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컨설팅 회사 맥킨지 출신의 바바라 민토는 자신의 책 <논리의 기술>에서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글쓰기를 4단계로 정의한다.
상황(Situation)-전개(Complication)-질문(Question)-해답(Answer)의 과정을 따른다. 상황을 먼저 인식하고 그 상황의 세부사항을 따진 뒤 적절한 질문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SCQA는 기업의 문제 해결을 위한 방식이지만 기업의 문제와 야구의 문제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가장 ‘기업 스타일’에 가까운 넥센 히어로즈가 독특한 실험을 하고 있다. 답을 찾아가는 방식이 닮았다.
넥센은 시범경기 동안 홈경기 타격 훈련 때 배팅 케이지를 2개 설치했다. 2개 설치하는 게 남다른 일은 아니다. 한쪽은 배팅볼 투수가 던지고 다른 한쪽은 피칭 머신이 던지는 것까지는 여느 팀과 비슷하다. 그런데 피칭 머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이 요상하다.
스트라이크가 되는 게 아니라 홈플레이트 앞에서 뚝 떨어지는 커브다. 일단 타자들은 메인 케이지에서 배팅볼 투수의 공을 때린 뒤 옆자리로 옮겨 막 바운드가 되려는 공을 쳐야 한다.
물론 정상적인 스윙이 아니라 엉덩이를 빼면서 팔을 쭉 뻗어 맞히는 스윙을 해야 한다.
SCQA로 따져보자. 넥센이 지난 시즌 4강에 실패한 것은 시즌 중후반 타선의 집중력 부족 때문이었다. 홈런으로 한두 점은 뽑았지만 한 이닝 대량 득점, 빅이닝이 부족했다(상황).
빅이닝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쨌든 플레이를 이어가야 했다. 안타가 나오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주자가 진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볼카운트가 몰리더라도 어떻게든 공을 페어지역으로 바운드시켜야 한다(전개). 그럼 어떻게 나쁜 공을 칠 것인가(문제). 나쁜 공을 때리는 훈련도 하는 게 답이다(해결).
염경엽 넥센 신임 감독은 “실제 경기에서, 반드시 기회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상대 투수가 좋은 공을 줄 리 만무하다. 최대한 나쁜 공을 주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독특하고 유쾌한, 나쁜 공을 때리는 훈련을 지난해 가을 마무리 캠프에서부터 시범경기까지 이어왔다. 물론 시즌 중에도 계속된다. 서건창은 “계속해오고 있으니 실전에서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사실 넥센의 고질적 문제는 이것 말고도 또 있다. 투수들의 볼넷 남발이다. 2010시즌 614개, 2011시즌 601개, 2012시즌 535개로 3년째 부동의 1위다. 이를 두고 “볼넷을 줄이라”고 지시하는 것은 무책임할 뿐 아니라 아무런 효과도 없다. 염 감독은 여기에도 유쾌한 세 가지 실험을 시작했다.
어차피 투수를 싹 바꿀 게 아니라면 실천 가능한 목표를 세워야 한다. 첫째, 투수들은 3구 이내에 승부할 것. 맞아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둘째, 날카로운 유인구가 아니라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는 변화구를 만들 것. 왜냐하면 볼카운트가 투수에게 불리할 때 타자들은 직구를 노리니까. 셋째, 포수는 초구에는 절대로, 2구째에도 웬만하면 자리를 옮기지 말 것. 스트라이크존 구석을 보고 던져도 빠지는데, 차라리 가운데를 보고 던지는 게 낫다는 얘기다.
넥센이 2013시즌 다크호스로 주목받고 있다. 이런 유쾌한 실험들이 보여주는 가능성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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