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흥했다. 10개 구단 체제 첫해, 관중 숫자는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포스트시즌을 합쳐 처음으로 760만명을 넘어섰다. 2012년의 753만여명을 뛰어넘은 숫자였다.
비싼 좌석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입장 수익은 더욱 크게 늘었다. 2012년 8개 구단의 총 입장 매출은 739억원이었는데, 올 시즌 입장 매출은 810억원이나 됐다. 객단가가 1만원이 넘는다. 10시즌 전, 2006년의 KBO리그 객단가는 겨우 3500원이었다. 같은 기간 중계권료 역시 폭등했다. 2004년 70억원이던 중계권료는 2011년 약 230억원으로 올랐고 2015시즌 중계권료는 500억원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입장 매출에 중계권료만 따져도 1300억원 시장이 형성됐다. 프로야구 구단들의 매출 합계는 이미 2012년 3000억원을 넘어섰다.
그럼에도, 독자생존이 가능하다는 팀이 보이지 않는다. 나아졌다는 팀도 눈에 띄지 않는다. 히어로즈 역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포스팅 비용과 FA 보상금 등으로 쌓은 200억원을 곳간에 쟁여두기로 했다.
그래도 FA 시장은 춤을 췄다. 롯데와 한화는 각각 2명씩을 데려가면서 100억원에 가까운 돈을 썼다. 한화는 김태균과 조인성을 남기는 데만 94억원을 썼으니 이번 스토브리그 FA 4명에게 보장한 금액만 200억원이다. KIA는 FA 시장에 돈을 쓰는 대신 외국인 선수 영입에 큰돈을 썼다. 헥터 노에시의 영입 금액은 170만달러로 발표됐지만 미국 언론들은 200만달러라고 전했다. 4년으로 따지면 100억원에 가까운 금액이다.
거품론에 위기론이 더해졌다. ‘기업이라는 데가 만만한 곳이 아니다. 쓸 만하니까 쓰는 것’이라는 반론도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 프로야구에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
두산과 삼성은 한국시리즈에서 맞대결을 펼쳤다. 올 시즌 가장 멋진 야구를 보여준 두 팀이었지만 올겨울, 외풍이 남다르다. 삼성은 지난 11일, 대주주가 제일기획으로 바뀌었다고 발표했다. 삼성 라이온즈는 더 이상, 그룹이 추구하는 ‘1등주의’를 야구라는 종목에서 체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팀이 아니다. 이건희 회장이 얘기했던, 3대 스포츠에서 배우는 덕목을 완성하는 팀도 아니다. ‘최강 삼성’은 구단의 1순위 목표에서 응원 구호로 내려앉았다. 통합 마케팅을 통해 그룹 내 스포츠 마케팅의 효율을 높이는 목표와 함께 장차 스포츠 구단의 자생력 강화가 숙제로 남았다. 두산은 그룹 내 주요 계열사인 두산인프라코어의 후폭풍을 맞았다. 인프라코어가 대규모 구조조정 속에 ‘23세 신입사원’의 명예퇴직이 언급되는 가운데 100억원이 넘을 것이라던 FA 김현수가 볼티모어와 계약한 것은 언감생심, 가슴을 쓸어내릴 일이다. 모그룹의 지원은 손쉬운 일이었지만, 예속은 거꾸로 위기 때 동반 몰락을 뜻한다. ‘최강 삼성’이 목표에서 구호로 바뀌었다면 프로야구의 자생력 강화는 구호에서 현실적인 목표로 바뀌었다.
19세기 중반 찰스 디킨스가 지은 ‘크리스마스 캐럴’의 주인공 스크루지는 외쳤다. “바보 멍청이들로만 가득 찬 이 세상에서 그럼 나더러 어쩌라는 게냐. 메리 크리스마스 좋아하고 있네! 빌어먹을 메리 크리스마스!” 스크루지는 그날 밤, 유령과 함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간 뒤 깨달았다. 2015년 크리스마스, 프로야구는 스크루지의 꿈을 꾸어야 할 때다. 보다 먼 미래, 진짜 메리 크리스마스를 위해서라도, 지금 필요한 것은 크리스마스의 악몽이다.
이용균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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