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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변한다

베이스볼라운지

by 야구멘터리 2016. 4. 2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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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도넬리 코치(70)는 지난해까지 시애틀 3루 코치였다. 1972년 텍사스 팜 시스템 코치를 시작했으니 44년 동안 코치였다. “만약에, 미국 국민 모두가 메이저리그 감독을 맡아야 한다면, 이 나라는 국민의료보험이 꼭 필요할걸. 그 직업은 말야, 사람 수명을 10~15년씩 갉아먹거든”이라고 말했다. 도넬리 코치는 “내가 수많은 감독을 쭉 지켜봤는데, 이상한 게 한 가지 있어. 담배를 안 피운다? 그럼 피우게 돼. 술을 안 마신다? 결국 먹게 돼. 술·담배를 한다? 그럼 다 끊게 돼. 더 하면 큰일나니까. 허허”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캔자스시티 로열스를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네드 요스트 감독은 몇 년 전 ESP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워싱턴의 군 병원에 위문을 갔을 때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지뢰를 밟아 발을 잃은 군인을 만났다. 한 걸음, 한 걸음 어떻게 지뢰를 조심하며 걷느냐고 물었다. 군인이 말하더라. ‘아니요, 지뢰는 찾을 수 없어요. 그저 한 걸음 한 걸음이 끝일 수 있다는 걸 이해해야죠’라고.” 요스트 감독은 덧붙였다. “야구 감독도 똑같다. 오늘 이 경기가 마지막일 수 있다.”

수명을 갉아먹고, 언제가 마지막일지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야구 감독은 매력적이다. ‘내 야구’라는 것은 도저히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피츠버그 클린트 허들 감독은 대단한 유망주였다. 1970년대 중반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는 데뷔를 앞둔 거포 유망주 허들을 표지에 실었다. 그게 끝이었다. 허들은 10시즌을 뛰었지만 통산 홈런은 32개에 머물렀다. 코치 생활을 거쳐 콜로라도 감독이 됐다. 거포 유망주 출신의 장점을 살렸다. 허들 스타일의 공격 야구가 쿠어스 필드와 딱 맞아떨어졌다. 2007년 ‘락토버’라 불렸던 기적 같은 시즌은 허들 감독의 전성기였다. 마운드 강화를 위해 허들은 ‘4선발 시스템’이라는 과감한 실험을 했다. “선발 4명을 짧게 쓰면 효과적일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실패했다. 2009년 전반기, 허들 감독은 해고됐다.

2011년 피츠버그 감독이 됐다. 계약 마지막 해인 2013시즌을 앞두고 닐 헌팅턴 단장은 마지막 해결책을 제안했다. 내야 시프트였다. 허들 감독은 반대했다. “메이저리그가 120년 넘는 경험으로 증명한 수비 포지션”이라는 게 이유였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설명이 이어졌고, 허들 감독은 이를 받아들였다.

피츠버그 구단을 다룬 책 <빅데이터 베이스볼>에 따르면 허들 감독은 팀 미팅 때마다 야구 경험이 없는 정보기술(IT) 전문가인 폭스와 피츠제럴드를 꼭 함께 데려왔다. 유니폼 입지 않은 이들의 더그아웃 금지라는 오랜 금기도 깼다. 완고했던 올드 스타일의 감독, 과감한 실험을 실패했던 허들 감독은 메이저리그 120년 역사에 반하는 선택을 했고, 이를 통해 팀을 20년 만에 가을야구로 이끌었다. 허들 감독의 e메일 서명은 ‘오늘을 변화시켜라’로 바뀌었다.

‘언제나 옳은 야구’란 없다. 야구는 멈추지 않는다. 그 속에서 ‘성공한 야구’와 ‘실패한 야구’가 있을 뿐이다. 한화가 2승11패에 머물고 있다. 김성근 감독의 야구는 10년 전 분명히 새로운 야구였고, 성공한 야구였다. 그때의 야구와 지금의 야구가 다르고, 그때 그 야구가 지금의 성공을 보장할 리 없다.

상대는 더 이상 김성근 야구 스타일에 압박감을 느끼지 않는다. 의외의 타순과 의외의 대타가 나왔을 때 ‘뭔가 있겠지’라는 의심보다는 눈에 보이는 OPS를 확인한 뒤 큰 어려움 없이 잡아낸다. 번트에 대한 리그의 인식도 달라졌다. 잦은 투수교체도 상대 벤치는 물론 타석의 타자에게 큰 압박이 되지 않는다. 자칫 초반 성적 저하는 선수들의 의심과 동요를 불러올 수 있다. 지금 이 야구, 혹시 틀린 건 아닐까.

정치와 야구가 똑같을 리 없지만, 20대 총선이 가르쳐 준 교훈 하나. 영원한 선거의 여왕도, 영원한 승리 공식도 없다는 것. 여왕과 과거에 이겼던 공식에만 매달리면 좋지 않은, 혹은 매우 나쁜 결과가 나온다는 것.

야구 감독은 고통스러우면서도 매력적인 자리다. ‘내 야구’는 과거의 야구가 아니라 지금의 야구다. 김성근 감독은 지난 16일 “변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고 했다. 17일에는 4-6으로 졌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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