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지나간 것은…그런 의미가 있죠

베이스볼라운지

by 야구멘터리 2015. 12. 28. 21:00

본문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4월25일이었다. 6회말 2사 1루, 114㎞의 커브는 3루 땅볼을 만들어냈다. KT 타선을 7이닝 무실점으로 막아내고 시즌 2승째를 따낸 선수는 넥센 송신영이었다. 앞선 19일 KIA전에서 6.2이닝을 1실점으로 막아 승리를 따냈다. 그 승리는 송신영이 3200일 만에 거둔 선발승이었다. 2경기에서 2승, 평균자책 0.71을 기록했다.

같은 날, 마산 경기 6-2로 앞선 1사 1·2루. 박민우를 상대한 122㎞ 슬라이더가 병살타를 만들어냈다. 땀을 뻘뻘 흘리고 있던 LG 투수 장진용은 주먹을 쥐었다. 마지막 승리는 2005년의 일이었다. 무려 3600일 만의 승리, 선발승은 2004년 데뷔 후 12시즌 만에 처음이었다.

그날, 야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7회 1사 뒤 마운드에 올라 1실점을 더한 터였다. 2점차로 한화가 뒤진 9회말, 타선이 폭발하며 경기를 뒤집었다. 팬들은 끝내기 안타를 때린 김경언 말고도 또 한 명의 이름을 불렀다. 7회 패전처리로 올라왔던 이동걸은, 극적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며칠 전 빈볼논란 징계 뒤 2번째 등판이었다. 입단 9시즌 만에 거둔 첫번째 승리였다. 4월25일은, 기적의 날이었다. 기적은 견디고 버티는 이들에게 하늘이 주는 선물이었다.

앞선 4월9일은 대기록의 날이었다. 두산 유니에스키 마야는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고 펑펑 눈물을 흘렸다. 같은 날 NC 에릭 테임즈는 9회 마지막 타석에서 3루타를 쳐 사이클링 히트를 완성했다. 대기록 사이에 또 의미 있는 결과들이 있었다. ‘저니맨’ 이성열은 한화로 이적하자마자 2루타와 홈런을 터뜨리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삼성 신인 구자욱은 대구 롯데전에서 3-3으로 맞선 9회말 무사 1·3루에서 대타로 나와 끝내기 안타를 터뜨렸다. 이성열도 구자욱도 ‘시작’을 알리는 안타를 때렸다. 모든 일에, 시작은 있고, 모든 시작은 작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한화 선수들은 시즌 전 모자에 ‘뭉치’라고 적었다. 하나로 뭉치자는 뜻도 있었지만 뭉치라는 별명을 가졌던 정현석의 쾌유를 비는 뜻이 더 진했다. 위암 판정을 받았던 정현석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8월5일 1군에 복귀해 안타 2개와 타점 1개를 기록했다. 극복이라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뭉치의 뭉클한 순간.

가을야구가 시작됐고, 10월19일 또 한 명의 ‘극복의 상징’이 마운드에 올랐다. 대장암 판정을 받았던 NC 원종현은 NC-두산 플레이오프 1차전 시구를 했다. 155㎞를 던지지 못했지만 공 끝에 담긴, 복귀를 바라는 마음의 속도는 200㎞ 못지않았다. 포수 김태군은 마운드에 올라 원종현을 힘껏 끌어안았다.

가을야구가 이어졌다. SK 김성현은 공을 놓쳤고, 선수들은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최고는 두산 니퍼트였다. 한국시리즈 5차전, 8회 마운드를 넘길 때 포수 양의지, 마무리 이현승과 마운드에서 꼭 끌어안았다. 두산 팬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다. 야구는, 함께하는 종목이었다.

두산이 우승했다. 우승 세리머니가 펼쳐지는 가운데, 건너편 더그아웃 앞에 삼성 선수들이 줄을 서서 박수를 보냈다. 누구도 따라 하기 힘든 패자의 품격이었다. 승자 독식의 사회에 보란 듯이 보여 준 야구의 교훈이었다.

김인식 대표팀 감독은 일본과의 준결승, 몸이 불편함에도 경기 전 직접 배팅오더를 교환하기 위해 그라운드로 나섰다. 백전 노장은 온화한 표정 속에서 이를 악물고 걸음을 옮겼다. 경기는, 이미 그때 우리가 이겼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 2015 프로야구, 굿바이.


이용균 noda@kyunghyang.com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