능력을 떨어뜨린다.

2년 전 실패를 통해 두산 선수들은 크게 배웠다. 이겼다고 지나치게 좋아하지 않았고, 졌다고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앞서 겪은 4번의 준우승을 통해 두산 선수들은 심리적 회복 탄력성을 얻었다. 오늘 경기의 결과를 내일로 이어가지 않았다. 정규시즌 때 어이없는 대패가 여러 차례였고, 다음날 아무렇지 않게 경기에 나섰다. NC와의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2-16으로 패한 뒤에도 다음 경기에서 이겼고 삼성과의 1차전을 8-4로 이기고 있다가 8-9로 내주고도 다음날 이겼다. 심리적 회복 탄력성이 뛰어났다.

삼성 타선이 한국시리즈에서 무기력했던 것은 거꾸로의 결과였다. 마운드 전력에 공백이 생겼고, 이를 타선이 메워야 했다. 잘 쳐야 한다는 부담감이 타석에서의 수행능력을 떨어뜨렸다.

양의지, 정수빈의 부상은 거꾸로 팀 응집력을 키웠다. 양의지는 발가락 뼈끝이 떨어져나갔고, 정수빈은 손가락을 6바늘이나 꿰맸다. 그럼에도 경기에 나섰다. 두산 김현수는 “양의지, 정수빈이 저렇게 뛰는 데 지금 아프다고 할 선수 아무도 없다”며 웃었다. 한국 사회는 특정 목표를 향한 과제 응집력보다, 사회적 관계에 의한 사회 응집력이 훨씬 크게 작동하는 사회다. 우승이라는 목표를 향한 과제 응집력보다, 다친 동료들을 지켜보는 팀의 사회 응집력이 두산서 더 큰 힘을 발휘했다.



삼성에 비해 약해 보였던 두산 타선이 힘을 낸 것 역시 응집력 덕분이다. 다른 팀에서 옮겨 온 한 코치는 “가을이 되자 선수들의 응집력이 달라지더라. 포스트시즌을 치르는 동안 상대 투수의 구위, 구종 등에 대해 타자들이 공유하는 방식이 남달랐다”고 설명했다.

삼성 장원삼은 2차전 5회초 1점을 내준 뒤 두산의 1~3번, 허경민-박건우-민병헌에게 연속 3안타를 더 내줬다. 모두 체인지업을 맞았다. 5차전 3회 5점을 뽑을 때 두산 타자들은 거꾸로 장원삼의 직구를 공략했다. 1회 2타점을 만들어낸 양의지의 좌중간 2루타 역시 평소 같았으면 헛스윙이 될 수도 있었던 높은 직구를 때려 만들었다.

가을야구 14경기째, 체력적인 문제와 함께 두산 타자들의 직구 대처 능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었지만, 3일 쉬고 나온 장원삼의 직구 구위가 이를 압도하지 못했고, 두산 타자들이 이를 재빨리 공유한 뒤 공략했다.

우승은 선수들의 힘이었지만, 구단의 노력 역시 가상했다. 오랜 경험으로, 야구는 ‘운’이 영향을 미치는 종목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두산 더그아웃 기록을 맡는 유필선 과장은 야간 경기에도 낮에 낀 선글라스를 벗지 않고 기록지에 경기 내용을 적어 나갔다. 두산 홍보팀 직원들은 매일 같은 패스트푸드점의 같은 햄버거를 먹었다. 이긴 날 입었던 옷을 다음날 그대로 입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두산이 강남구 리츠칼튼호텔을 숙소로 잡은 것은 2001년 우승 때 묵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떠돌던 ‘예언글’을 모두가 돌려가며 읽고 믿었던 것 역시 그 때문이다.

하늘이 정해준다는 우승은 그렇게 만들어지는지도 모른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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