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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이야기다

베이스볼라운지

by 야구멘터리 2016. 4. 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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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고척 스카이돔, 넥센-롯데전을 앞두고 은퇴식이 열렸다. 선수가 아니라 히어로즈 김은실 과장의 은퇴였다. 현대 유니콘스 시절부터 10년 넘게 장내 아나운서를 맡았다. 이제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준다. 주장 서건창이 꽃다발을 전했다. 고척 스카이돔 그라운드에 서서 마이크를 들고, 마지막 선수 소개를 했다. “1번 타자, 2루수, 서, 건, 창.” 식순에는 없었지만 선수들이 더그아웃 앞에 줄을 섰다. 선수들의 재촉에 김 과장은 마지못해 손을 들고 하이파이브를 했다. 홈런 때보다 더 긴 하이파이브가 이어졌다. 히어로즈는 창단 직후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홍보팀 직원 이화수씨의 이름을 여전히 보도자료 끝에 새기는 팀이다. 야구는 스토리(이야기)다. 이야기가 쌓여 이미지를 만든다.

하루 전 2일, 마산구장에서 NC는 거꾸로 ‘직원 영입식’을 했다. 2년 전 ‘크롱’과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맺어 마스코트로 영입했던 NC는 이번에는 아예 ‘뽀로로’를 직원으로 데려왔다. 크롱 때 입단식이었던 행사가 뽀로로 때는 입사식으로 바뀌었다. 단장과 기존 마스코트들이 NC 직원 뽀로로 명함을 만들어 전달했다. 뽀로로는 ‘엔런트(NC 프런트)’가 됐다.

뽀로로의 입사를 알리는 방법이 독특했다. 보도자료를 내는 대신 5초짜리 영상을 SNS에 올렸다. 점퍼 지퍼를 올리는 영상, 손이 영락없는 뽀로로였다. ‘그분이 오십니다’라는 제목이 달렸다. 5초면 충분했다. 2일에는 시구를 했다. 뽀로로는 단디의 손을 잡고 마운드에 올랐다. 공을 던진 뒤 뽀로로의 머리가 땅에 뚝 떨어졌고 내야로 굴렀다. 머리 줍는 것보다 얼굴 가리는 게 더 빨랐다. 단디가 뽀로로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영상에는 ‘#동심파괴’라는 해시태그가 달렸다. 실수도 이야기가 된다. NC는 지난겨울 단디와 연봉협상을 한 팀이다. 캐릭터에 이야기를 입혔고, 이야기는 스스로 성장한다.

2016 KBO리그가 변했다. 구단들은 스토리를 쌓기 시작했다. 삼성과 SK 모두 마스코트를 바꿨다. SK는 새 마스코트 아테나와 아울에 탄생설화를 얹었다. 지난 4년간 마스코트였던 윙고와는 고별 세리머니를 진행했다. 롯데는 LED 조명탑으로 새 이야기를 만든다. 조명탑에 글씨를 새기고, 결정적인 순간 화려한 세리머니를 펼친다. “니 그거 봤나”란 한마디가 만드는 이야기의 규모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경기에 이겼을 때 사직구장 바깥은 무지개색으로 빛난다. 이야기는 굳이 글씨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니 무지개 봤나? 오늘 야구 이기따.”

LG 팬들이 주말 내내 행복했던 건, 단지 연장 끝에 거둔 끝내기 2연승 때문만은 아니다. 홈런 친 이천웅, 끝내기 양석환, 채은성, 젊은 계투진의 최성훈, 최동환, 이승현 등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나도 많아서였다. 젊은 팀으로의 변화를 꾀했고, 그 결과가 보이기 시작했다. 변화의 시작과 흐름, 경기 내용이 어우러져서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었다. 앞서 불거졌던 수많은 갈등조차 스토리에 살을 보탠다. 팬들이 서로에게 말을 건다. “내가 보기엔 말야, 이천웅의 스윙이 좋아.” “이승현 체인지업 무브먼트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보기 힘들어.”

야 구팬들을 사로잡는 것은 승패가 아니라 스토리다. 이승엽은 새 구장 라이온즈파크 첫 홈런을 때린 뒤 방망이를 던지는 세리머니 대신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베이스를 돌았다. 손승락은 친정팀 넥센을 상대로 2-1 승리를 지켜내는 순간, 주먹을 휘두르는 대신 옛 팬들을 상대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2016년, 야구와 함께 멋진 이야기가 시작됐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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