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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투혼(Fighting spirit)-2011 준PO2차전

이용균의 가을야구

by 야구멘터리 2011. 10. 9.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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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의 준플레이오프 화두는 ‘부상’이었다. 타선의 키를 쥐고 있는 3루수 최정은 순발력, 스피드가 떨어져 있었다. 타격에서 부진한 것도 문제지만 수비에서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1차전 차일목의 만루홈런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9회 무사 1루에서 최정의 실책성 플레이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공식 기록은 내야 안타였지만 정상적인 최정이었다면 병살 플레이 가능성이 더 높았다. 최정은 “솔직히 타격이 문제가 아니라 수비가 문제”라고 말했다.

외야수 김강민 박재상도 막 부상에서 돌아온 터였다. 김강민은 타격에서, 박재상은 수비에서 약간의 마이너스 요소를 지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선수는 9일 2차전 배터리인 송은범과 정상호였다. SK로서는 이들의 부상 투혼(Fighting spirit)이 필요했다. 

송은범의 팔꿈치는 정상이 아니다. 팔꿈치에 웃자란 뼛조각이 떨어져 나가 돌아다니고 있다. 뼛조각이 어딘가를 건드릴 때마다 통증이 온 몸으로 번져나갔다. 송은범은 진통제를 먹어가며 버티고 있는 중이다. 시즌이 끝나면, 수술을 받아야 할 가능성이 높다. 

송은범은 팔꿈치 통증을 안은 채 경기를 뛰었지만 단 한번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 문학/이석우기자


정상호는 온 몸이 부상 투성이다. 허리 통증에 고관절 통증은 거의 고질적 증상이다. 설상가상 시즌 막판 3루 베이스를 돌다가 발목을 다쳤다. 올시즌 도루 저지율 1위를 기록했지만 2루 송구에 있어서 발목의 상태는 매우 중요하다. 

배터리는 이날 승부의 모든 것을 쥐고 있었다. 부상의 고통을 참고 견뎌내야 했다. 이미 1차전을 졌다. 2차전마저 패한다면 사실상 가을야구를 일찍 접어야 할 위기였다.

선발 송은범은 이날도 진통제를 먹었다. 5회 이상을 책임져야 했다. 송은범이 마지막으로 5+ 이닝을 던진 것은 6월3일 KIA전이었다. 이후 4개월 동안 송은범은 5+ 이닝을 던지지 않았다.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많았다. 하지만 그 우려가 다시 기대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1회를 채 넘기기 전이었다. 선두타자 이용규에게 안타를 맞았지만 김선빈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김선빈의 번트 시도를 파울로 만들만큼 공 끝에 힘이 있었다.(김선빈은 이날 8회에도 번트 시도가 파울이 됐다) 이용규의 도루로 1사 2루, 이범호를 또다시 삼진으로 잡아냈다. 4번 나지완에게 우전 안타를 맞아 실점했지만 잘 맞은 안타가 아니라 송은범의 구위에 눌린 ‘밀려 친’ 우전 안타였다. 힘이 넘쳤다. 팔꿈치 통증에 시달리는 투수의 공이 아니었다. 송은범의 1회 최고구속은 152㎞를 기록했다. 150㎞짜리 직구가 오른손 타자의 몸쪽을 파고 들었다. 김정준 SK 전력분석팀장은 “송은범의 피칭 중 가장 몸쪽 공략을 많이 한 등판일 것”이라고 말했다. 송은범은 이날 기대 이상의 호투를 펼쳤다. 6이닝 5안타 2실점. 삼진은 5개였다. 

송은범은 “솔직히 아프다. 하지만 그냥 던지는 거다. 어차피 투수는 아프다”고 했다. 세상만사에 쿨하게 대처하는 방법. 송은범은 “팔이 떨어져 나가도 좋다는 생각으로 던졌다. 팔이 떨어져나가면? 병원에서 붙이면 된다”며 웃었다. 

KIA 타선은 송은범의 과감한 몸쪽 직구에 꼼짝없이 당했다. 송은범의 구위를 더 뛰어나게 만든 것은 포수 정상호의 볼배합이었다. 

정상호는 1차전 김광현 선발 투수를 상대로 바깥쪽 승부 위주의 볼배합을 가져갔다. 그 볼배합에서 ‘박경완의 그림자’가 어른 거렸다. 그러나 2차전에서는 볼배합이 달라졌다. 송은범의 직구 위력을 확인했고, 정상호는 과감한 몸쪽 승부로 KIA 타자들을 괴롭혔다. 가뜩이나 타격 컨디션이 떨어져 있는 KIA 타자들의 노림수가 흩어졌다.

정상호는 탁월한 볼배합 외에도 1회와 2회 각각 나지완과 김상현을 2루에서 잡아냄으로써 상대의 예봉을 꺾었다. 도루저지와 볼배합의 합작품. 나지완은 원바운드 공을 잘 막아낸 뒤 2루에서 아웃시켰고 2회 김상현은 히트 앤드 런 작전 때 최희섭의 헛스윙을 이끌어낸 뒤 김상현을 잡아냈다.

안치용의 홈런은 시리즈의 흐름을 바꿨다. KIA로서는 6회 이후 로페즈의 교체 타이밍이 아쉬운 순간이었다. 문학/이석우기자


여기에 송은범이 강판된 뒤였지만 2-2로 맞선 연장 10회 무사 1루에서 차일목의 번트 타구를 1루 파울 뜬 공 처리한 것은 정상호의 완벽한 승리였다. (이 번트 실패는 결국 KIA의 이후 시리즈에 영향을 미쳤다.)

송은범-정상호 배터리의 ‘부상 투혼’은 시리즈의 흐름을 묘하게 바꿔놓았다. 정우람-정대현-박희수 3인방의 철벽 불펜은 남은 이닝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SK의 3-2 승리. 경기 후 인터뷰실을 찾은 이만수 감독대행의 목소리가 커졌다.

PS.

준플레이오프는 미니 시즌이다. 두 팀 모두 자신의 약점을 메워가는 시리즈가 돼야 했다. SK는 2차전에서 부상 선수들의 회복을 확인했다. 박재상은 동점 3루타를 때렸다. 최정과 김강민이 부진했지만 차츰 수비에서 나아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송은범의 호투를 확인한 것이 팀 전체에 뿌려진 부상의 두려움을 가시게 만들었다.

반면 KIA는 불펜을 만들어갈 기회를 잃었다. 1차전에서는 윤석민의 완투. 조범현 감독은 조금 더 편안한 상태에서 심동섭, 김진우를 등판시켜가면서 자신감을 키워주고 싶었지만 경기 상황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한기주는 비교적 호투했지만 너무 많이 던졌고, 결국 졌다. KIA로서는 단지 1패를 넘어서는 손실을 입었다.
kia : killed in action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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