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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책임감(responsibility)-2011 준PO1차전

이용균의 가을야구

by 야구멘터리 2011. 10. 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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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준 SK 전력분석팀장은 준플레이오프의 성격을 ‘단기전’이 아니라 ‘미니시즌’으로 설명했다. 김 팀장은 “한국시리즈는 단기전이 맞다. 뒤가 없다. 하지만 준플레이오프는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큰 흐름으로 봤을 때 단기전이 아니라 하나의 시즌을 치르는 기분이다”라고 했다.


SK와 KIA 모두 ‘불완전’한 팀이었다. 약점이 있었고, 준플레이오프를 통해 이를 메워가며 ‘팀’을 만들어야 했다. SK의 약점은 부상, KIA의 약점은 불펜이었다. 승부에서도 이겨야 했지만 경기를 통해 이 약점을 메우는 일종의 ‘육성’이 필요했다. 

SK는 부상 선수가 얼마나 빠르게 경기 감각을 회복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에이스 김광현, 3루수 최정, 중견수 김강민이 키를 쥐고 있었다. 이들이 어떤 플레이를 하느냐, 혹은 경기를 치르면서 얼마나 빠르게 경기에 적응하느냐가 중요했다. 

SK 이만수 감독대행은 여러가지 숙제를 안은 채 자신의 첫 포스트시즌을 치러야 했다.



KIA는 불펜이 문제였다. 시즌 막판부터 KIA 조범현 감독은 여러가지를 테스트하며 불펜을 구상했다. 한기주가 선발로 성공한다면 제구력이 좋은 서재응을 효과적으로 중요한 순간에 투입시킬 수 있었다. 마무리는 김진우가 주된 테스트 대상이었다. 경험이 부족한 좌완 심동섭은 경기를 치르며 경험을 쌓아야 했다. 

1차전은 두 팀의 이런 ‘약점’을 메우는 경기가 돼야 했다. 약점을 메울 여유를 갖기 위해서라도 1차전 승리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 막중한 책임을 진 2명의 투수가 마운드에 올랐다. SK 에이스 김광현, 그리고 이날의 주인공 KIA의 에이스 윤석민이었다. 

윤석민의 어깨에 놓여진 짐의 무게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컸다. KIA의 불펜이 강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에이스로서 가능한 많은 이닝 - 적어도 8회까지는 - 을 책임져야 했다. 3일 뒤 4차전에서 선발 등판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했다. 따라서 투구수를 조절해가며 던질 필요가 있었다. 3일 뒤의 등판 상태도 머릿 속에 둬야 했다.

그렇다고 초반 기선제압에서 밀릴 수는 없었다. 상대는, 비록 부상에서 막 돌아온 상태지만 국내 최고 좌완 투수 중 한 명인 김광현이었다. 경기 초반에 ‘힘 조절’을 할 여유는 없었다. ‘풀 파워 업’이 필요했다. 그 모든 것이 윤석민의 어깨에 달렸다. 

1회초 KIA 타선은 윤석민의 짐을 덜어주지 못했다. 무사 1루에서 시도한 희생번트가 선행주자 아웃으로 실패했다. 김광현은 위기를 넘겼다. 윤석민의 초구는 그래서 더 중요했다. 150㎞ 직구. SK 선두타자 정근우는 정확히 갖다 맞히며 중전 안타를 만들었다. 사실 좋지 않은 신호였다. KIA의 선두타자 이용규는 볼넷을 얻었다. 안타가 더 좋지 않아 보였다. 

견제구 2개가 이어졌다. SK도 분명히 뭔가를 걸어 올 타이밍이었다. 견제구 2개는 SK의 조급함을 가중시킬 수 있었다. 150㎞짜리 빠른 직구. 혹시 모를 번트를 대비한 공. 앞선 1회초 공격에서 김선빈은 빠른 직구에 번트를 댔다가 선행 주자를 2루에서 객사시킨 터였다. 하지만 SK의 작전은 번트가 아니라 히트앤드런. 윤석민의 직구는 높게 형성됐다. 자연스럽게 피치드 아웃 형태가 됐고 박재상은 헛스윙, 차일목의 정확한 송구로 1루주자 정근우가 2루에서 아웃됐다. 

흐름이 바뀌었다. 경기가 끝난 뒤 윤석민은 “피치드 아웃은 아니었다. 운이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초구 직구가 정근우의 안타로 연결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윤석민은 “초구 안타를 맞은 뒤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문학구장에서 가을야구가 시작됐다. 그리고 야구의 시작은 에이스들의 맞대결이었다.


부담감이 컸다. 에이스끼리의 맞대결, 가을야구의 첫번째 경기. 윤석민은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다. 지지 말아야 한다. 오래 던져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게다가 상대가 김광현이 아닌가. (만약 진다며)김광현에게 졌다는 소리를 두고두고 듣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정근우의 안타는 윤석민을 깨어나게 했다. 막연한 긴장감은 그 안타 때문에 ‘책임감(responsibility)’으로 바뀌었다. 정근우의 안타가 윤석민의 책임감을 일깨웠다.

윤석민은 슬슬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1사 주자 없음. 볼카운트 1-0. 2구 체인지업 129㎞. 3구 직구는 150㎞였다. 그리고 4구째 130㎞ 서클 체인지업에 박재상의 방망이가 나왔다. 힘없는 좌익수 뜬 공이었다. 

3번 최정을 향해 던진 초구는 슬라이더였다. 140㎞가 나왔다. 이날 윤석민의 ‘책임감’이 실린 고속 슬라이더의 시작이었다. 2구는 142㎞로 슬라이더의 구속이 올라갔다. 4구 슬라이더는 143㎞이었다. 최정은 2루 땅볼로 물러났다. 이날 윤석민이 70개나 던진 슬라이더는 최고구속 145㎞를 기록했다. 이후 SK가 윤석민으로 뽑아낸 안타는 2개 뿐이었다. 그나마 9회 터진 최동수의 홈런이 아니었다면 완봉패를 당할 뻔 했다. 윤석민은 “만약 9회초 (차일목의) 만루홈런이 아니었다면 완봉승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윤석민은 다음 날 취재진에게 손가락을 내보였다. 엄지와 검지, 중지에 물집이 잡혀 있었다. “야구 시작하고 나서 3곳에 모두 물집이 잡힌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 3개의 물집은 책임감의 상징이자, 에이스의 훈장과 같았다.

윤석민은 “일단 5차전 선발 등판 예정이지만 3차전 부터는 불펜 투입도 가능하다”고 했다. 맞다. 책임감을 스스로 짊어질 줄 아는, 그런 투수 앞에 붙는 이름이 바로 ‘에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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