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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신인 강상원 “99번째라도 괜찮아”

베이스볼라운지

by 야구멘터리 2016. 3. 14.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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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이었다. 8월의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가 열렸다.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를 앞둔 대표 선수들이 행사장 한쪽을 메우고 있었다. 밭에서 막 뽑아낸 무 같은 싱싱함이 있었다. 파릇한 풀 내음과 푸근한 흙내를 함께 지녔다. 다들 내심 상위 지명을 기대하고 있었다.

한 명씩 이름이 불렸다. 손을 번쩍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새로운 팀의 유니폼을 입었다. 치기 어린 자부심과 열아홉 나이다운 풋풋함이 함께였다. 취업 합격증과도 같은 지명 순서에 감출 수 없는 표정이 내비쳤다. 3라운드 내 지명선수들은 우쭐한 미소가 입꼬리에 걸렸다. 반면 이름이 불리지 않은 선수들은 박수를 치는 손에 점점 힘이 줄었다.

10개 구단이 10명씩 뽑는 자리였다. 이세돌 9단에게 닥친 초읽기처럼, 남은 자리가 하나씩 줄고 있었다. 6라운드, 7라운드가 지나도 이름이 불리지 않으면 패배가 눈앞에 다가온다.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을 법한 열아홉 고교생, 청소년 대표팀 부동의 1번 타자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자리가 하나씩 줄어들 때마다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고 했다.

‘초읽기’로 치자면 2초가 남았을 때다. 100명 중 99번째 지명에서 한화는 “천안북일고 외야수 강상원”을 지명했다. 강상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굳었던 얼굴이 환하게 피었다. 강상원은 “순서는 상관없다. 99번째도 100번째도 상관없다”며 웃었고 “연고 구단 한화에 입단하게 돼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함께 자리를 지켰던 어머니 정회연씨(50)는 “지명 순서가 중요하지 않다는 걸 많은 사람이 보여주지 않았나”라고 말한 뒤 대견스러워하는 눈으로 아들을 쳐다봤다.

강상원은 99번째였지만 팀의 스프링캠프를 함께했다. 한화의 스프링캠프를 끝까지 통과한 신인은 2차 2순위 김재영과 99순위 강상원 딱 둘뿐이었다. 해가 바뀌어 스무살이 된 강상원은 “전체 선수단에서 가장 막내였다”며 웃었다.

캠프 동안 매일 오전 5시30분에 일어났다. 몸을 푼 뒤 7시에 시작하는 아침훈련에 참가했다. 5~6명이 하는 ‘새벽 특훈’에 거의 개근했다. 오전 훈련 내내 외야 수비 연습을 했고, 오후에는 방망이를 휘둘렀다. 야간 훈련도 빠진 적이 거의 없다. 강상원은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훈련을 해 본 적이 없다”면서도 “하다 보니 야구가 느는 게 느껴진다”며 배시시 웃었다. 자나깨나 닮고 싶었던 이용규 선배와 같은 팀에 있다는 건 여전히 잘 믿어지지 않는다.

강상원은 3경기에 나섰지만 KBO 공식 기록 타율이 ‘-’로 표시된다. 시범경기 3경기에서 모두 대주자였다. 2번째 출전이었던 지난 10일 두산전에서는 1루 대주자로 나간 뒤 2루 도루 성공, 중견수 뜬공에 과감한 태그업, 상대 실책 때 거침없는 홈질주로 득점에 성공하면서 한화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김성근 감독은 “강상원답게 했다”고 말했는데, 이는 대단한 칭찬이다.

야 구는 9의 종목이다. 한화의 ‘99’번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강상원은 “류현진 선배(등번호 99)처럼 멋진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지명순위가 늦은 강상원의 등번호는 110번이다. 알파고였다면, 99번째 지명 선수의 성공 확률을 2%로 계산했겠지만 2012년 등번호 111번을 달았던 선수는 2년 뒤 리그 MVP가 됐다. 바둑과 야구 모두 최고의 매력은 짜릿한 역전에 있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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