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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야 미친다

베이스볼라운지

by 야구멘터리 2016. 3. 2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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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아직 쌀쌀했다. 시범경기를 치르는 동안, 3월임에도 ‘한파 취소’가 여럿이었다. 그래도 야구장에는 꽃이 피었다. 야구의 꽃은 홈런이다.

시범경기 81경기에서 홈런 140개가 쏟아졌다. 경기당 1.73개의 홈런은 극심한 타고투저 시즌이었던 2014시즌 시범경기의 1.72개보다 더 많다. 시범경기는 홈런 꽃이 피는 데 좋지 않은 시기다. 날씨가 아직 쌀쌀한 데다 주전보다는 후보들이 많이 뛰기 때문이다. 그래도 홈런 꽃이 흐드러졌다.

140개 중 막내 구단 KT가 홈런 23개로 가장 많았다. 지난해 정규시즌 KT는 홈런 129개로 9위였다. 잠실을 홈으로 쓰는 LG(114개)보다 많았을 뿐 나머지 모든 구단에 비해 적었다. 겨울을 보냈고, 스프링캠프를 마친 KT는 리그 최고의 ‘홈런 팀’으로 바뀌었다. 2위 NC(18개)보다 1경기를 덜 치르고도 홈런 숫자에서 차이가 컸다. KT가 기록한 16경기서 23개(경기당 팀 홈런 1.44개)는 지난해 정규시즌 홈런 1위 넥센(1.41개)을 뛰어넘는다.

KT 조범현 감독은 “막내구단이라 다른 팀들이 봐준 것 같다”며 짐짓 모른 척 넘기려 애를 썼다. “시범경기일 뿐이다. 타격이라는 건 믿을 수 없는 것”이라면서도 슬쩍 올라간 입꼬리마저 감추지는 못했

다. 장타와 홈런은 그 어떤 신경안정제보다 감독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이다. 조 감독은 “타자들이 타석에서 보여주는 집중력에 나도 놀랄 정도”라고 슬쩍 덧붙였다.

김사연(28)이 홈런 6개로 시범경기 홈런왕에 올랐고, 2009년 MVP 김상현(36)이 5개로 뒤를 이었다. 신인이나 다름없는 문상철(25)이 4개로 공동 4위다.

KT 이숭용 타격코치는 “다들 하체 밸런스가 좋아졌다. 다리로 공을 잡아놓고 때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힘은 워낙 좋은 선수들이었던 데다 이제 그 힘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KT의 진짜 마법은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 조 감독도, 이 코치도 “올해는 일을 한번 낼지도 모르겠다”고 입을 모은 김상현에게 홈런 증가 이유를 물으니 “잘 쉬었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상현은 “아이 셋과 겨울 동안 함께 지내며 잘 쉰 게 도움이 된 것 같다”고 강조했다. ‘깜짝 홈런왕’에 오른 김사연도 “캠프에서 일찍 돌아오는 바람에 힘이 남는 것 같다”며 웃었다. 김사연은 캠프 연습경기 도중 손등에 사구를 맞아 일찍 돌아왔다.

KT 주장 박경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박경수는 “자유계약선수(FA) 등 새로운 선수들의 영입이 자극이 된 부분도 있지만 캠프 훈련이 조금 줄었다. 다들 힘이 있다”고 말했다.

조 감독은 캠프 중 인터뷰에서 “스프링캠프에서 훈련을 많이 해야 우승할 수 있다면 모두 다 하루 12시간 이상씩 운동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KT는 1군 진입을 앞둔 지난해 캠프에서 ‘지옥 훈련’을 했다. 1년이 지났고, 방법을 조금 바꿨다. KT의 훈련량이 줄었고 타구의 비거리가 늘었다. 홈런이 쏟아졌다.

미 쳐야 미친다(不狂不及)고 했다. 몰입해야 도달한다는 뜻이다. 강하고 많은 훈련이 지름길이라고 여겨졌다. 이제 그 길이 바뀔지도 모른다. 넥센이 먼저 했고, KT가 그 다음을 증명하고 있다. 미쳐야 미치는 게 아니라, 쉬어야 미친다(不休不及). 쉬어야 힘이 나고, 그 힘과 여유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그러니, 세상을 바꾸는 것은 ‘노오력’이 아니라 ‘잉여’를 바탕으로 한 ‘덕질’이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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